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전도사 / 누가복음 2:1-20

본문 : 누가복음 2:1-20

제목 : 낮아지신 하나님, 아기 예수

개요 :
1-7
절 예수의 출생 
   A. 인구조사(1-3)
   B.
요셉과 마리아의 베들레헴 방문(4-7)
8-14
절 목자들과 천사들
   A. 목자에게 전해진 기쁨의 소식(8-12)
   B.
천군 천사들의 찬송(13-14)
15-20
절 베들레헴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

본문연구

오늘도 새벽예배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은혜 충만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도 말씀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귀한 하루되길 소망합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를 선용하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내십니다. 오늘 본문의 가이사 아구스도의 인구조사도 그에게는 정치 행위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렇게 인간의 계획과 역사를 초월하여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고 계실까요? 지금 이 순간에 우리는 비록 느끼지 못할지라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일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우리 계획과 우리 생각을 넘어 일하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누가복음 2장 전반부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기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의사이자 역사가 누가는 역사가답게 예수님의 출생 시기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2장 서두에 제공합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 때 가이사 아구스도,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명령으로 인구조사가 있었다는 겁니다. 따라서 3절 말씀을 보면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내려가매, 4-5절에 요셉도 베들레헴이라하는 다윗의 동네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갔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바로 구약 미가서 5장 2절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아멘. 하나님은 이렇게 당시 온 천하를 통치하는 로마 최고 권력자 카이사르의 명을 통해 구약 예언을 성취하십니다. 사실 가이사 아구스도는 그저 세상의 원리와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결정, 피지배국을 통치하려는 정치적 활동을 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세상 군왕의 교만을 비웃으시고, 인간의 활동을 초월하여 현실 세계에서 주님의 계획을 차근차근 이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언의 성취를 보면서,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 권력자, 저 로마 권력자가 이 세상의 가장 강한 통치자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이 진정한 통치자, 더 위대하고 강하신 통치자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 우리도 눈에 보이는 세상 통치자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리심을 우리 삶의 영역 곳곳에서 인정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참 겸손한 분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로서 육신의 몸을 입고 강보에 싸여 말이 밥 먹는 구유에 누이셨는데, 이것은 당시 베들레헴 여관에 빈 방 하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 밤 중 출산이 임박하여 어쩔 도리 없이, 말이 지내는 마구간에 머무른 젊은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예수님, 그분은 우리에게 겸손과 낮아지심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반면, 그때 세상 군왕 아우구스투스는 천하를 다스리는 로마 황제로서, 어떻게 하고 있었습니까? 호화로운 궁전과 사치스러운 침대에서 식민지의 인구조사와 세금을 통해 권력을 더 강화하려 했습니다. 우리는 이 대조되는 상황을 바라보면서,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는 세상과는 달리, 겸손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질 통치가 앞으로 임할 것을 엿보게 됩니다. 진정한 구세주 되시는 예수님은 말구유에 누인 구원자로서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을 돌보시고,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실 것을 알게 됩니다.

 

이어지는 8-10절 말씀은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전한 기쁜 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좋은 소식은 어떤 소식입니까? 11절에 보면,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는데, 그분은 바로 그리스도 주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분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라고 이어진 12절에 설명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구원자, 해방자의 이미지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거스르는,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인 겸손과 사랑을 택하사, 세상 권력자들, 지배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또, 무엇보다 이 소식은 밤을 새던 목자들, 당시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인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시고, 마음이 겸손한 자들에게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우리의 마음도 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들이 되어, 하나님 말씀이 늘 들리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14절에서 천사들은 이 일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이며,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임한다고 선포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에 나타난 하나님 계획의 큰 성취입니다. 사망 권세와 마귀 역사를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죄 된 이 땅에 이제 참된 평화가 임한다는 선언입니다. 이것은 로마 제국이 주장한, ‘로마의 평화’, 즉 세상 권력이 주는 거짓된 평화와 대조됩니다. 예수님은 사람과 하나님,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를 가져오셔서 모든 사람에게 그 평화를 선물로 주십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하며 그 주권은 인간의 역사를 초월합니다. 참된 평화는 권력의 명령이 아니라 겸손하신 예수의 통치에서 나오는 줄 믿습니다. 또, 예수께서 이 땅 가운데 낮은 자로 오셔서 주린 자를 먹이시고, 헐벗은 자를 입히시며, 고통당한 자를 위로하셨듯, 우리도 복음을 소유한 자로서, 이 땅 가운데 샬롬의 평화를 우리 주변의 각 여러 영역에서 실천하며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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