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아모스 3:1-8
◎개요
1-8절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 선언의 필연성 논증
A. 언약 관계에 근거한 심판의 필연성 논증(1-2절)
B. 인과율로 설명되는 수사학적 질문을 통한 논증(3-6절)
C. 선지자(아모스)를 통한 심판 선언의 정당성 논증(7-8절)
◎본문연구
오늘도 새벽예배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은혜 충만한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금요기도회가 있습니다. 함께 나오셔서 부르짖고 응답 받는 귀한 시간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하셨다고 출애굽기 19장 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출애굽 백성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독수리의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그들이 애굽 노예가 되어, 사방이 막혀 부르짖을 때, 독수리의 큰 날개로 곤경에서 건져 올리신 구원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런데 출애굽 후 몇 백 년이 지난 아모스서에서, 이 하나님의 이미지는 변하여 울부짖는 사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이미지가 독수리에서 사자로 변했을까요? 욥기, 시편, 잠언에 묘사된 사자는 공포의 대상으로 파괴적인 동물로 묘사됩니다. 특별히, 열왕기서의 사자는 우상 숭배, 불순종하는 자들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아모스서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우상숭배와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포효하시는 사자로 나타내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출애굽 이후 몇 백 년이 흐르는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수많은 죄를 쌓아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렇게 죄를 지을 때마다, 여러 번 선지자를 보내시고 이방민족들을 보내는 등, 여러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발걸음을 돌이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같은 죄를 반복하고, 오히려 더 나빠져서,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3장 1절에서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아 들으라” 말씀하시며,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이스라엘의 관심을 돌리고 계십니다.
이어지는 2절 말씀에, 하나님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말씀하시는데요.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달리,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수많은 가나안 우상들, 바알, 아스다롯, 다곤, 등의 우상들을 숭배한 것입니다. 이런 불성실한 북이스라엘의 모습을 볼 때, 우리도 오늘날 우리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 마음 속 깊이 하나님 외에 숨겨둔 여러 우상들을 은밀히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내 야망일 수 있고, 비전 그 자체가 될 수 있고, 하나님보다 앞서는 그 어떤 것이든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 된 언약관계를 깨뜨리는, 언약 불이행의 모습입니다.
다시 본문의 이스라엘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에게는 언약관계에 충실할 책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출애굽 이후 시내산과 모압 평지에서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 언약관계를 깨뜨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문책하겠다, 보응하겠다 말하십니다. 그 모습은 3절에 뜻이 다른 두 사람이 동행하지 못한다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크게 실망하여, 이스라엘을 더 이상 사랑의 동반자, 신부로 보지 아니하고, 아예 뜻이 다른 동행할 수 없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는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동반자 쪽에 가깝습니까, 아니면 서로 뜻이 달라 더 이상 동행할 수 없는 자에 가깝습니까?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랑의 동반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택하며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4절부터 6절까지의 비유는 인과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쉽게 대답할 인과관계의 질문을 통해, 까닭 없이 무서운 심판을 내리지 않는다는 정당성을 밝힙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은 무사안일한 마음으로 선지자의 예언을 앞의 2장 12절에서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당장의 경제적 황금기 가운데, 눈에 보이는 세상현실의 부요함과 편안함에 안주하고, 그들에게 예언된 멸망을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선지자에게 그런 재수없는 이야기, 불행한 예언은 하지 말라고 위협하고 경고했습니다.
만약 지금 우리가 북이스라엘처럼, 현실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편안하다고 할 때, 마지막 종말이 왔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는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그 예언을 아멘으로 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 믿음과 소망이 이 땅, 이 삶에만 머무르고 있는지 아니면, 하늘나라에 두고 있는지 확인하길 소망합니다. 그저 현실 삶에만 우리 모든 소망과 꿈을 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 천국소망을 품고 사는 신앙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직 우리의 영원한 고향, 기억할 본향은 하늘나라인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7-8절에서 선지자 아모스는 하나님이 계시의 하나님, 그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오늘처럼 성경이라는 특별계시를 갖지 못한 구약 백성들은 이렇게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와 뜻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선지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동안 백성들은 회개할 시간과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나단의 경고를 들은 다윗이 회개했고, 요나의 경고를 들은 이방 니느웨가 회개하여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말씀이 들릴 때가 돌이킬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자가 많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사, 기회를 주십니다. 언제 어떤 상황이든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세밀히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 말씀이 들려올 때,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길 원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피할 길과 형통의 길이 우리 앞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북이스라엘의 부요함과 편안함이 존재하는 오늘날에, 늘 말씀에 깨어 있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늘 천국복음과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는 성도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