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신 7:1-11
◎ 제목: 하나님 백성으로 사는 법
1. 본문 개요
a. 신 7:1-5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
b. 신 7:6-11 가나안과 철저히 분리된 삶을 살아라
2. 본문 관찰
a. 1-2절 진멸하라(헤렘)
b. 3-5절 진멸의 구체적인 방법(혼인 금지와 우상 파괴)
c. 6-8절 여호가 선택한 백성, 이스라엘
d. 9-10절 여호와의 사랑의 크기
e. 11절 계명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시는 여호와
3. 적용
모세는 신명기 1-3장에서 요단 동편을 점령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묘사했고, 5-6장에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율법을 지키라는 명령을 반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7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1절에 모세는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거명하면서 이들을 여호와께서 인도하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이 일곱 족속을 쫓아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가나안 민족을 쫓아내는 전투에서 앞장서서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신다고 약속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가나안에서의 전쟁은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전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당신께서 싸우시고, 2절에 그 모든 민족을 너희들의 손에 넘길 터이니 반드시 그들을 진멸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여기에서 ‘진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헤렘’입니다. ‘헤렘’ 어떠한 것도 남겨두지 않고 모두 사라지게 만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2절 후반절부터 3절에 그 ‘헤렘’의 내용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총 5가지로 정리되는데, ‘언약 체결 금지’, ‘불쌍히 여기지 말 것’, ‘혼인하지도 말 것’,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 ‘그들의 딸을 며느리로 삼지 말 것’입니다.
어떠한 관계도 가나안의 일곱 족속과 맺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4절에 언급되는데, 다름 아닌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숭배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혼인 관계에 의해 이스라엘 안으로 들어온 이방 족속들은 필연적으로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끌어들일 것이고, 그 결고 ‘여호와의 진노’가 임하며 오히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섞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구별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별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헤렘을 지키기 않고 가나안의 족속과 통혼의 관계로 연결된다면 결국 하나님보다 그들이 섬기는 신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고통과 탄식과 멸망을 가져다 줄 올무가 되고 채찍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후일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족속들을 진멸하지 않고, 그들의 신인 ‘바알’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면치 못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순서대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이스라엘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죄를 짓든 뭘 하든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내 맘에 모셔드리고, 기독교 신앙 안에 서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늘 나라 백성’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 삼으신 자들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특권을 소유하지만, 반면에 ‘의무’도 주어집니다. 그 의무가 무엇입니까? 바로 ‘땅의 방법’이 아닌 ‘하늘의 방법’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그 말씀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 내 삶을 경영해 나가야 할 의무가 바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습니다. 분명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 가지만 결코 세상과 섞이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존재가 바로 저와 여러분과 같은 ‘성도’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늘의 방법’입니까? 바로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게 하는 삶’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결코 그런 특권을 누릴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사랑’하시기로 선택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 혜택을 누린 겁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떠한 의로움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특권도 누릴 자격도 없고 우리가 쌓은 공적도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선택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이 오늘 우리가 주 안에 있게 했고, 날마다 주님의 은혜와 덕을 입고 살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의 모든 행위를 다 용납하는 성격의 것은 아니라는 점을 또한 인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고,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대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제사장 나라’가 되어서 온 땅에 복을 전하고, 그들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하는 역할을 감당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을 통해, 그리고 전대중앙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 역할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베드로 사도가 말했던 ‘왕 같은 제사장’의 직분입니다. 우리는 성도라면 누구나 ‘왕 같은 제사장’으로 이 세상에 서야 합니다.
이 내용이 6-11절까지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숫자가 많기 때문에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고 7절에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8절에 나타난 것처럼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이제는 교회가 ‘이스라엘’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는 ‘아브라함의 유산’을 이어받는 영적 후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온 세상이 참으로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문제는 저와 여러분입니다. 우리 주님은 ‘에누리’ 없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면 천 대까지, 즉 영원히 언약을 이행하실 것이고, 언약적인 사랑인 인애, 즉 헤세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주의 계명을 무시함으로써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는 당장에 보응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그분의 말씀을 조아려 듣고 순종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순종은 하나님을 역사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일이며, 내 일거수일투족의 주관자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을 향하여 ‘중립지대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선택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다른 어떠한 것에도 머리 조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혹 내가 세상 속에서 당하게 되는 손해가 있다면 기꺼이 책임지는 것입니다. 책임지지 않는 사랑은 참사랑일 수 없고, 결코 하나님과 언약 관계라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 새벽에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다시 한번 온전하게 설정되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2024년은 더욱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 계를 이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을 참 주인으로 모시고, 내 삶의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매우 중요한 것까지 주님이 결정하시도록 결정권을 내어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대로 결정하기로 선택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