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욥 30:15-31

◎본문: 욥 30:16-31

◎개요

16-19절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으로 인한 극한 고통에 대한 탄식

20-24절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절규와 원망

25-31절 결백함에도 불구하고 재난을 당하는 자신의 혼란과 고통 토로

◎본문연구

오늘 본문은 욥의 후기 독백을 다루는 29장, 30장, 31장에서 세 번째 문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행복했던 과거와는 대조되는 부분입니다. 앞에서 비천한 자들에 의해 조롱을 당하는 비참한 현실로 인한 탄식에 이어서 오늘 본문에 자신의 고난에 대하여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절규와 영육간의 고통으로 인한 탄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욥은 먼저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으로 말미암아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자신의 처지를 탄식하고 있는데, 16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어 자신의 부르짖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시며 자신이 소멸되도록 방관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 어린 절규를 하고 있는 모습을 20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통당하는 자를 돕던 자신의 의로웠던 과거를 돌아보며 복을 기대하였다가 도리어 재앙을 당한 자신의 혼란한 심경을 토로하고 재난 중에 있는 자신의 누추한 모습을 한탄하고 있는 모습이 25절부터 31절까지의 말씀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에 나타난 욥의 절규와 탄식에는 자신의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원망이 정당한 것이라는 암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특히 26절에서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라는 욥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로움과는 전혀 다르게 자신을 대우하고 있다는 불만을 내포한 것입니다. 욥이 까닭을 알 수 없는 재앙을 당하여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상당히 잃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욥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점은 욥이 이해할 수 없는 재앙으로 인하여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한 욥의 아내의 요구를 거절하였던 처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지켰다는 점이 바로 욥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점인 것이죠.

과연 욥과 같이 극단적으로 부조리한 일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 얼마나 되는 사람이 신앙을 욥과 같이 지킬 수 있겠습니까? 욥기가 기록된 이유 중 하나는 신정론적 모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그에 근거하여 절대 신앙을 요청하기 위함이라는 것이죠.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욥 역시도 결함이 있고 한계가 분명하였던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오늘 우리에게 귀한 본이 되고 있고 하나님께서 욥을 통해서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죠.

19절에서 욥은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진흙은 욥이 현재의 상황, 바로 재앙과 불행의 극심한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던지다라는 단어는 어느 한 대상을 지적하여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욥은 지금 하나님께서 자신을 표적으로 삼아서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심으로서, 자신이 극심한 고통의 밑바닥까지 떨어져 버렸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욥의 이러한 토로에는 자신을 까닭 없이 고난 가운데로 몰아넣으신 하나님의 섭리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도 담겨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로움과는 전혀 다르게 자신을 대우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죠. 물론 여기에는 인과응보적인 이해와 관련해서 고난을 막연하게 좋지 않은 것으로만 인식하는 욥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들도 이러한 실수를 범할 때가 많다는 것이죠. 성도들도 고난을 선한 것으로 여기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마 극히 드물거나 없을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고난은 피해야 하는 것, 아니면 무의미하거나 악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죠. 그리고 인과응보로 여기는 것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라도 때로 고난을 허락하시며, 그런 고난에 선한 목적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고난은 선을 이루기 위한 도구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에 대해 새로운 인식과 태도를 가지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여름이 되면 항상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죠. 바로 태풍입니다. 큰 비와 바람을 동반하고 남서쪽에서 바다를 타고 북상해서 물적인 피해, 인적 피해, 온갖 피해를 입히곤 합니다. 그래서 반갑지 않은, 해마다 찾아오는 손님이죠. 통계에 따르면 태풍은 매년 25개 정도가 발생하는데, 약 3개, 4개 정도가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도 이상기후 때문에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통 우리는 이러한 태풍을 무조건 악한 것으로 여기기 마련입니다. 사실 태풍이 가져오는 피해는 엄청나기도 하죠. 천문학적 재산 피해는 물론이고, 여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죠. 우리가 잘 아는 2003년 9월에 발생한 매미는 130명 정도의 사망자, 실종자, 그리고 약 5조원 가량의 재산 피해를 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풍을 좋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태풍이 지구에 굉장히 유효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그것은 태풍 그 자체가 엄청난 열에너지로서 그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분산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이게 왜 중요하냐? 그 에너지를 어느 한 곳에 집중시켜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오는 것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태풍은 강력한 폭풍과 폭우를 동반함으로 대기 중에 뭉쳐 있던 오염 물질과 육지 근해에 녹아 있던 오염 물질을 제거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땅 곳곳에 쌓여 있는 쓰레기들을 말끔히 씻는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고난이 바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허락하시는 고난은 때로 우리에게 심각한 고통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로 인하여 종종 절망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절망케 하고 망하게 하기 위하여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면에는 그 고난으로 인한 고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유익이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에는 우선 우리 안에 축적된 모든 나태함과 인위적이고 인간적인 신앙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죠. 또 우리의 영혼과 육신의 모든 쓰레기들과 독소들을 제거하도록 돕습니다.

가장 큰 위기가 가장 큰 기회이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을 주심으로 우리의 영적인 반성과 성숙을 도모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우리의 눈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시고, 불행과 좌절, 고통과 고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며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것입니다.

혹 하나님의 강권적인 섭리 가운데 태풍처럼 몰아치는 고난 중에 계시다면, 결코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고 외면하심을 나타내는 증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더 큰 뜻이 시작되고, 드러나기 위함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은 우리의 영혼을 깨끗게 하고 성숙케 하시는 방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축적된 모든 불신과 죄로 오염된 것들, 부유물들을 제거하며,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고 신뢰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신앙의 개혁과 성장의 기회로 삼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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