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신 6:1-9
◎ 제목: 공동체가 번영하려면
1. 본문 개요
a. 신 6:1-3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
b. 신 6:4-9 들으라! 이스라엘
2. 본문 관찰
a. 1절 명령과 규례와 법도
b. 2-3절 여호와를 경외함과 율법 준수
c. 4절 들으라 이스라엘아!
d. 5절 율법을 사랑하라
e. 6절 율법을 마음에 새기라
f. 7-9절 율법에 대해 말하라
3. 적용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면서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부강한 나라를 만들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풍요는 그들의 발목을 잡는 올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말씀의 공동체’를 세우는 일입니다. 공평과 정의, 인애와 사랑의 법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해내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알아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명하신 명령과 규레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칠 것을 하나님께서 명하셨다고 말합니다.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한 단어로 말하면 ‘율법’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입술을 통해 선포되지만, 율법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분명히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율법을 가르치게 됨으로서 분명히 ‘행함’이 따라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2절을 통해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목적이 언급됩니다.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여호와를 이스라엘과 그 자손들이 평생토록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며, 둘째는 여호와께서 명한 모든 규례와 명령을 잘 지키게 하려는 것이고, 셋째는 결과적으로 그들이 오랫동안 여호와의 복을 누리고 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 일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전달될 때’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복을 누리는 첫 번째 단추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를 잘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경외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아는 만큼 순종하며, 아는 만큼 복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알아야’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할 수 있고, 순종할 수 있으며, 복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갈 때에,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들도 함께 이 땅에서 누릴 합당한 복을 누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의 방법으로 얻은 것을 복이라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를 지켜 행할 때 누리게 되는 것을 복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이 새벽에 우리가 누리고 살아가는 것을 돌아보며, 오직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복임을 깨닫고 늘 말씀의 빛으로 비춰주시는 것을 따라 순종함으로 복 받는 인생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 위대한 일인지를 붙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위대한 일입니까? 바로 우리가 ‘받은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것이 성도가 누리는 진짜 복입니다. 이 세상 어떤 존재도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4절을 보시면 모세가 하나님을 ‘오직 유일한 여호와’라고 부릅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오직 한 분으로 존재하신다.’는 뜻도 되지만, 더 정확한 의미는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천사도 있고, 마귀도 있습니다. 하지만 천사도 마귀도 다 ‘신’은 아닙니다. 그것들도 눈에 보이지 않은 영적 존재이기는 하지만 결국 다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오직 참 신, 참 창조주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성도’라는 겁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고, 그런 하나님을 아는 것이 궁극적인 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성도라는 말이지요. 하나님께서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주시는 것은 단순히 법을 손에 쥐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만 유일하게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성도입니다. 그러하기에 성도가 ‘말씀을 가르치고 후손들에게 지키게 하는 것’은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수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그 일이 ‘흥왕’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 마음속에 참된 복이라는 사실이 깨달아 지면 우리에게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될까요? 바로 5절에 나타난 대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일’이 우리의 삶에서 펼쳐진다는 갑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우리 안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인간은 사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존재 자체가 다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상 숭배자들은 자꾸 우상을 만들고, 자기 상상의 신을 만들어 자신이 사랑하는 방식으로 사랑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은 다 타락한 자기 사랑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충만하게 되면, 하나님을 정상적으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일이 가능케 된다는 말입니다. 5절의 말씀은 전혀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못하고 은혜도 못 받아본 상태에서 심판 받지 않으려고 혼자 사랑하려고 몸부림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롭게 비춰진 것을 전재로 하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는 사랑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1-5절에 나타난 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의 말씀을 듣는 것,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충만해 짐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을 듣는 것이 자체가 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6-9절에 나타난 것처럼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후대에 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은 단순히 ‘법전’을 가르쳐서 윤리적인 인간을 만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 사로잡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구원받음으로 얻게 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유하게 만들라는 겁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자기 사랑’ 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을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존재로 바뀌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라는 겁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될까요? 맞습니다. ‘하나님의 복으로 말미암는 공동체의 번영’이 가능해 진다는 말입니다. 결국 그 공동체가 복 받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오늘 이 본문 말씀을 ‘쉐마’라고 부르면서 자신들의 삶 가운데 실천합니다. 실제로 6-9절 말씀을 문자적으로 적용해서 적은 종이를 이마에, 손목에 매고 다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본문의 내용을 단순히 문자적으로 해석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기대하시는 것은 자연스럽게 말씀을 ‘일상생활’의 구석구석 어디를 가도 가까이하고 적용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살리는 말씀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특권으로 인도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바르게 인식한다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죄 된 본성을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유전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말로 가르치는 가르침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가르침이 되어야 합니다. 이 새벽에 내가 먼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충만한 거룩한 성도로 세워지기를 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 공동체 안에 온전히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 전대중앙교회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참으로 복된 공동체로 새워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