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신 4:32-43

◎ 본문: 신 4:32-43
◎ 제목: 주의 행하신 일을 기억하라

1. 본문 개요
    a. 신 4:32-40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
    b. 신 4:41-43           요단 동편 도피성

3. 관찰
    a. 32-34절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수사적 의문
    b. 35-39절         하나님의 일하심을 상고하는 목적- 하나님을 알라!
    c. 40절         율법 순종과 장수
    d. 41절         요단 동편에 구별되는 세 성읍
    e. 42-43절         도피성을 주시는 목적

2. 적용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4:32-43절은 명확하게 두 단락으로 나뉩니다. 먼저 32-40절은 과거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서술함으로 율법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41-43절은 요단 동편에 설치된 도피성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두 단락은 서로 상관이 없는 두 내용을 붙여 놓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고취시키고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창조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지나온 시간을 상고하여 보도록 초청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32절에서 ‘시간적인 흐름’을 따라, 그리고 공간적인 차원에서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천하만국에서 하나님이 하신 큰일을 깊이 있게 묵상해 볼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면서 32절 말미에 질문합니다. 세상이 존재한 이래로 역사 속에서 줄곧 자기 백성과 함께하면서 자신의 창조 의도대로 일관되고 신실하게 이루어온 ‘신’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겪었던 바와 같은 그런 엄청난 일을 경험한 나라는 없었을 겁니다. 출애굽 과정에서도 그들은 ‘10개의 재앙’을 눈으로 목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10개의 재앙은 ‘애굽의 신’들과의 전쟁입니다. 하나님은 압도적으로 그 모든 신들을 이기셨습니다. 특별히 모세는 시내산 정상에 임재하셨던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곳에서의 기인한 경험을 언급합니다. 33절에 하나님께서는 불 가운데 말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광채와 불, 구름을 목격했습니다. 하나님의음성을 듣고 나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나타나심, 신의 현현’을 경험하고도 과연 살아남은 민족이 있느냐고 모세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지요? 그 어디에도 그런 신은 없다는 당연한 답을 이미 내포하고 있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이 불은 ‘모든 거룩하지 못한 것’을 태우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불이 시내산 위에 직접 부어졌고, 옹기점의 연기같은 연기가 시내산에서 피어 올랐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가지고 서게 되면 곧 바로 소멸되고 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직점 음성으로 십계명을 선포하셔서 모세가 준비한 돌 판에 새겨주셨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것이 두려워서 ‘모세여! 당신이 대신 들으시고 우리에게 전달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직접 들으면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가 밀려온 셈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이스라엘의 두려움은 사실이었습니다. 33절에 하나님의 ‘말소리’를 듣고 생존한 이스라엘의 놀라움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호와께서 온전하게 자신의 영광을 인간에게 묘사한다면 피조물인 인간은 다 소멸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당신의 형상을 보여주세요.’라고 부탁하는 모세에게 조차 ‘나를 보고 살자가 없음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등’만 보여주시지 않았습니까? 또한 34절에서는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 인도해낸 일이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다른 어떤 신도 시도하지 않은 역사를 감행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하나님의 요청은 ‘다른 신들과 비교해 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관통하여 일관되게 약속하고 신실하게 약속을 지킨 ‘유일한 신’입니다. 왜 이 일이 가능합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살아계시고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순종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우리를 끌어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지금 우리가 여전히 존재할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아뢰고 감사와 경배를 드리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깨닫습니다. 그 하나님만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향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신 분입니다. 그러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복을 누릴 길도 하나 뿐입니다.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화답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화답합니까? 맞습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표현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방법도 ‘말씀’이었고, 자신의 백성을 인도해 내시고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는 방법도 ‘말씀’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 외에 어떤 신도 거짓이며 다른 신이 없는 줄 명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선물로 주신 땅에서 오랫 동안 살 것입니다. 그것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그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반응으로 순종을 보여드린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그저 우리의 ‘옛 추억’으로 간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늘 ‘현재형’이 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끊임없는 순종의 자리에 우리들을 세워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40절에 ‘지금까지 광야를 거쳐 이 곳 모압 평지에서 요단 강을 건너기를 기디리고 있는 이 순간까지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을 지금 지키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지켰던 그 말씀 말고, 지금 지키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기대하고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모세는 1-4장에 걸쳐서 자신의 ‘첫 번째 설교’를 마무리 합니다. 그런데 이 첫 번째 설교의 말미에 ‘도피성’ 이야기가 갑자기 나옵니다. 요단 동편에 ‘베셀, 길르앗 라못, 바산 골란’ 이렇게 세 성읍을 도피성으로 구별해 주셨습니다. 이곳은 의도하지 않은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몸을 피하기 위한 장소입니다. 도피성은 ‘하나님의 의롭고 자비로운 통치가 약속의 땅에 구현되도록 마련한 사법적 장치’였습니다. 그리고 요단 동편의 도피성 지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단 동편 정복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확정해 주면서, ‘아직’ 끝나지 않은 요단 서편의 정복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을 갖게 합니다.

    그러므로 ‘도피성’ 이야기는 모세의 ‘첫 번째 설교’의 결론으로 적당합니다. 모세의 첫 번째 설교의 결론은 ‘지금까지 역사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놀라운 일하심이 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하며, 지금 현재 가운데에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여 믿음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이미’ 이루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지만, 그것이 ‘옛 추억’이 되게 하지 말고 ‘아직’ 우리에게 부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더 위대한 사랑과 은혜를 사모하며 나의 현재의 삶에 그 모든 것이 부어지기를 기대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라고 요청하신다는 겁니다.

    이 새벽에 이미 우리에게 허락된 구원이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며 나의 신앙의 여정이 ‘종말론적 긴장’ 아래에 늘 놓여 있도록 내 삶을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도 우리를 살리시고 건지셨지만, 우리의 현재와 미래 가운데에서 더 크신 위로와 복으로 더하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 앞에 오직 ‘순종’으로 화답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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