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딤전 1:3-11

◎ 본문: 딤전 1:3-11
◎ 제목: 하나님을 경시하지 말라

바울 사도는 교회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에 비유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겠지요.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먼저 ‘대표성’입니다. 머리는 사람의 몸에서 가장 위에 있는 부분입니다. 누군가를 대할 때 가장 먼저 얼굴을 대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누군가의 ‘이름’을 머리 속에 떠올리면 우리는 그 사람의 얼굴을 또한 떠올리게 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은 ‘교회’하면 떠오르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여야 한다는 겁니다.

또한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라는 의미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손과 발, 오장육부가 다 ‘뇌’의 명령에 의해 움직여집니다. 뇌는 발을 향하여 앞으로 가라고 하는데, 발이 자기 마음대로 뒤로 가거나 그냥 자리에 주저앉는다면 그 사람의 ‘몸’은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교회는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철저히 복종해야 하며, 예수께서 살아가신 삶의 방식을 현실 속에서 모방하여 뒤따라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구성원인 ‘그리스도인’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분명 이름은 ‘그리스도인’인데,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분명 ‘그리스도인’이라 스스로 칭할지는 모르지만, 결코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따라야 그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이지요.

디모데전서는 바울 사도가 자신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디모데가 받을 때에 디모데는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지금 에베소에 있는 교회들을 돌보는 목회자로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바울이 보내는 이 편지는 에베소에 있는 여러 교회들 돌려가면서 읽혀질 서신입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1:1에 바울은 자신을 ‘예수의 사도’라고 밝힙니다. 예수의 사도라는 표현은 자신의 사도권이 다름 아닌 예수로부터 말미암았음을 강조하는 겁니다. 이렇게 자신을 사도로 밝히는 이유는 에베소 교회에 그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거짓 교사가 침투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교묘하게 침투한 거짓 교사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 4절을 보시면,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한다고 표현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다른 교훈, 신화와 족보는 이단 사설을 의미합니다. 왜 이것은 이단 사설이 될 수밖에 없습니까? 그 이유에 대해 4절 하반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삶은 빠져 있고, 오히려 변론으로 사람을 현혹하기 때문에 이 ‘신화와 끝없는 족보’는 이단 사설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바울의 설명은 우리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던집니다. 한 가지는 ‘바른 신학은 반드시 바른 삶, 바른 신앙으로 우리를 안내한다.’는 겁니다. 이단 사상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 같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치 집단 최면이나 세뇌가 된 것처럼 이단 교리를 주워대는 것은 최고일지 모릅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과 절대로 논쟁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에 필요한 성경 구절이나 논리를 짧은 시간에 머리 속에 입력을 해 놓기 때문입니다. 말은 잘 하지만 그들의 삶은 파탄이 나 있는 것을 우리는 여러 상황 가운데에서 발견하지 않습니까?

그저께였습니까? 신천지 집단이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종교 행사를 가지려 했는데 경기도에서 그것을 원천 봉쇄했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북한으로 풍선과 대북 전단을 살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듣고는 전격적으로 대관을 취소한 것입니다. 지금 정세와 상황을 볼 때에 있을 수 없는 비상식적인 행동입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그들은 ‘종교 탄압’이라는 궤변을 주워댑니다. 이것이 바로 ‘변론’만 남고 삶이 빠진 최악의 상황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바울 사도가 두 번째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잘 믿는다고 하는,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성도 너희들의 삶도 한번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신앙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이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나의 삶에서 ‘사랑의 실천’이 부재하다면 그것은 이단의 변론과 같고 그 신앙은 사람을 죽이고, 분열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돌아보라는 겁니다. 과연 너희들의 신앙이 ‘신화와 끝없는 족보’ 몰두하는 이단들의 신앙과는 다른 하나님의 경륜을 삶을 통해 이루어내는 본을 보이고 있느냐는 거죠. 만약 말 뿐이라면, 삶이 따르지 못한 그저 신학적 지식이나 성경 지식을 말로만 주워대고 있는 사람은 이단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고 바울 사도가 경고하고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 지식이 많고, 많이 기도하시는 분들 가운데에 맺어 내는 열매들이 아름답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기도 많이 한다고, 기도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데 왜 당신들은 기도 안하면서 문제가 해결 안 된다고 불평하느냐고 상대방을 ‘정죄’합니다. 자신이 경험한 신앙적 체험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앞세우는 그릇된 신앙의 행태도 있습니다. 그러한 신앙이 남기는 열매는 결코 ‘사랑의 열매’일 수 없습니다. 쓰디 쓴, 그리고 상대방을 죽이는 열매 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를 늘 신경쓰고 살피는 것이 참 신앙을 가진 성도가 보여야 할 바른 태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올바른 명령을 따라 살아내는 참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바울 사도는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는 이단 사상을 6-10절과 연결하여 ‘유대교의 거짓 가르침’과 또한 연결시키는 것을 봅니다. 바울은 ‘율법의 소극적인 측면’을 먼저 언급합니다. 율법의 소극적인 측면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어 그분의 마음을 알게 하는 기능’입니다. 율법은 불법이 가득한 사람들, 즉 다른 교훈을 따라 살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을 제어하기 위해 제정되었다는 거죠.

이른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두 대 강령으로 구성된 율법은 분명 그 율법을 적법하게 사용하면 선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 수 있도록 율법을 주셨고, 사람이 율법 지킴을 통해 언약 관계를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분명히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율법은 분명 ‘그분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의 상태’를 전제한다는 것을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라’는 명령은 선을 행하고 있는 자가 아니라 악을 행하는 자에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는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의 내용을 많이 알고 있음을 드러내면서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참 지식을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참 지식은 다름 아닌 ‘복음’입니다. 복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바른 지식에 집중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른 사랑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거짓 가르침은 ‘율법의 지식’은 강조하지만, 정작 중요한 ‘율법의 원리,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놓쳐버림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도리어 신실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겁니다. 그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진노‘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른 교훈은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자들, 즉 올바른 믿음과 바른 삶을 사랑하는 자들을 통해 드러납니다. 이 새벽에 하나님과 예수의 명령을 받아 그 명령대로 살아가는 사명을 부여받은 그리스도인답게 우리의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것만이 거짓 교훈에 빠지지 않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러한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고, 결코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하면서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기로 가르치려고만 하는 어리석은 삶이 아니라, 그 말씀에 자신을 깊이 드려서 그 말씀으로 나의 삶을 조율하는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매 순간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으로 하나님늬 성품을 드러내고, 온전히 높여 드리는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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