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누가복음 18:15-30
◎제목 : 누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가?
◎개요 :
15-17절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라
18-27절 부자 관리의 근심
A. 영생을 얻으려면(18-20절)
B. 청년의 반응과 예수의 명령(21-22절)
C.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23-27절)
28-30절 제자도의 대가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은혜 충만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은 수요심야기도회가 있는 수요일입니다. 함께 기도의 자리에 나오셔서 찬양과 말씀, 기도로 성령 충만한 시간되길 소망합니다. 학습 기법 중에 여러 기법들이 있지만 그 중 ‘비교와 대조’는 두드러지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듣는 사람에게 명확한 교훈을 줄 수 있습니다. 비교 대조는 대상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장단점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듣는 자에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비교와 대조는 어떤 것이 더 나은 결정인지 판단할 정보를 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늘 함께 읽은 말씀 직전인 9-14절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를 대조하며 누구의 기도가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지를 다루셨는데요. 이어지는 오늘 말씀에서도 ‘어린아이와 부자 관원’을 통해 누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지를 가르치십니다. 이 말씀 가운데 주님 주시는 진리를 함께 묵상하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본문 15절 말씀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했습니다. 이천년 전 유아 사망률이 높던 당시 부모들은 유명한 종교 지도자들, 특별히 오늘 본문의 예수님과의 접촉을 통해, 아이들이 건강히 자라고 축복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를 보고 꾸짖으며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정서를 생각해보면,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고대 사회에서 아이들은 오늘처럼 귀하고 순수하게 여김 받지 않았고, 심지어 사람으로 계수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16절에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 어린 아이 것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어린 아이는 어떤 특징을 지녔습니까? 바로 부모의존성을 지녔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자기 의를 자랑할 것 하나 없는 자입니다. 지금껏 등장한 세리, 죄인 또, 앞으로 등장할 맹인, 그리고 삭개오 같은 자들입니다. 그저 겸손히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오직 어린아이와 같이 부모의존성, 하나님 아버지만을 의존하는 의존성을 갖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7절 말씀처럼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순전히 받아들이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반면, 이어지는 18절에서는 앞선 어린아이와 대조되는 한 관리가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먼저 그의 피상적인 표현, 선한 선생님이여에 반문하시며,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한 분이라 대답하십니다. 사실 그의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이 바로 그 선한 하나님인데요. 예수님은 그것을 결코 알 수 없는 관리에게 그가 단순한 선생님도 아니고, 하나님과 동일 본체이신 그 자신이 선하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0절에 영생에 대한 대답으로서 율법을 지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그 관리는 자신 있게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1절에 대답합니다. 참 당당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흠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음 22절에서 그에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가 가진 큰 재산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마음 속 깊은 곳에 가진 물질에 대한 우상심을 아시고,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 그러자 이에 대한 그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23절에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심히 근심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흠 없는 삶을 자신하던 부자 관원은 앞선 9절부터 14절에 나타난 바리새인을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율법에 적힌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 하지만, 정작 물질 앞에 자신이 섬기는 진짜 신이 누구인지 그 실체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재물이란 우상을 더 사랑합니다. 그는 당장 이 땅에 머리 둘 곳 없다 하신 주님을 따르기엔 그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결국 그 관리는 가진 것을 다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 앞에 물질을 택함으로, 주님 따르기를 포기합니다. 앞서 나타난 어린 아이처럼 전적으로 부모님의 공급,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합니까? 전적인 부모의존성, 어린아이처럼 하나님만 의존하며 나아갈 믿음이 우리 안에 있습니까?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가진 상태에서 덤으로, 혹시 모를 안전장치로 가질 분이 우리 주님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전부가 되실 분, 우리를 친히 먹이시고 입히시고 공급하고도 남을 능력 있는 분이 우리 주님되시는 줄 믿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으며 이 땅 가운데 나아가는 성도님들 모두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한편 26절의 제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축복의 증표로 여겼던 부가 하나님 나라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그리고 동시에 ‘다 버리고’ 따른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의문이 28절에서 생깁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30절에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는 영생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현세의 여러 배는 단순히 물질로 대체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공급하심과 축복 그리고 성령 충만입니다. 또, 내세에는 영원한 삶이 약속됩니다. 우리 성도님들 모두 이러한 약속과 축복을 놀랍게 받는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27절에서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우리는 그저 주님만 믿고, 말씀만 믿고 나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결코 부자관원처럼 주님보다 주님이 주시는 이 땅의 것을 더 소망해서는 안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선 세리의 기도를 인정하시고, 오늘 본문에서는 어린아이를 하나님 나라의 표징으로 제시합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듯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