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문: 눅 17:11-19
◎ 제목: 온전한 구원에 이르기 위해
1. 본문개요 및 관찰
1) 11-14절: 열 명의 나병환자와 예수의 치유
A. 나병환자들의 간청(11-13절)
B. 예수의 치유(14절)
2) 15-19절: 한 사람의 감사
A. 사마리아 사람의 감사(15-16절)
B. 예수의 반응(17-19절)
2. 적용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구원은 전인격적이고 총체적인 사건입니다. 질병의 치유도, 노예 상태에서의 해방도, 삭게오처럼 탐욕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도 모두 ‘구원’에 속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구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구원자, 예수’와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모셔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에 대해 참으로 깨닫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 한 마을로 들어갔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주님을 만난 나병환자 열 명은 멀리 서서 소리 높여 은혜를 구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말이지요. 소망 없이 살던 그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이 다름 아닌 예수님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주님은 절망스러운 죄인으로 여기는 모든 이들의 호소를 들으시는 참 구원자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멀리서도 간절함을 보시고, 숨죽인 목소리도 들으십니다. 그분께 호소한 모든 이마다 만나주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역사로 지금 저와 여러분이 여기에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만나주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며 그분께만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 열 명의 나병환자의 간절한 외침을 들은 주님은 14절에 바로 치유하지 않으시고 다만 가서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라고 만 하셨습니다. 나병환자들은 그 예수님의 말씀에 의심치 않고 순종합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나아가는 도중에 병이 낫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은 적극적인 치유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병이 나을 것을 전제로 치유를 검증하는 절차를 밟으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치유의 과정’보다 ‘제사장들의 검증’을 통해 소외된 이들이 공동체 가운데 회복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는 구체적인 치유 행위가 없었음에도 의심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해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이처럼 믿음이란 말씀하신 분에 대한 전적 신뢰를 말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구체적인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말씀을 따라 내딛는 믿음의 걸음이 경이와 충격과 감격의 세계를 만나게 하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믿음으로 내딛는 걸음일 때에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 각자의 삶에서도 그러한 놀라운 은혜가 부어지기를 소망하며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철저한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15절에 치유를 경험한 환자 중에 오직 한 명만이 되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16절에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를 드렸는데, 그의 정체가 사마리아인이었다고 또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7절에 ‘열 명이 다 깨끗함을 받았을 텐데, 나머지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반문하시면서, 오직 이방인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어 왔음을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19절에 주님은 유대인에게는 없는 그 믿음을 보시고 구원을 선언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방인이었음에도 주님의 하신 일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깨닫고, 주님께 합당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가는 도중에 치유를 경험한 이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 제사장의 검증이나 사회적 회복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최우선은 바로 감사의 경배를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 외에 아홉 사람은 어디 있느냐며, 율법 의식에 사로잡혀 새 시대의 구원자를 깨닫지 못하는 아둔함을 질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으로부터 나간 치유의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임을 알고, 감사와 경배를 예수님께 보이는 믿음을 보시고는 구원을 선언하신 겁니다. 육신의 치유를 넘어 희년의 주인을 만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인으로 비록 유대인들에게 개 취급을 당하는 그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새 언약의 백성으로 의인의 회중 가운데서 불러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나병환자였던 사마리아인이 병을 고침 받고 예수께 나아 와, 구원받은 것을 바라보면서,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만 영혼의 구원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믿음 안에서 합당한 감사와 경배로 사는 것이 구원 가운데 사는 삶입니다. 이 새벽에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는 구원 받았다고 말하면서, 참된 믿음 안에서의 합당한 감사와 경배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스스로 살피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구원받은 자의 여정은 쉼 없이 이어집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완성, 영화에 이를 때에 우리는 하늘 안식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미’와 ‘아직’이라는 종말론적 긴장 사이에 나의 구원이 놓여 있음을 깨닫고, 늘 평안과 긴장 속에서 광야 같은 세상을 주님과 동행하여 걸어감으로, 구원의 여정에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완주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