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눅 9:51-62


◎ 본문: 눅 9:51-62
◎ 제목: 부르심에 응답하는 제자도


1. 본문개요 및 관찰
    1) 51-56절: 예루살렘으로
        A. 사마리아 방문(51-53절)
        B. 제자들의 거친 반응과 예수의 책망(54-56절)
    2) 57-62절: 따름의 제자도
        A. 나는 다르리이다(57-58절)
        B. 나를 따르라(59-60절)
        C. 주를 따르겠나이다(61-62절)

2. 적용
    만약 성도님들께서는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들을 맞이하길 거절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사마리아 마을을 멸망시키자고 요청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여전히 힘과 복수의 방식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예수님이 오르신 예루살렘의 길을 함께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고, 나의 모습은 또한 어떠한지를 돌아보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을 중심으로 메시아의 사역과 사명을 강조합니다. 오늘 51절은 이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에 올랐음을 암시합니다. 승천하실 기약이 찼다는 표현에서 그 의미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사마리아를 지나가게 되었고, 이에 앞서 선발대가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52절에 그 선발대가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방문을 준비하기 위해서 제자들이 사마리아의 마을로 들어갔지만 그들은 지금 이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향한다는 것을 알고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최초에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예수님이 거절당했듯, 사마리아도 예수님의 방문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마리아의 거절에 대하여 야고보와 요한이 가장 먼저 반응을 합니다. 그 반응의 내용이 바로 54절에 나옵니다. 어떻게 반응합니까? 자신들이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거절한 사마리아를 멸하기 원하시는지를 예수님께 물은 것입니다. 매우 충격적인 반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제 새벽 시간에도 나누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거듭하여 ‘제자도’에서의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높아지고 싶다면 먼저 낮아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 거죠. 그런데 제자들은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영향력을 드러낼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사른다는 것은 어디에서 온 아이디어일까요? 맞습니다. 엘리야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갑자기 왜 ‘엘리야’와 같은 능력을 운운하며 예수님께 말하는 겁니까? 변화산 사건 때문 아니겠습니까?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눈에 변화된 예수님은 당장이라도 지금 이 땅에 나라를 세우고 놀라운 권세를 펼칠 분으로 비춰졌을 겁니다. 그러니 그런 대단한 예수님을 모시지 않으려는 사마리아 정도는 엘리야를 통해 내린 불 같은 것으로 징계함이 옳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제자들은 단순히 우리 대단하신 예수님이 영접받지 못한 것에 대해 화가 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모시고 있는 자신들도 제대로 대접을 못 받았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겁니다. 우리는 어느 대목에서 그런 제자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까? 바로 54절에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라는 표현에서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불을 내려서 저들을 살라 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불을 명하여 내리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자신들의 자존심에 스크레치가 났다는 거죠. 그래서 견딜 수 없으니 자신들이 불을 내리라 하늘에 명하겠다는 겁니다.

    제자들은 어떤 착각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 됨이 어떤 의미인지를 자꾸만 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 나라’의 성격이 어떠한지 말이지요. 하나님 나라는 ‘폭력적 방식’이 아니라 ‘은혜와 사랑’으로 확장해 나가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적들조차도 사랑하고 그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초점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복음이 거부당할 때 폭력으로 대처하려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은혜로 반응해야 함을 제자들에게 주지시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어떤 제자로 부르고 계시는지를 정확히 발견하고 깨닫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도 하나님의 구원으로 초대하기 원하십니다. 내가 눈을 돌려 끌어 안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돌아보고, 참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드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57-62절의 말씀은 예루살렘으로의 계속되는 여정 가운데 제자들을 향해 제자도의 본질과 주님을 따르기 위한 헌신과 결단이 무엇인지를 ‘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드러내십니다. 첫 번째 사람은 예수님께로 별안간 찾아와서는 따르기로 자처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그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의도로 따르려는 것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말에 곧바로 반응하십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을 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동문서답 같습니다. 하지만 이 예수님의 대답은 제자도가 세상적 안정과 안락을 포기하고 그리스도 중심으로 한 삶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59절에서 예수님은 두 번째 사람을 향하여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자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60절에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자신을 따라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가족의의무조차도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사명을 우선할 수 없음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61절에서는 또 다른 사람이 가족들과 작별을 하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합니다. 사실 이러한 요청은 ‘모세의 율법’에 기인한 요청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쟁기를 잡았다면, 전방을 주시하고 집중해야 하듯 과거의 일에 얽매이지 말고 새 마음으로 예수를 전심으로 따르는 제자도를 요구하신 겁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발걸음은 십자가의 무게를 진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힘과 권세를 원했고 그 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길은 고난과 희생의 길이며,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고자 하는 자만이 예수의 제자가 되어 걸어갈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주님의 제자도를 온전히 따르기로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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