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암 1:1-2:3

◎ 본문: 암 1:1-2:3
◎ 제목: 포효하는 사자처럼

1. 본문개요 및 관찰
    1) 1절: 표제
    2) 2절: 주제 선언문- 선포의 시작
    3) 1:3-2:3: 이방을 향한 신탁
        a. 아람을 향한 신탁(3-5절)
        b. 블레셋을 향한 신탁(6-8절)
        c. 두로를 향한 신탁(9-10절)
        d. 에돔을 향한 신탁(11-12절)
        e. 암몬을 향한 신탁(13-15절)
        f. 모압을 향한 신탁(2:1-3)

2. 적용
    오늘부터 아모스서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베를레헴에서 남쪽으로 16km 정도 떨어진 ‘드고아 지방’의 목자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드고아 지역은 ‘남 유다’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남 유다의 선지자가 ‘북 이스라엘’로 가서 선지자 사역을 했으니 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겠지요. 아모스는 ‘남 유다 왕국’의 사람으로서 외부자의 객관적 시선으로 북 이스라엘을 살피고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의 직업은 ‘목자이며 뽕나무를 재배하는 사람’입니다. 뽕나무의 잎은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었고, ‘목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노케드’는 일반적인 목자를 가리키는 명사 ‘로에’가 아닌 대량으로 가축을 사육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대 농장주’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통상에 능하고, 당시 세계 정세를 잘 읽을 수 있을 만큼의 상당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많은 학자들이 생각을 합니다.

    아모스도 ‘호세아’와 같이 ‘여로보암 2세’ 때에 활동하였습니다. 특별히 표제를 보시면 ‘여로보암 2세 때 발생한 지진 전 2년’에 활동했다고 기록하고 있기에 대략 주전 767-753년에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여로보암 2세 통치기는 지난 번 호세아 선지자 때에도 말씀 드렸듯이 북 이스라엘의 번영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통일 국가 때에 ‘북쪽 경계’였던 ‘하맛 어귀’를 회복하였고, 반대편 아라바는 사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때, 여로보암 2세는 이전의 이스라엘 땅을 모두 회복한 왕이었습니다.

    이로 인한 경제적 부는 막강했습니다. 거대한 부가 쏟아져 들어와, 이것을 이용하는 부유층들이 생겨났습니다. 사치스러운 집, 상아로 만든 침상, 비파 소리와 포도주, 귀한 기름 등 귀중한 물건들이 풍요의 시대를 증명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번영 이면에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부는 상류층에 편중되었고 대다수 백성들은 지도층의 부정부패로 고통 받아야 했습니다. 넘치는 부는 부유한 이들로 하여금 제사에 몰두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제사장의 권력을 강화시키고 거짓 제사로 가득 채우졌습니다.

    아모스서는 북 이스라엘의 이러한 경제, 사회, 종교 구조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썩어가는 북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던 아모스 선지자는 다른 선지자들과는 달리 ‘타민족’들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로 아모스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시작하는 것입니까? 2:4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죄가 이방 나라들의 죄를 능가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 먼저 이방 나라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먼저 제시되는 겁니다. ‘이방인들의 이 죄들로 인하여 내가 불을 보내서 다 살라 버릴 거야! 그런데 이들보다 더 심각한 이스라엘아! 너희는 어떡하면 좋으니?’ 이것이 바로 아모스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 나가는 방식이라는 거죠.

    이방을 향한 메시지는 아람으로부터 시작해서,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 모압으로 이어집니다. 주목할 것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먼 다메섹에서부터 인접해 있는 모압으로 조금씩 마치 토끼몰이를 하기 위해 함정의 중심부로 몰아치는 듯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메시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 나라들의 죄악을 조목조목 언급하시면서, 결국 그들을 향한 심판의 비유는 ‘불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불로 모든 것을 살라버리겠다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하나님께선 이방을 향하여 ‘서너 가지 죄’ 때문에 각 나라를 향해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서너 가지 죄’라는 표현은 ‘몇 가지 죄’라는 가벼운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죄의 심각성 혹은 확장성’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각 나라들의 죄목을 면면히 따져보면 각기 다 다릅니다. 아람은 ‘길르앗을 짓밟으며 타작한 죄’를, 블레셋과 두로는 ‘모든 포로를 사로잡아 에돔에 인신매매한 죄’를, 에돔은 ‘전쟁에서 패한 이들의 뒤를 쫓아가며 무자비하게 찢어 죽인 죄’를, 암몬은 ‘임신한 길르앗의 여인들의 배를 가르기까지 씨를 말리는 잔인한 행위를 범한 죄’를, 끝으로 모압은 ‘적대적 관계에 있던 에돔 왕의 뼈를 재가 될 때까지 태운 죄’를 각각 지적합니다. 서로 다른 죄이지만 죄의 본질은 같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반하는 도전이자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죄인 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불을 보내시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들의 죄가 임계점에 다다랐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로움을 드러내시고 이른바 ‘약육강식’의 ‘강자와 승자 중심의 세상 질서’를 바로 잡으십니다. 약자를 억압하고 인권을 침해하고 생존을 위협하며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무력으로 무고한 희생자들을 만들어내는 그 어떠한 세력이나 체제도 결코 하나님은 묵과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에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신앙으로 인해 목숨을 위협받는 이들이 세계 도처에 있습니다. 멀리 찾을 것이 없습니다. 북한이 그러합니다. 동남아에 선교사님들이 많이 나가 있기 때문에 ‘복음’이 자유롭게 전파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남아 가운데에도 ‘인도네시아’의 일부 지역에선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이 ‘실정법’으로 지켜져서 포교 또는 기독교 신앙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할 일입니다. 중동 지역을 말할 것도 없겠지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이런 상황을 그냥 두고만 보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시는 겁니다. ‘서너 가지 죄’로 그 죄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시는 겁니다. 그리고 때가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아비의 호소로, 왕의 호통으로, 사자의 포효’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사자와 같은 포효가 들리기 전에 정작 우리 믿는 자들은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악한 주변의 죄악으로 인해 물든 나의 모습은 없는지 말이지요.

    아모스서는 열국을 향한 진노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우상과 열강을 숭배하고 의지하는 ‘자기 백성’을 향한 분노입니다. 풍요의 시대에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셔서 결국 불의와 탐욕에 물들고 잠든 성도들을 다시 일깨우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 깨달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악이 득세할수록, 우리 믿는 자들의 신앙의 두께도 점차 얇아지고 세상을 닮아갈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우리 주님 다시 오십니다. 그 때에 책망 받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인정받는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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