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니아의 순종】

(행 9:10-15)

김기형 목사

우리 속담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지요. 그 만큼 우리의 판단과 행동은 나와 가까운 사람,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쏠리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에, 이처럼 자연스러운 ‘심리적 작용’을 거슬러야 하는 ‘행동’을 요구하신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원수와 같은 사람에게 ‘인정’을 베풀고, 그 사람을 끌어안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우리는 쉬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냐는 말이지요.

물론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대 강령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원수를 향하여 등에 칼을 꽂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으로 품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만약 내가 가서 도와야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정면으로 대적하고, 기독교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말입니다. 단순히 ‘인간적 정리’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았을 때’ 해서는 안 되는 선택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라는 하나님의 싸인이 주어졌다면 성도님들께서는 어떤 선택을 하시겠느냐는 말입니다.

오늘 아나니아는 그러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습니다. 단순히 ‘나쁜 사람’을 구제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주의 도’를 위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최고의 악질’로 정평이 나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청천벽력과 같은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사울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안수하라’는 것입니다. 귀를 의심케 만드는 명령인 것이지요. 하지만 아나니야는 하나님 앞에 다음의 세가지 이유 때문에, 순종함으로 사울을 바울 되게 하였습니다. 그는 어떻게 순종할 수 있었습니까?

1)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것이 ‘참된 비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2)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믿음’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아나니아와 같은 믿음의 사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일의 규모로 사명의 위대함을 계산하지 않는 사람’, ‘사실에 매몰되지 않고 진리 위에 굳게 서는 사람’, ‘작은 순종을 통해 위대한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하는 믿음의 사람’을 오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나니아의 순종을 배워, 주님의 귀한 비전에 함께 동참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역 그룹토의적용>

① 지난 한 주간 동안 가장 감사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② 오늘 본문과 설교에서 은혜 받은 것을 이야기 해봅시다.

③ 나는 섬기는 일에 대해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④ 정확한 정보를 좇다가 믿음으로 도전하지 못한 경험은 없으십니까?

⑤ 도무지 순종할 수 없을 것 같은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해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