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암 5:1-17
◎개요
1-3절 이스라엘에 대하여 지은 여호와의 애가
4-6절 첫 번째 권면: 여호와를 찾으라
7-13절 고발: 정의를 저버린 이스라엘
14-15절 두 번째 권면: 선을 구하라
16-17절 사마리아 성에서 울려 퍼지는 애곡
◎본문연구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절부터 3절까지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지은 여호와의 애가이고, 4절부터 6절까지는 여호와를 찾으라는 첫 번째 권면, 7절부터 13절까지는 정의를 저버린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4절부터 15절까지는 선을 구하라는 두 번째 권면, 16절부터 17절까지는 사마리아 성에서 울려 퍼지는 애곡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대 근동사회에서 성문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이곳을 정복하면 한 나라를 정복할 수 있는 관문이었고 평소에는 중요한 사항들이 논의되던 장소였습니다. 성문마다 재판관이 임명되어 재판을 집행했고 증인에 의해 재산이 나누어주기도 했습니다. 아모스서에서도 성문은 재판의 장소로 등장을 합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권력층은 뇌물을 주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재판으로 이끌었습니다. 더구나 재판에서 불의를 책망하거나 정직하게 말하는 자들을 싫어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성문에서 정의를 행하라고 요구하며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 국가의 운명은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처녀처럼 기울 것이라 말씀합니다. 불의한 악에 대한 심판이 가혹하여 죽음에 내몰릴 것이기 때문이죠. 하늘의 별처럼 많았던 백성이 급격히 줄어 생존이 위태로운 처지에 몰리게 되고, 스스로 일어날 수도, 일으켜 줄 이도 없는 소망없는 상태에 이릅니다. 광장과 거리는 울음과 슬픔으로 가득하고, 농부를 불러 애곡을 해야 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이 죽음을 맞는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죽음으로 임하셔서 이스라엘을 지나시는 날, 뭇 생명은 초개처럼 스러진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참상을 예견하는 선지자의 마음은 고통스럽고 슬플 뿐이죠.
아모스의 예언은 단호하고 분명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자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이 기다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애가를 부르지 않으면 장송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누구든 예외가 없습니다. 오늘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내일 두려움의 통곡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같이 임하여 멸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고 공의를 땅에 내던졌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들은 힘없는 자를 밟고, 부당한 세를 거두었으며, 의인을 학대하고,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했습니다. 성소만 나서면 돌변하여 약한 자의 재산을 갈취하고 착취를 일삼았다. 책망하는 사람의 입을 막고 정직히 말하는 자를 침묵시켰죠. 그 죄는 무겁고 중했습니다. 그러니 대리석 돌로 화려한 집을 지으나 거할 수 없고,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나 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죠. 심판의 도끼가 이미 그 발에 놓여 있는 것이죠.
완악한 이스라엘에게도 살길을 주십니다. 거룩한 공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고, 헌신이 회개를 대신할 수 없고, 주일성수가 주중의 삶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자기만족의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죠.
심판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너희는 나를 찾으라는 말씀을 반복하시며 생명 얻을 길을 제시하십니다. 바로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않는 것, 악을 미워하고 선은 사랑하며 정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다시는 벧엘과 길갈, 브엘세바를 찾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분이십니다. 누구도 그 진노의 불을 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또한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잔치의 노래를 멈추고 애가를 부르며 긍휼을 구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돌이키시는 분이시라는 것이죠.
심판의 이유는 정의의 실종입니다. 정의가 더 가동되지 않는 부정한 사회이기 때문이죠. 공정해야 할 정의가 힘 있는 자의 손에 넘겨지면서 억압과 학대와 착취의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약탈한 것을 누리지 못하게 하시고, 누려도 늘 허기지게 하십니다. 그래서 허무가 심판이죠. 심판을 돌이킬 수 없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면할 수 있습니다. 악에서 돌이키는 것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실종된 정의가 제자리를 찾고 무너진 공의가 보수되게 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첫 사람 아담이 그랬듯이, 인류는 버릇처럼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도 하나님으로부터 달아나려는 백성과 그럼에도 그런 백성들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마치 숨바꼭질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결국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찾으라는 명령은 다름 아니라 돌아오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심판을 통해 새롭게 되는 것이 참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는 심판 전에 주님께로 돌아온 자녀들이기에 더욱 감사하고 기뻐하며, 또한 매일의 삶에서 지은 죄는 날마다 회개하시며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누리시는 저와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