조명래 전도사 / 누가복음 1:57-80

◎본문 : 누가복음 1:57-80

◎제목 : 요한의 탄생 – 하나님의 찾아오심

◎개요 : 57-66절 세례요한의 출생

 A. 요한의 이름을 두고 친족과 엘리사벳의 갈등(57-61절)

 B. 사가랴가 언어를 되찾음(62-66절)

67-80절 사가랴의 찬가

 A. 구속하신 하나님을 찬양 (67-75절)

 B. 아이를 향한 축복(76-80절)

 

◎본문연구

오늘도 새벽예배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은혜 충만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힘들고 어두운 순간이 다가올 때 우리는 어디에서 구원을 찾고 있습니까? 그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 구원만 깊이 바라며 묵상한 적이 있습니까? 독특하게도, 구약 스가랴 9장에 예언된 구원자, 구원을 베푸실 왕은, 우리에게 직접 찾아오셔서 구원을 베푸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에 따르면, 그 분의 손길은 결코 우리로부터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한 누가복음 1장 하반부, 요한의 탄생은 우리를 향해 찾아오시는 하나님 구원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57절의 요한 탄생은 하나님 긍휼의 증거이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 구원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나타나는 노부부의 출산, 아브라함, 나오미, 한나, 이사야의 사례처럼, 출산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생명을 얻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기쁘고 복된 소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58절을 보면 이웃과 친족 모두가 주께서 엘리사벳을 긍휼히 돌보셨으며 그간의 수치를 덮으신데 대하여 크게 즐거워하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요한의 출생 기사는 예수의 출생 사건보다 앞서서 병렬적으로 기록되며, 요한의 삶이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앞서 준비할 것을 누가복음 저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암시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60절, 63절의 요한의 이름 사건에서 하나님께서는 요한이라는 이름‘ 여호와는 은혜가 깊으시다’라는 정체성까지 미리 천사를 통해 준비시키시고 그의 탄생이 처음부터 예수그리스도를 준비하기 위해 계획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계획하시고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비록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여전히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준비하시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또, 68절 하반절에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 받아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라고 하며, 하나님의 돌보심과 방문을 고백하는 것을 주목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돌보사”라는 단어의 원 뜻은 돌보기 위해 보러가다, 방문하다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사가랴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하시려 방문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고백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구원자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에게 방문하는 사건, 찾아오시는 사건임을 깨닫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절망과 수렁에 가운데서 자기 힘으로 나올 수 없는 무력한 자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폐허와 같은 시대에 결코 개인 혼자서는 민족구원의 소망을 기대할 수 없는데,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자기 백성, 택한 민족에게 친히 찾아 오사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은혜의 때에 우리에게 손을 내미실 때, 그 손을 반드시 붙들어야 할 줄 믿습니다.

다음으로, 71-72절 말씀을 보면, 사가랴는 주께서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 또 긍휼히 여기시는 거룩한 언약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원수는 누구입니까? 우리를 오염시킨 죄와 사망이고 또 우리를 고발하는 원수 마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둠과 죽음 가운데 절망하고 있는 자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십니다. 원수 마귀의 머리를 깨뜨리십니다. 또한, 구원은 하나님과의 화해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또한 원수 되었던 우리를 친구로 만드사 자신과 화해시키십니다. 이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친구가 되는 구원의 결과를 누려야 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75절에서 77절 말씀을 보면, 요한의 부름은 단순히 한 개인을 위한 소명 차원의 부름이 아니고, 복음전파의 선봉장으로서, 거룩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회개와 은혜를 전하는 차원의 부름입니다. 하나님 구원을 앞서 예비하며 증거하는 증인으로의 소명입니다. 우리는 이렇듯 앞서 달려갔던 복음 전도자들에게 복음에 빚진 자들이자 사랑에 빚진 자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과 소명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귀한 복음을 듣고 천국 유업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받은 복음과 사랑이 그저 우리에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세상에 또한 흘려보내야 하는 사명을 받은 자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구원은 우리 힘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때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하나님의 찾아오심과 그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과 화해한 자로서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할줄 믿습니다. 또, 생명이 새로운 생명을 낳는 자로 나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소망 없는 시대에 새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기쁨과 축복을 주시며,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옴을 통해 하늘에서는 천국잔치가 일어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