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전도사 / 누가복음 10:25-42

본문 : 누가복음 10:25-42

제목 :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개요 :

25-37절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A. 영생에 대한 율법교사의 질문(25-28)
  B.
누가 내 이웃인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29-35)
  C.
이웃에 대한 예수의 질문: 누가 참 이웃이냐(36-37)

38-42절 마르다와 마리아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은혜 충만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열 때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은혜와 평강이 충만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삶의 분주한 일상 가운데 참된 긍휼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이웃을 향한 참된 긍휼이 우리 안에서 지금도 잘 작동하고 있는지요? 오늘 본문을 함께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간직하길 소망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10장 25절부터 37절까지는 어떤 율법 교사와의 대답 가운데, 선한 사마리아 비유가 나옵니다. 먼저 25절을 보면,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는지 예수님께 시험하고자 묻는 것입니다. 이어진 26절에서 예수님은 그에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는지 반문하십니다. 곧, 그는 마음, 목숨, 힘,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영생의 길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채워져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만족이나 종교적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결국 영원한 생명의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삶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28절에서 율법 교사에게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29절 그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다시 한 번 묻습니다.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는 질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강도만난 자의 이야기를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났습니다. 옷을 빼앗기고, 맞아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이를 보고 피하고, 레위 사람도 그를 보고 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세율법에 의하면, 시체를 가까이해서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적으로 그들이 옳을지 몰라도, 그들은 그의 이웃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반면, 유대인들이 무시하는 한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불쌍히 여겨 돕고, 싸매고, 주막에 머무르게 돌보아 주었습니다. 참된 이웃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이웃 사랑이 무엇입니까? 참된 이웃 사랑은 종교적 편견을 넘어, 도움이 필요한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그들을 품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종교가 있든 없든, 심지어 불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들을 사람으로서 기꺼이 돕는 것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치, 악인과 선인 모두에게 햇빛을 비춰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하심처럼, 자녀 된 우리가 그 빛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단순히 “누가 나의 이웃인가?”를 묻는 것에 머물기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긍휼의 손길을 내미는, 누군가에게 ‘이웃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너도 이와 같이 하라 37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사랑이 특정 사람들에게 제한되지 않고, 모든 이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오직 우리 성도님들은, 하나님 사랑뿐만 아니라 이웃 사랑으로 실천하며 나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를 향한 영원한 생명, 영원한 삶을 하늘에서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복음을 통해 증거하실 줄 믿습니다.

 

 두 번째 본문인 10장 38절부터 42절까지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자매의 집에 영접 받아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주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언니 마르다는 손님들의 방문 때문에 준비할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참지 못하고, 40절에 예수님께 따집니다. 동생이 바쁜 자신을 좀 돕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예수님은 동생 마리아의 선택을 42절에서 “한 가지 필요한 것”으로 칭찬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공생애 활동 기간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이상 없습니다. 예수님은 곧 하늘나라로 승천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마리아는 언니와 달리, 예수님의 말씀 듣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고, 많은 걱정과 바쁜 활동으로 분주하기보다 하나님 앞에 멈추었습니다. 그 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바른 선택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바쁜 일상의 일들이 있지만, 중간에 잠시 멈추어, 하나님께 집중하고, 이 시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 영적으로 늘 깨어 그 뜻을 놓치지 않아야 할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바쁜 일상에서 신앙의 본질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에게 중간 중간 물어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웃이 되어 긍휼을 베풀라고 가르치시는데, 이것이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사랑과 섬김을 요청하십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깊은 교제 안에 머무를 때, 우리의 삶은 사랑과 섬김으로 풍성해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종교적 의무로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사랑으로 세상에 나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들 모두 빛을 비추는 빛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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