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빌 1:1-11
◎ 제목: 사귐의 공동체
1. 본문 개요
a. 빌 1:1-11 빌립보 성도들을 위한 감사와 기도
2. 관찰
a. 1-2절 인사말
b. 3-6절 하나님께 감사
c. 7-8절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태도
d. 9-11절 바울의 기도
2. 적용
오늘부터 6일 동안 빌립보서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빌립보서는 총 네 장으로 구성된 짧은 서신입니다. 이른바 ‘기쁨의 서신’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빌립보서가 작성된 시점은 바울 사도가 3차 전도여행까지 모두 마무리 한 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붙잡혀서 결국 로마로 가서 ‘가택연금’이 되었을 때입니다. 로마의 감옥에 잡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택 연금’으로 매여 있는 상태에서 쓴 서신이기 때문에 ‘옥중서신’이라 불립니다. 옥중서신에는 빌립보서 외에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가 있습니다.
빌립보서는 일종에 ‘영수증’의 역할을 하는 서신서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바울 사도를 ‘물질’를 통해 잘 섬겼습니다. 금전적인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감사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랑에 대한 감사로 ‘내가 너희들을 생각하면 기쁨이 끊이지 않는다.’는 말을 가감 없이 합니다. 그래서 ‘기쁨의 서신’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 사도가 2차 전도여행 때에, 소아시아에서 선교하는 것을 성령께서 막으시는 것을 깨닫고 밤에 기도하는 중,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믿고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진출합니다. 그리고 바로 마게도냐 지역의 수도 역할을 하는 ‘큰 성’인 빌립보에서 ‘자주 장사 루디아’를 만나고 거기에서 빌립보 교회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옥에 갇혔을 때 옥문이 열리는 놀라운 경험도 하였고, 그 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간수의 가족들도 다 세례를 받고 빌립보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2절은 인사말이고, 3-11절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감사와 기도가 이어집니다. 바울은 1절에 자신과 공동발신자인 디모데를 언급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빌립보에 처음 교회를 세울 때 함께 있었던 인물로 빌립보 성도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인물입니다. 바울은 자신과 디모데를 공히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칭합니다. 디모데와 자신의 사역을 한데 묶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가택연금’ 상태에 있습니다. 로마의 권력에 떠밀려 로마까지 온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속에 로마로 왔으며, 하나님 나라 사역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자신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빌립보 성도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로 묘사합니다. 자신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고, 동일하게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음을 강조함으로 하나 됨을 표현합니다.
이어지는 3-11절을 한 단어로 요약해 보자면 ‘감사’입니다. 바울 사도가 비록 매여 있는 신세임에도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빌립교 교회 성도들 때문이라는 겁니다. 성도들의 신앙이 그를 행복하게 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의 전도를 받고 믿은 첫날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해 왔습니다. 그리고 사도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빌립보 성도들이 늘 참여해 왔기 때문에 그들은 늘 바울의 기쁨이고 행복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기도를 통해, 물질적인 지원을 통해, 사도의 가르침에 충실한 교회를 일구는 것을 통해, 감옥에 갇히기 까지 수고한 사도 바울을 흡족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면 항상 고린도 교회와 대조 된다고 생각합니다. 빌립보 교회와 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서로 다릅니다. 먼저 바울이 머물렀던 기간을 생각할 때에 빌립보 교회는 길어야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다였지만, 고린도 교회는 1년 반 정도 머물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부자였지만 빌립보 성도들은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었던 성도들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울이 투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바울의 사도성을 공격하고 바울의 가르침에 반하는 행동들로 인하여 바울의 근심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은 오랜 시간 함께 한 것으로, 그리고 흘러넘치는 물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바른 신학적 바탕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달려 나아가는 사귐의 공동체’가 될 때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의 목적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하나 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 되는 교회 공동체가 바로 참된 교회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전대중앙교회가 늘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주님의 복음’을 위해 뒤로 물러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공동체로 세워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사귐의 역사’가 교회 공동체 안에 묻어나야 합니다. 서로 기도해 주고, 서로의 기도를 통해 어려움들이 극복되고 일어나는 추억이 묻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전 공동체 차원에서의 큰 기도제목에서도 있어야 하는 경험이고, 소그룹인 구역 모임 가운데에서도 그런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날 때에 우리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공동체로 세워지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이 지금 로마에 잡혀 있는 상황에 대해 그 일이 바울에게 있어서 ‘주의 복음을 위한 일’인 동시에 ‘자신들을 향한 사랑에서 나온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랑하다가 당한 고난이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겪는 고초를 원망하기 않고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과 감사는 성도들을 향한 그의 기도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하여 9-11절을 통해 중보의 기도를 멈추지 않는 것을 봅니다. 감옥 안에서 성도들이 자신의 수감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도리어 의의 열매가 가득한 교회가 될 때까지 지식과 총명으로 사랑이 풍성해지고, 그 사랑으로 선한 것을 잘 분별하여 허물없는 자녀로 주의 날을 맞이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의로운 주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존재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지금 참으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와중에 있습니다. 이미 예루살렘이 있는 동안에 여러 번 변론을 하면서 자신의 대적들과 맞섰고, 결국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작정을 했기에 관할 지역의 분봉왕은 그를 로마로 보내게 된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역경이 바울을 덮쳤습니다. 어쩌면 그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너무나 많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견딜 수 있었는데, 그것은 어쩌면 ‘빌립보 성도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한 사람만 신실하게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버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서로를 보존하며 보살피는 ‘성도의 사귐, 성도의 교제’입니다. 우리 전대중앙교회가 늘 서로를 향하여 그런 아름다운 교제가 살아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각자도생의 상황에서, 꾸역꾸역 걸어가고 있는 내 형제 자매를 향하여 믿음으로 굳게 서서 감사와 간구를 드리는 그 한 사람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습니다. 그 한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