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눅 24:36-53

◎ 본문: 눅 24:36-53
◎ 제목: 평강과 사명을 주시는 부활의 주님

1. 본문개요 및 관찰
    1) 36-43절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
        A.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36-40절)
        B. 더디 믿는 제자들(41-43절)
    2) 44-49절 이 모든 일의 증인
        A. 다시 성경을 가르쳐주심(44-46절)
        B. 증인의 사명과 성령(47-49절)
    3) 50-53절 예수의 승천

2.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엠마오로 가는 길’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상실, 기대의 무너짐, 삶의 무게로 인해 소망이 사라진 길, 바로 그 길이 ‘엠마오로 가는 길’입니다. 누가복음 24장에서 우리는 두 제자를 만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약 11km 정도 되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걷는 것은 단지 물리적인 길이 아니라, 실망과 혼란, 상실의 감정이 가득한 내면의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랐고, 그분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들의 모든 기대는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지 한 인물의 죽음으로 그치지 않았고,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의 믿음, 소망, 미래에 대한 모든 기대의 붕괴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런 순간들을 맞이하곤 합니다.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변화되지 않는 상황, 헌신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고통과 배신일 때, 우리는 엠마오로 내려가는 마음이 됩니다. 예루살렘은 희망이 좌절된 곳이요, 엠마오는 현실을 수습하기 위한 도피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제자들의 여정에 한 사람이 합류합니다.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두 제자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 장면은 우리 인생의 현실을 아주 잘 드러냅니다.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우리의 눈이 가려져 그분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음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논쟁 속에 조용히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17절에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엇이냐?”라고 말이지요. 이처럼 주님은 우리 인생의 실망과 혼란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한가운데 들어오셔서 묻고, 듣고, 동행하십니다.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글로바입니다. 글로바와 또 다른 제자는 예수님의 죽음을 언급하며 21절에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랐다’라는 표현은 기대가 너무나 컸었는데 이미 그 기대가 무너졌음을 의미합니다. 기대는 무너졌고,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이 메시아이시라는 믿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 놓이게 된 겁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말을 끝까지 들으십니다. 우리는 오해하고 있는 제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삶의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일하시는 예수님을 붙잡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기도 가운데 마음의 실망을 털어놓을 때, 우리를 정죄하거나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동행하시는 예수님은 말없이 우리의 상처를 감싸안고, 먼저 귀 기울이시는 사랑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님께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닌,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의 오해를 풀어가십니다. 25절에 예수님께서는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고 두 제자를 경책하시고는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부터 성경 전체에 기록된 메시아의 고난과 영광을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증거로 부활체를 보여주시기보다, 먼저 성경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 시대에도 ‘눈앞의 기적’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말씀을 통해 깊어지고 견고해집니다.

    엠마오에 도착하자 예수님은 마치 더 가시려는 듯 행동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을 붙잡습니다. 29절에 “우리와 함께 유하시니이다.”라고 말하며 그분과 함께 있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다 알지 못해도, 그분의 임재가 느껴지면 마음이 끌리고 붙잡게 됩니다. 식탁에서 예수님은 떡을 떼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떡을 떼시는 장면은 단순한 식사의 한 부분이 아니라, 성찬을 상기시키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떡을 떼어 나누실 때, 자신이 십자가에서 찢기신 몸임을 계시하셨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주님을 알아봅니다. 그러나 그 순간 예수님은 사라지십니다. 주님의 목적은 그들에게 자신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눈을 열어 믿음을 회복시키는 데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단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니라, 그분을 믿는 증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33절에 두 제자는 예수님의 설명을 들으며 자신들의 마음이 점차 뜨거워졌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말씀 앞에 머물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감동을 주시고, 가려진 눈을 열어주십니다. 말씀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영적 현실을 열어주는 열쇠라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들은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절망 속의 도망자가 아니라, 부활의 기쁨을 증거하는 증인입니다. 고단한 하루의 여정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밤길을 뚫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부활의 기쁨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엠마오의 순간이 있습니다. 실망과 고난으로 인한 마음의 혼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살아갈 때, 우리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 곁에 계셨다. 다만 우리의 눈이 가려졌을 뿐”이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시고, 말씀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며, 떡을 떼시는 공동체 가운데 그 임재를 드러내십니다. 감겨 진 영적인 두 눈을 뜨십시오. 여러분 곁에 이미 주님이 계십니다. 절망의 여정을 소망의 길로 바꾸시는 분, 낙심을 믿음으로 바꾸시는 부활의 주님이 함께하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혼란한 세상 속에, 여전히 눈이 가려진 이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고, 그분의 사랑을 삶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눈이 뜨여지고, 성찬을 통해 그분의 몸을 체험하며,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주께서 살아계신다.”는 증언을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엠마오의 제자들과 같은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슬픔과 혼란의 길에서 말씀으로 눈이 열리는 자리로, 떡을 떼심으로 인격적인 만남으로, 그리고 다시 복음의 증인으로 나아가는 순례의 길이 바로 우리의 걸음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여러분의 엠마오 길에 함께 걸으십니다. 눈을 들어 말씀을 보고,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다시금 믿음의 걸음을 내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