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문: 눅 14:1-14
◎ 제목: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모습
1. 본문개요 및 관찰
1) 1-6절: 안식일에 병을 고치심
A. 바리새인 지도자들과 식탁 교제(1-2절)
B. 안식일에 합당한 일(3-6절)
2) 7-14절: 혼인 잔치 비유
A. 스스로 낮추라(7-11절)
B. 가난한 자들을 청하라(12-14절)
2. 적용
하나님 나라 제자는 전통적 관습과 규례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신과 가치관에 맞게 전통과 규례를 다시 판단하여 행동 양식을 결정하지요.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신앙적 양심과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나라에 합당한 제자의 모습이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배경은 ‘안식일’입니다. 이미 한 장 앞인 13:10-17에서 예수님은 회당에서 안식일에 한 여인을 치유하신 이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안식일에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식사 초청을 받으셔서는 그곳에서 ‘수종병 든 한 사람’을 보시고는 고치십니다. ‘수종병’은 ‘신장’에 이상이 생겨서 몸의 독소가 빠져나가지 못해 특정한 신체 부위가 액체로 심하게 붓는 부종을 동반하는 질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수종병 든 사람을 보면서 함께 바리새인의 집에 있는 율법 교사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이렇게 물으십니다. “안식일에 병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라고 말입니다. 아무도 대답을 못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사람의 병을 고치시고는 5절에 한 예를 드십니다. 만약 너희 중에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다고 하면 안식일이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역시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규례와 전통의 이름으로 냉정함을 보인다면 그것은 잘못 배운 결과입니다. 말씀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긍휼과 인애의 열매를 맺는 것이 합당합니다. 안식일의 본질은 뭡니까? 억압된 모든 이들에게 자유와 쉼을 주는 것이 바로 안식일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규례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그 본질을 외면하거나 왜곡한다면, 결국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의 삶은 온갖 부자연스러움과 경직됨으로 흐를 수밖에 없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어떻게 본질에 집중할 수 있습니까? 말씀 앞에 정직할 때입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에는 양보해선 안 됩니다. 하지만 말씀이 아닌 전통으로 굳어진 것에 대해서는 매 순간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유연함을 지닐 때,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7-14절은 혼인 잔치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7절에 혼인 잔치 비유로 가르치는 원인이 나오는데, 그것은 지금 바리새인의 식사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모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사 자리 배치는 예수님 당시 유대 지역에서 ‘사회적 위치’를 반영했습니다. 그러하기에 자신이 앉은 자리가 자신의 명예와 직결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초대한 사람은 초대받은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위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리를 정하는데 골몰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7-11절을 통해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상황’을 비유로 드시면서, 초대받은 사람에게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신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는데, 더 지위가 높은 사람이 뒤에 오게 되면 자신의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차라리 처음부터 끝자리에 앉아 있으면 초대한 사람이 그 사람에게 올라앉으라고 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영광을 빼앗기지 않게 된다는 거죠.
그러면서 너무나도 유명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11절에 나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는 원리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회적으로 높고 낮음을 규정하는 관례에 도전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러한 전통에 대해 변혁적 성격이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잔칫상에서는 높아지려는 자는 그곳에 앉을 수 없고, 철저히 섬기는 자가 존귀를 얻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아지고 싶으십니까? 낮아지십시오.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높여주시고, 칭찬해 주시고, 앞자리에 세워주십시오. 그때,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나의 일상이 하나님 나라가 되길 원하십니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기를 실천하십시오. 그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을 하나님 나라 잔칫상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게 할 것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 나라 원리를 깨닫고 삶에 적용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12~14절은 ‘초대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유의해야 할 일을 가르치십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식사 자리에 누군가 초대할 때 사회적 부와 지위를 가진 사람만 골라서 청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도리어 가난하고 몸이 불편하고 손과 발을 잘 사용하지 못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자들을 초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신 이유는 혹 초청받은 자들이 그를 다시 초청해 호의를 되갚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호의를 갚을 수 없는 자들을 청함으로 그들을 섬기고 하늘의 복을 쌓는 지혜를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을 마음에 믿는 사람들은 세상 가운데에서 가진 것, 사회적 위치와 명예로 등급을 매기는 문화에 대해 저항하게 됩니다. 그 문화에 이의를 제기하고 통속적 명예 사회의 허위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의 제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오히려 자신의 명성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까지 품고 가족, 형제, 자매로 환대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지향할 때만 이런 삶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예수의 제자는 호의를 갚을 수 없는 약자들을 섬겨 하늘에 복을 쌓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에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방법은 익숙한 옷에 자기 몸을 맞춰 사는 것입니다. 전통의 이름과 통상적 의식을 거스르며 살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도’는 다들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관례를 뒤집고 되짚는 일에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그 일은 수고가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제자는 고생하더라도 익숙하지 않은 옷을 입은 채 낯선 길을 가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말씀 앞에 늘 정직하고, 늘 낮아짐으로 행하며, 약한 자를 섬기는 예수 제자의 모습으로 온전히 서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