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빌 1:12-2:4

◎ 본문: 빌 1:12-2:4
◎ 제목: 그리스도께 매인 기쁨

1. 본문 개요
    a. 빌 1:12-26           바울의 현재 상황과 복음의 진보
    b. 빌 1:26-2:4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

2. 관찰
    a. 1:12-14           바울의 매임
    b. 1:15-17           복음 전파
    c. 1:18-21           어떤 형편이든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심
    d. 1:22-26           무엇이 유익한 일인가
    e. 1:27-28           복음을 위한 협력
    f. 1:28-30           고난에 동참
    g. 2:1-4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 됨

2. 적용
    바울은 지금 로마의 감옥에 있습니다. 로마에 투옥 되었다는 사실은 바울과 관련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고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복음’만은 진전했다는 사실을 성도들이 알기 바랐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2절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잡혀 있는 상황이 복음의 진전을 방해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 상황에 대해 전혀 낙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의 진전의 증거’로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 번째 증거는 13절에 나타난바 지금 자신을 잡고 있는 ‘로마 시위대’ 안팎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입니다. 이 경험은 지금 빌립보서를 받아 읽게 될 ‘빌립보 교회’가 처음 개척될 때와 유사합니다. 빌립보에서도 옥에 갇히는 일이 있었고, 그 결과 간수 가족이 세례를 받는 일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러하기에 바울은 지금 그의 매임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섭리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증거는 그의 매임으로 로마의 다른 성도들이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14-15절에 그 내용이 나타납니다. 일부는 바울을 염려하여 선한 기회를 마련하려고 애쓰며 복음을 전한 반면에, 다른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바울을 더욱 어렵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복음을 전했다는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 16-17절은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16절에는 먼저 ‘선한 의도’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바울이 복음을 변증하기 위해 매이게 되었다는 것을 바라보며 사랑으로 복음 전하는 일에 자신을 드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17절에서는 만약 자신들이 복음을 전파하게 되면 매여 있는 바울이 더욱 괴로워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니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다고 또한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을 기뻐하고 또 기뻐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은 갇혔지만 결코 복음을 갇히지 않았음을 발견합니다. 복음만 전해질 수 있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사람이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21절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겁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자신이 죽어도 유익하다는 고백 말입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이 매인 상태에서 ‘석방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그의 최대 목표는 자신의 형편이나 처지가 어떠하든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든 석방되어 성도들과 재회하든, 그의 모든 운명이 신실하신 하나님께 붙들려 있다는 확신 가운데 있습니다.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존재의 이유이고 삶의 목적이며 그의 전부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바울의 고백과 같은 고백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를 바울의 고백에 비추어 보면서 ‘나는 정말 참 복음의 의미를 삶 가운데 실천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는 말이지요. 바울은 ‘내가 만약 살아 있다면 그것은 아직 살아서 복음을 위해, 그리고 형제 자매를 위해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울 만의 고백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으로 갈라디이서에 고백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삶의 이유도 오직 그리스도이며, 복음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이미 죽었던 우리를 아들의 보혈로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 이유는 바로 ‘복음’이 되어야 함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 새벽에 자기 유익보다 복음과 성도들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바울은 1:27-3:4절까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하여 ‘공동체의 신앙을 위한 권면’을 시작합니다. 그 권면의 핵심은 1:27절에 나타나는 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생활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 ‘폴리튜오마이’는 ‘도시 시민으로 살다.’라는 뜻입니다. 즉,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공동체가 연합해 한 마음으로 한 뜻을 성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성도의 신앙생활은 개인의 차원을 뛰어넘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여기에서 ‘대적자’가 누구인지 바울이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바울은 성도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대적자들의 공격이 성도들을 멸망시킬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오히려 성도들의 구원의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 사도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 전쟁’이 있다는 것을 빌립보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결코 ‘복음’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음에 합당한 삶은 고난으로 이끌 수밖에 없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 스스로를 위해 믿음으로 이끌지만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고난으로 이끕니다. 따라서 그것은 세상과의 싸움을 요구한다는 겁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이러한 ‘세상과의 싸움’에 모범을 보였고, 빌립보 성도들은 그러한 바울의 싸움을 보고 들었으며 또한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1절에 ‘그러므로’는 ‘이처럼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은혜를 누리고 더불어 고난을 겪는 것을 본 빌립보 성도들은 그러므로’ 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더욱 ‘연합’에 힘써야 한다는 말이지요.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이 같은 마음과 같은 사람으로 한 뜻과 한마음을 품고 살아가야만 이 고난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나 됨’을 이룰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2:3-4절의 내용처럼 자기를 드러내기 보다 자기 부인의 십자가를 본받아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자기 일을 잘 감당할 뿐만 아니라 지체들의 일을 나의 일처럼 여기며 감당하는 것을 통해 바울은 ‘하나 됨’을 이루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권면을 실천하는 공동체는 결코 ‘세상’과 같을 수 없습니다. 세상 속의 공동체는 늘 나뉘고 반목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세상의 공동체와 차별되는, ‘구성원과 나를 구별하되 차별하지 않고, 서로의 기쁨에 참여하는 것이 바로 삼위 하나님의 연합을 본받은 복음에 합당한 삶입니다.

    이 새벽에 바울의 권면이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새겨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전대중앙교회’라는 이름으로 묶어 주셨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조차도 그리스도로 인하여 기뻐하는 삶을 실천했습니다. 우리 전대중앙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복음에 의해 빛나는 삶이 우리 공동체의 정체성이 되어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늘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과 서로를 뜨겁게 사랑함으로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줄 아는 ‘하나 됨의 공동체’로서 우리 전대중앙교회가 온전하게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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