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신 8:11-20
◎개요
11-16절 율법을 지키고 여호와를 잊지 말라
17-20절 이방 신 숭배와 그 결과
◎본문연구
본문은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락은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하는데, 그 결과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것을 우리는 소와 양이 번성하고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되는 묘사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덧붙여 본문은 가나안 땅에 거주할 자들에게 여호와를 잊어버리는 행위에 대해 거듭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가나안에 입성한 세대 뿐 아니라, 그들의 후손을 염두에 두고 훈계하는 선포인 것이죠.
신명기 8:11절 이하에는 율법 순종과 여호와를 잊지 않는 것이 평행하게 나와서, 모세는 여호와의 율법 순정이 여호와를 잊지 않는 것임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모든 소유가 풍족하게 되었을 경우를 가정하며 이스라엘이 주의해야 할 것을 묘사합니다. 즉 율법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풍족함을 주신 이후에도 율법 순종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은 잔소리처럼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설교를 보면, 반복해서 말을 합니다. 이렇게 반복하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하니, 잊지 말라는 뜻이죠. 제발, 꼭,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이 축복의 땅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가나안 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에 있어서 축복의 땅이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죠. 배불렀다고 교만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결국 이것은 다 은혜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번성이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가 늘 있어야 하는 것이죠. 감사 없는 풍요는 축복이 아닐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감사 없는 풍요는 신앙의 덫이 되고, 번영은 독이 되고 형통은 해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망각과 자만은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삶으로 가는 필수 단계임을 잊으면 안된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다면, 배은망덕이 되겠죠. 하지만 성경 말씀에서는 이러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했다라고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광야보다 가나안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방랑 생활보다 정착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을 인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굽에서보다, 광야에서보다 더 비워지고 낮아지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서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죠. 광야에서의 40년은 불순종으로 자초한 결과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훈련 기간이었죠. 하나님을 경험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게 되는 귀한 시간이었죠. 출애굽을 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도, 그리고 위험한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또 단단한 반석에서 물이 나와서 마시게 하셨고,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져 먹이심도, 그리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신 이 모든 것을 머리로 기억하고 온 몸에 새길 때,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묵상으로 받은 은혜와 말씀을 항상 기억하며 주님과 신실하게 동행할 때, 구원의 감격과 감사가, 광야에서처럼 상황이 변했다고 불평과 의심으로, 자고와 자만으로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그 은혜를 잊어버리면 멸망한다고 본문 19절과 2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청종하지 않으면, 땅과 탐욕과 우상의 노예가 되어 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나안 땅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진멸되거나 쫓겨난 가나안 족속이 이스라엘을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입장이 뒤바뀌게 되겠죠. 이스라엘을 사용하셔서 가나안 족속을 심판하시고자 하셨는데, 오히려 이스라엘이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은 청종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듣기 좋은 말씀만 듣고 듣기 싫은 말씀은 안 들어도 되는 그런 명령이 아니라 청종해야만 사는 명령인 것이죠. 청종은 나를 지키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지키고 신앙을 지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을 잊고 다른 신을 섬기면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경고는 단순히 엄포나 추측성 예언이 아닙니다. 경고는 언약에 따른 하나님의 확실한 행위인 것이죠. 역사는 늘 하나님 경고가 성취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경고에 유념하고 말씀을 등한히 여기지 않는 것이 역사 속에서 살아남는 생명의 길인 것이죠.
삶이 부유해지면서 우리는 때로 받은 은혜를 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풍요는 언제든 신앙의 덫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고 우리의 올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복의 원천은 분명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복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죠. 그렇다고 해서 복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도록 만들어서는 결코 안된다는 것이죠.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말씀으로 마음을 지키는 것만이 우리의 영혼을 보존하는 길이고, 생명의 길이며, 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흔히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쉽게 과거를 잊고 오만과 방종으로 행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사실을 알기에 오늘 본문 말씀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와 당부를 거듭하는 것이죠. 우리가 풍요, 번영 속에 하나님을 저버리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겸손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고 계속 반복해서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기억해주신다는 것이죠. 반대로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의 비유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열 처년 중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입니다. 미련한 자들은 등은 가지고 있는데 기름이 가지지 못했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서 등과 함께 가지고 갑니다. 그런데 신랑이 너무 늦게 옵니다. 그래서 오기 전에 열 처녀 모두 졸며 잠이 들죠. 신랑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미련한 자들의 등불이 꺼져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슬기있는 자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하죠. 그러나 우리가 다 쓰기에 부족할 수 있으니 파는 자들에게 가서 사오라고 하죠. 그리고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와서 결국 준비하였던 자들만 혼인 잔치에 들어가게 됩니다. 남은 처녀들이 와서 열어달라고 하자,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라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죠.
슬기있는 자들, 신랑이 올 것을 준비하였던 자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에 귀 기울이며 청종하였던 자들, 이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준비하였기에 하나님께서도 기억해주신 것이죠. 신랑이 오심을 준비하지 않았던 미련한 처녀들은 결국 신랑에게서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외면을 당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의 상황이 어떻든 간에, 번영을 하여 그 번영을 누리고 있든지, 아니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고 그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이든 그렇지 않아 어려움을 당해 성장하고 있을 때이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기억하고 받아들여야 할 경고인 것입니다. 이 모세의 경고가 우리의 마음 판에 새겨지는 경고가 되어서 방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동행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