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문: 눅 12:1-12
◎ 제목: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태도
1. 본문개요 및 관찰
1) 1-3절: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주의하라
2) 4-7절: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3) 8-9절: 예수를 시인하라
4) 10-12절: 성령을 모독하지 말라
2. 적용
세상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악한 세상은 때로 야수처럼 무자비하고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더욱이 체제를 위협하는 사람으로 비치면 혹독한 시련과 고통으로 그들을 짓밟습니다. 초대교회 기독교는 세상 왕들의 관점에서는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자들로 비쳤고, 박해받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기독교 또한 독재자가 정권을 잡은 나라에선 여전히 박해받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신앙인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충성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간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바는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앞선 11장의 말미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 즉 서기관들에게 가혹하리만큼 강력하게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12장으로 넘어오면서 무대가 전환됩니다. 예수님께서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과 마찰과 논쟁을 일으킨 것이 도리어 오늘 본문 1절에 나타난 것처럼 수만 명이 모여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모여드는 곳을 보시고는 예수님께서 1절 하반절에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하시는 배경이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이 된 상황’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어떤 의도가 들어 있는 겁니까? 지금 많은 사람이 몰려든 상태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종교적 권위와 외적으로 경건한 척했다는 겁니다. 너희들도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 제자들에게 주의를 시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룩이 반죽을 부풀게 하듯 잘못된 가르침은 공동체에 급속히 침투하여 전체를 부패시킵니다. 그들의 외식 또한 반드시 드러나게 됩니다. 겉의 깨끗함으로 속의 탐욕과 악독을 감출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제자는 위선을 극도로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말한 것이 밝은 데서 들리고, 어두운 데서 귓속말로 나눈 대화도 지붕 위에서 전하는 말처럼 퍼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드러내실 날이 온다는 사실을 믿고 늘 말과 행동에 진실한, 누룩으로 부풀린 듯한 말과 행동을 멀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바리새인들의 경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성도로 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외식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말씀을 하시고는 이어지는 4-7절의 말씀을 통해 ‘외식하지 않는 삶’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이라는 점을 주지시키십니다. 4절에서 우리가 먼저 주의 깊게 보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친구’라고 부르신다는 점입니다. 이는 제자인 너희들은 허례허식만 가득할 뿐 하나님 아버지와는 어떠한 친밀감도 없이 하나님의 아들을 적대시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뚜렷한 구별이 있음을 알리는 표현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찮은 참새에 비할 수 없는 귀한 존재로 제자 너희들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소중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된, 가장 작은 부분까지도 알고 개입하시는 하나님이 다름 아닌 우리 한 명 한 명의 진정한 ‘생살여탈권’을 가지고 계심을 기억하고 진정으로 그분을 두려워함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제자는 육체의 생명을 빼앗는 그 이상의 행위를 하지 못하는 이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의 영혼까지도 좌우하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해야 하며, 그분의 보호과 돌봄을 믿고 담대하고 의연하게 살아가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한없이 안전할 것이고, 그의 보호를 외면한다면 가장 위태로운 지경에 빠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자들의 정체입니다.
이 시간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각자 영원한 운명을 심판할 수 있는 심판자이심을 마음에 새기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도는 세상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함이 옳습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저 두려워함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한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기억하고 보호하시는 친밀한 사랑을 우리에게 매 순간 드러내십니다. 그 사랑을 신뢰할 때, 우리는 매 순간 그분 안에서 안전합니다. 반면에 그의 보호를 의심하는 자는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동일하신 전능하신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신뢰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으로 드러나게 될까요? 그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 8-9절은 예수님께서 누구 앞에서든지 예수님 자신을 시인하는 자만이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의 부인 당하는 일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생명을 위협당하는 두려운 상황에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면, 예수님도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 사람을 인정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하기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제자는 매 순간 ‘종말의 시각’으로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답답하고 위기라 여겨지는 현실일수록 더욱 시선을 미래에 두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시인하여 살면 성령께서 도우시고 우리가 올바르게 대처할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물론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시인하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자는 주님 앞에 설 것을 기억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분을 시인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바로 그 믿음을 사는 자를 도우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처럼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지만, 그 마음속에는 진정한 사랑과 겸손이 결여 된 인생은 아닌지 되돌아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마음속의 경건함이 외적인 행동으로 드러나야 하며, 그 행동은 진정한 믿음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이 시간 여기에 모인 여러분 각자가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겉모습이 아닌 진정한 내면의 변화를 추구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상을 의연하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악하고 두려운 곳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활을 약속받은 새 언약의 백성입니다. 죽음과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무릎이 후들거릴 만큼 두려워도 무릎을 세우고 용기를 내어 믿음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