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문: 눅 24:1-12
◎ 제목: 부활의 새벽, 빈 무덤의 소망
1. 본문개요 및 관찰
1) 1-7절 예수의 살아나심
A. 여인들의 무덤 방문(1절)
B. 사라진 시체(2-3절)
C. 두 사람의 메시지(4-7절)
2) 8-12 여자들의 증언과 사도들의 반응
A. 부활의 첫 증인들(8-10절)
B. 베드로의 빈 무덤 방문(11-12절)
2. 적용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은 십자가 사건 앞에서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라고 믿었던 이들에게, 그분의 ‘십자가 형벌’을 통한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실 분이라 믿었지만, 로마의 권력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손에 처참히 죽임을 당한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들 마음 가운데 남은 트라우마는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제자들은 숨었고, 남은 것은 상처뿐이었고, 그분과 함께 걸었던 길마저 의심스러워졌습니다.
그런데 그 절망의 새벽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비록 비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이지만, 예수님의 시신을 향유로 정성껏 바르기 위해 용감하게 무덤을 찾은 여인들은 무덤의 돌문을 누가 옮겨줄지 염려하며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웬일일까요? 무덤의 돌문이 옮겨져 있고, 무덤 안이 비어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그들에게 선포하는 메시지를 듣습니다. “너희가 살아 있는 이를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방금 천사들의 선포인 눅 24:5-6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기적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죄와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 빈 무덤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충만한 소망의 시작점입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의 부활은 새로운 창조의 시작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여인들이 향품을 준비해서 무덤으로 간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였음을 보여줍니다. 여인들에게 있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예상을 넘어선 방식으로 일하셨습니다. 무덤이 비었습니다. 돌문이 열려 있습니다. 이 그림은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림인가요? 맞습니다. 여인들이 기대한 것은 그들이 따르는 스승의 비참한 죽음을 향품을 통해 아름답게 하려는 ‘마무리’였지만, 하나님은 죽음 가운데에서 예수를 살림으로 말미암아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보여주고 계시다는 거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나오셨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길 바랍니다. 이는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역사 속 질서, 곧 ‘죽음은 끝이다.’라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사건입니다.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 너머의 영원한 생명을 확증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저와 여러분에게 던지는 의미는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모든 고난과 눈물은 이제 ‘끝’이 아니라 ‘통로’가 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는 더 이상 우리를 묶을 수 없음을 선언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입니다. 이제 결코 죽음은 믿는 성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빈 무덤은 단지 ‘시신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도래했으며, 모든 피조물이 회복될 시작점이 예수님의 부활로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말씀합니다. 6절 말씀에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전에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는 말을 분명히 언급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여러 차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여인들은 그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 천사의 여인들을 향한 대답은 저와 여러분에게 믿음의 훈련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더라도, 그분의 말씀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므로 부활은 단지 놀라운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신실함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현실의 무게에 눌려 그것을 잊거나 의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믿게 하는 능력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인들을 부활의 첫 증인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당시 문화에서는 여인의 증언이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복음의 출발을 알리셨습니다. 이 부분이 의미하는 바가 또한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세상의 위계질서를 뒤흔들며, 보잘것없고 무시당하던 이들을 통해 세상의 중심에 진리를 세우십니다.
아니나 다를까 여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들은 즉시 달려가 제자들에게 전합니다. 부활을 경험한 사람은 절대 침묵할 수 없습니다. 놀라운 소식을 전했음에도 다른 제자들은 11절에 허탄한 듯 들려 믿지 않았지만, 12절의 베드로는 여인이 말한 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고자 무덤을 확인하러 달려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보고 12절에 “이 된 일을 놀랍게 여깁니다.” 이 베드로의 반응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앞에 서 있는 자의 반응이자, 새로운 믿음으로 들어서는 문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그 믿음은 자연스럽게 전도와 선포로 이어져야 합니다. 부활 신앙이 없다면 십자가를 따를 힘도 없습니다. 그 어떤 고난 앞에서도 기쁨과 담대함을 잃지 않는 이유, 그것은 부활의 소망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기념할 사건이 아니라, 매일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입니다. 빈 무덤은 죽음이 끝이 아님을, 고난이 절망이 아님을,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줍니다. 세상이 우리를 조롱하고 고난과 핍박이 닥쳐와도, 우리는 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며, 마지막 날에 우리를 다시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와 우리 교회 안에 살아 있는 능력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 묶여 살 수 없습니다. 이제는 부활의 증인으로, 세상 속에 진리와 소망을 선포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절망의 무덤을 넘어 생명의 길을 걷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