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신 12:20-32


◎ 본문: 신 12:20-32
◎ 제목: 복을 복되게 누리기

1. 본문 개요
    a. 신 12:20-28         먹기 위한 도축에 관한 규례
    b. 신 12:29-32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2. 관찰
    a. 20-21절: 원하는 대로 고기를 먹으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b. 22-25절: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c. 26-28절: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져가야 할 것
    d. 29-31절: 이방신 숭배와 금지
    e. 32절: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

3. 적용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면서 노예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법을 따라 자신의 삶을 규모있게 정돈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제 요단을 건너면서 유랑민이던 들이 가나안 땅을 얻게 되면, 이제 그 율법의 의미 또한 확장됩니다. 하나님은 땅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저 땅을 은혜로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제 그 땅에서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의 태두리 않에서 삶을 규모있게 살아냄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은혜로 주신 것을 헛되지 않게, 복되게 누리려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 본문 20-28절은 식용을 위한 도살에 대한 규정이 나타납니다.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식용을 위한 도축을 위해 ‘성막’까지 올 필요 없이 각 성에서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조치를 취하신 것은 땅의 지경만 넓히신 것이 아니라 먹고 누릴 자유까지 넓히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도축한 고기를 먹는데 있어서 정한 자나 부정한 자의 구분도 없다고 하십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언제나 누구나 먹을 수 있게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규례는 가나안 땅에 거한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참으로 ‘자유자’로 그 땅을 살아가는 존재가 될 것임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자유 없는 생명이 참 생명 이 아니듯 자유와 향유 없는 땅은 진정 약속의 땅일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통해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명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인생이 더욱 하나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참 자유를 누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식용을 위한 도축을 어디에서든지 하고, 그 고기를 먹든 대상을 ‘누구든지’로 해 두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함부로 할 수는 없습니다. 단 한가지 ‘피’는 먹지 말라는 지침입니다. 그 내용이 23-25절에 걸쳐서 나타납니다. 고기를 먹되 ‘피는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피는 곧 도축한 그 가축의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지침 속에는 생명 경시에 대한 경종이 들어 있습니다. 더불어 일상적인 음식마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허용될 수 없다는 인식이 바로 이 명령에 담겨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계명은 ‘울타리’입니다. 어떤 울타리일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울타리입니다. 울타리 안은 언제나 안전하고 울타리 밖은 위험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상식을 너무나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이 상식을 무시하는 행위는 결국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왠지 나를 속박하는 것 같고, 불편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늘 나의 ‘안전한 울타리’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울타리는 속박하려는 목적으로 쳐진 것이 아닙니다.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는 방임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방임은 오히려 우리를 위험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울타리로 속박하지 않으시면서도 방임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9-32절은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의 울타리 안에서 ‘사소해 보이는 것’에 대한 순종이 결국 ‘한 분 하나님 만을 섬기는 신앙을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지침’을 어긴 체, 피 속에는 영양분도 많고 먹을 만하다는 생각으로 그것을 취하는 것이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결국 우리의 삶의 습관이 풍요와 번영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망각하거나 멀리하게 되는 자리에 까지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표방하는 가나안 종교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된다는 겁니다. 그 결과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30절에 그들의 신을 탐구하고 그들이 신을 섬긴 방법을 좇아 우리도 그리하자는 결론에 이른다는 말이지요. 기억해야 합니다. 우상숭배는 단지 우상에 절하는 수준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시작은 ‘계명에 대한 불순종’에서 출발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이고, 그 길을 걷게 만드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의 길’이라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멸망한 자들의 자취를 좇는 것은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호기심을 가장한 숨은 욕심을 색출하여 반드시 퇴출시켜야 함이 옳습니다.

    유명한 신학자 짐 월리스는 “경제가 가치보다 우선할 때 우상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보다 복을, 말씀보다 욕망을, 소명보다 풍요를 우선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다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우상이 되고 화근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원함’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원함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 허락’ 안에서 늘 순위가 조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우선순위를 무시하지 않고, 늘 하나님께서 한계를 정해 놓은 울타리 안에서 참 생명과 자유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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