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눅 4:1-13

◎ 본문: 눅 4:1-13
◎ 제목: 예수님의 광야, 순종의 땅

1. 본문개요 및 관찰
    1) 1-2절: 예수의 광야 40일
    2) 3-13절: 마귀의 시험
        A. 돌이 떡이 되게 하라: 현실을 부정하라(3-4절)
        B. 내게 절하라: 네가 원하는 것을 얻으라(5-8절)
        C. 뛰어내리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심하라(9-13절)

2. 적용
    예수님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임이 증명되고 주목받을 수 있는 순간에 ‘광야’로 가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여 광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야는 다름 아닌 ‘순종의 시험이 시작되는 땅’입니다. 40일 금식 후에 사탄은 예수님에게 다가와 속삭이며 시험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사탄이 우리에게도 와서 시험한다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의심하고 우상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지만,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예수님을 본받을 때에, 사탄의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믿고, 오늘 말씀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 예수님은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십니다. 시험은 총 3가지입니다. 첫 번째 시험은 3-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금식’하셨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매우 곤고한 지경에 놓였을 것입니다. 사탄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하여 ‘첫 번째 시험’을 합니다. 바로 ‘돌을 떡으로 바꾸어 먹으라’는 시험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 시험을 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들먹이면서’ 시험을 합니다. 매우 ‘교묘한 전략’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교묘한 사탄의 시험을 간파하시고는 신명기 8:3절의 말씀을 가지고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여기에서 말하는 ‘떡’은 일차적으로 배고픔을 면하게 하는 ‘떡’입니다. 하지만 이 떡은 단지 배고픔을 면하게 하는 떡 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인용된 신명기 8:3절의 배경에서 이 ‘떡’은 정확하게 ‘만나’를 지칭합니다. 만나는 ‘기적의 떡’입니다. 하늘에서 내린 떡이며 신적인 떡입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놀라운 기적의 떡’을 만들 수도 있고 누릴 특권도 있지만 그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주권을 도전하는 것이라면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부추기지만,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온전히 순복함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두 번째 시험은 5-8절에 나타납니다. 사탄 자신에게 절하면 천하 만국 모든 권위와 영광을 주겠다는 시험입니다. 특별히 사탄은 5절에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세상 모든 것이 나의 것이므로 나에게 절하면 주겠다고 유혹을 합니다.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지금 ‘마귀’가 이 세상에 주인 노릇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빼앗긴 땅을 도로 찾아서 하나님께 돌려드리기 위한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방법입니다. 사탄은 어떤 방법을 제시합니까? 자신에게 절하면 돌려준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적 ‘마귀’의 거짓말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세상이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거짓말입니다. 마치 하나님과 무엇인가 합의를 본 것처럼 말합니다. 자신은 땅을 다스리고 하나님은 하늘을 다스리시기로 서로 합의를 봤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모처럼 찾아왔으니까 자기에게 절을 하면 이 땅 도로 주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이 세상을 마귀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마귀가 이 세상의 ‘임금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철저하게 ‘불법적인 점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거짓말에 속지 않으시고, 8절에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대답하시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려야 함을 강조하면서 이 시험을 물리치십니다. 마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주권에 복종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대처하신 것처럼 ‘오직 주권은 주님께만 있다.’는 믿음의 고백으로 이러한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 받아야 할 자리가 있다면 기꺼이 그 고난을 감수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9-12절은 사탄의 세 번째 시험이 기록됩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이끌고 갑니다. 그리고 성전 꼭대기에 세워서 뛰어내리라고 말합니다. 사탄은 왜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이끌었습니까? 예루살렘은 바로 ‘예수님의 사역이 완성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사탄이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이끌고 갔다는 것은 사탄의 ‘교묘한 의도’입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사탄은 ‘마침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높은데서 뛰어내려도 안 죽으니까 뛰어내려라!’는 요구는 ‘그렇게 뛰어내려도 안 죽는 기적적인 능력이 드러나면 굳이 십자가 안 져도 너를 메시아로 인정하고 따를 것이니 편한 쪽을 택하라.’는 유혹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지름길처럼 보이는 이 방법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다 겪으시고, 성부 하나님이 계획하신 ‘십자가의 길’을 통해, 그리고 ‘부활의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성취하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을 선택하신 겁니다. 이렇게 세 번의 시험이 모두 실패로 끝나자 13절에 마귀가 얼마 동안 떠나갔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에서 사탄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향하여 속삭이며 유혹하였지만, 예수님은 꺾이지 않으셨습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1절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성령에게 이끌리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비추시고, 예수님은 친히 그 길을 따르기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가운데에 의심과 우상숭배로 인하여 곁눈질하고 다 멸망당했던 것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순종의 길’을 택하셨고,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요청하고 계십니다. 십자가로 가는 발걸음만이 거룩한 승리를 이끌어내고 우리를 영광으로 인도한다고 말이지요. 그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온전한 순종의 삶을 통해 모든 시험을 이기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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