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신 3:12-29
◎ 제목: 책임을 다할 때 얻는 안식
1. 본문 개요
a. 신 3:12-22 요단 동편 분매
b. 신 3:23-29 모세가 요단을 건너지 못함을 언급
2. 본문 관찰
a. 12-17절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 요단 동편이 분배 됨.
b. 18-20절 모세가 요단 동편을 얻은 지파에게 그 땅에 안주하지 말고 군인들을 무장시켜 요단 서편 정복의 선봉에 설 것을 명함.
c. 21-22절 가나안 정복을 앞둔 여호수아를 향하여 두려워하지 말 것을 주문 함.
d. 23-26절 모세가 하나님을 향해 요단을 건너 서편 땅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지만 하나남께서 거절하심.
e. 27-29절 하나님께서 모세의 죽음이 예언하시고, 여호수아에게 리더십을 이양할 것을 명령하심.
3. 적용
2024년 새벽기도회는 신명기 말씀으로 문을 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본문은 3장 1절부터 시작된 ‘요단 동편 땅’정복과 그 땅을 르우벤, 므낫세 반, 갓 이렇게 두 지파 반이 분배하는 내용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더불어 23절 이하에는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내용으로 3장 전체가 마무리됩니다.
12절 본문을 히브리 원어성경 본문으로 보면 ‘이 땅을’ 이라는 표현이 문장의 맨 앞에 나옵니다. 이러한 문장의 배열은 ‘우리가 얻은 것, 즉 하나님의 기업으로 받은 것’이 바로 ‘이 땅’, 요단 동편 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전체’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요단 동편 땅’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기업으로 주신 땅이라는 사실을 먼저 분명하게 하는 겁니다. 아직 요단 강을 건너지 않았고, 냉정하게 말한다면 ‘요단 동편 땅’은 ‘가나안 지역’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요단 동편 땅도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곳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7절까지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요단 동편 땅을 나누어서 두 지파 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길르앗 산지는 둘로 나누어서 한쪽은 ‘르우벤과 갓’에게, 다른 한 쪽은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나누어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원래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도 아닌데 왜 요단 동편 땅을 차지하게 하실까요? 그것은 요단 동편 땅인 길르앗 산지와 바산 지역을 이스라엘 소유의 기업으로 먼저 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요단 서편’의 가나안 지역도 반드시 차지하게 하실 것을 믿음으로 기대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장차 가나안 땅도 반드시 정복하고 그 땅에서 정착할 수 있을 것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겁니다.
다시 한 번 12절에 ‘우리에게 얻게 하셨다.’는 모세의 말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요단 동편 땅을 ‘두 지파 반’이 얻는 것에 대해 수혜를 두 지파 반만 누린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이 기업은 ‘이스라엘’의 소유입니다. 즉, 몇몇 특정한 사람에게만 은혜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대로 모든 것을 행하시겠다는 약속의 증거로 주신 땅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동편 땅을 차지할 때 이스라엘 전체가 경험한 그 ‘순종과 축복의 공식’이 서편 땅 정복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것임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믿게 하시려고 이 동편 땅을 기업으로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단 동편 땅을 두 지파 반이 얻지만, 그것은 그 지파들만의 유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체를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복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교회공동체’에 정확하게 적용됩니다. 공동체 안에서 몇몇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고 하나님께서 더 축복하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는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움직여지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한 몸’입니다. 유기적 공동체입니다. 형제 자매가 하나님 안에서 나보다 더 먼저 얻는 복이 있다면 그것은 박수쳐 주고 격려해야 할 일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형제 자매가 잘 되는 것이 공동체가 잘 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한 몸인 나도 하나님 안에서 온전하게 세워지는 은혜를 누리기 때문입니다. 한 몸 된 지체를 더욱 격려하고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 봐도 탐나는 비옥한 요단 동편 땅을 먼저 기업으로 받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분명 누구든 부러워할 만한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요단 서편 땅 정복에 참여해야 할 의무를 면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18절에 모세는 이 두 지파 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동편 땅을 기업으로 너희 지파에게 주셨으니 너희의 군인들은 도리어 무장을 하고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요단 강을 건널 것을 명령합니다. 그들은 형제들보다 더욱 앞장 서서 서편 정복에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이 동편 땅에 돌아와서 가족과 함께 동편 땅의 축복을 누리는 때는 형제들이 요단 서편의 땅 정복을 마무리하고 다른 형제들이 그 땅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릴 바로 그때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축복’은 있지만 결코 ‘특권’은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남들보다 먼저 인생의 성공을 경험한 것처럼 보이는 분들은 오늘 말씀을 잘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이유는 더 많이 섬기고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의무를 더 잘 감당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의무를 성실히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미리 부어주신 복이 ‘독’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골고루 사랑하십니다. 남들보다 은혜와 복을 ‘선점’하거나 ‘독점’하는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닙니다. 은혜 받은 이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사명을 부어주십니다. 자기희생을 통해 공동체를 세우는 사랑과 섬김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3-29절은 모세와 하나님 사이의 대화를 다룹니다. 동편 땅 분배를 마친 모세는 자신도 요단을 건널 수 있도록,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거절하십니다. 모세는 요단강을 건너가서 아름다운 약속의 땅, 그곳의 산과 레바논의 들판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의 거듭된 불순종과 반역 행위로 인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진노하심으로 가나안 입성을 금지시키셨음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오면서 하나님을 향해 보여드렸던 충성과 헌신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처분은 너무나 가혹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모세의 단호한 퇴장이 있을 때에 여호수아의 리더십이 온전히 설 수 있고, 그를 중심으로 한 가나안 정복전쟁을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도가 있다는 것은 앞선 21-22절에 모세가 여호수아를 독려하고 격려하는 부분에서 드러납니다. 여호수아 너의 시대라는 말이지요. 나는 요단을 건너도록 허락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나 개인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보다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신 언약을 이루고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가 서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모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개인사를 거론하면서 한편으론 요단 동편에 정착한 두 지파 반을 향하여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나 모세를 가나안 땅에 들이지 않겠다고 한번 결정한 일에 대해서 변함이 없으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늘 신실하시다는 겁니다. 그러니 너희 동편에 정착한 두 지파 반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요단 서편 전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라는 겁니다. ‘불순종’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상기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새벽에 다시 한 번 저와 여러분에게 ‘순종’의 자리를 지킬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2024년의 첫 주일입니다. 첫 주일 아침부터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더욱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에 순종하며,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일에 헌신하겠다 다짐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다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