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눅 3:15-38

◎ 본문: 눅 3:15-38
◎ 제목: 성령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1. 본문개요 및 관찰
    1) 15-20절: 요한과 그리스도
        A. 요한의 그리스도 소개(15-18절)
        B. 요한의 투옥(19-20절)
    2) 21-23a절: 예수의 세례
    3) 23b-38절: 예수의 족보

2. 적용
    아담의 실패로 인하여 이 세상에는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죄와 죽음의 그림자에 묶이게 되었습니다. 이를 회복하고 새 생명을 가져오신 분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그렇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이 바로 그분이 저와 여러분을 향해 가지는 유일한 의미입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그 지점을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만이 참된 구원자임을 말이지요. 예수님은 그러하기에 실패한 ‘아담의 족보’를 넘어서는 영광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15절을 보시면 백성들은 그들이 바라고 기다리는 메시아가 ‘세례 요한’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16절에서 분명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합니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세례 요한은 자기 뒤에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진짜 메시아가 온다는 것을 분명하게 합니다. 자신은 그 신발끈도 풀기에 감당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시에 신발끈을 풀어주는 일은 ‘노예’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은 그 메시아의 노예도 될 자격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21절에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옵니다. 비로소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로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세례를 받으실 때에 누가는 예수님이 ‘기도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누가복음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관점 인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겁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와 같은 모습으로 강림하셔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아들‘로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또한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여기 22절에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부분을 그대로 받아서 우리에게 그 내용을 반복하고 강조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다름 아닌 23절 하반절부터 38절에 나와 있는 족보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족보는 두 군데 나타납니다. 먼저 ‘마태복음 1장’에 족보가 나옵니다. 그 족보는 ‘하향식 족보’입니다. 하향식 족보는 ‘왕의 족보’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족보의 기능은 ‘예수님이 왕이시다.’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겁니다.

    반면에 누가복음 3장에 나오는 족보는 ‘상향식 족보’입니다. 아들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 위는’ 이라는 방법으로, 아버지, 할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 기술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 ‘상향식 족보’는 ‘평민의 족보’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 족보가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입니까? 오늘 족보의 맨 마지막인 38절을 보시면 압니다.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출발한 족보가 에노스, 셋, 아담을 거쳐 그 마지막에 ‘하나님’에게 맞닿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 족보를 통해 누가가 의도하는 것은 앞선 ‘22절’에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이 메시지를 강조하고자 함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분명 사람의 족보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사람’이지만, 결코 그 ‘사람의 족보’에 갇히는 분이 아니시라는 겁니다. 그분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한다고 누가가 우리에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분을 어떻게 지금 인정하고 있습니까? 매우 쉬운 질문인 것 같지만, 이 질문은 교회사를 거듭하면서 매우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킨 질문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쟁이지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사람 되심 중에 무엇이 맞느냐는 논쟁을 매우 격렬하게 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답은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의 인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분이 ‘사람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분이 사람으로 오셨어야만, 그분이 행하신 모든 일이 ‘유효’합니다. 사람이 죄 때문에 결국 ‘죽음의 형벌’에 이를 수밖에 없는데, 그 형벌을 끊으려면 동일하게 사람이 ‘제물’로 죽어야 합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정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죄의 문제에 있어서 제물이 되어주시기 위해’ 꼭 인간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단지 인간이라면 그 죽음은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예수님이 인성만 있으시다면, 그의 죽음은 다른 이를 대속하는 죽음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죄 문제가 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반드시 ‘신성’이 있으셔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죄가 없기에 대속의 제물이 되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바르게 이해하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이신 분’이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세례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족보의 끝에 하나님과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매 순간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분명히 마음에 새기고 그 믿음이 능력이 되어 매 순간 나를 견고하게 세워, 바른 신앙의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정체성 확인과 성령의 임재로 그분의 사역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명과 정체성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음을 뜻 합니다. 성령의 임재와 기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바르게 고백하고, 예수의 제자도를 따르기로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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