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신 17:14-20

◎본문: 신 17:14-20

◎개요

14-15절 왕의 자격

16-17절 왕의 금기

18-20절 왕의 의무

◎본문연구

오늘 본문 말씀은 왕에 대한 규례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세우려거든 어떤 사람이 왕이 될 수 있느냐? 본문은 왕권을 인정하며 시작하는데, 14절과 15절은 왕의 자격, 16절과 17절은 왕이 금지해야 할 것 그리고 18절부터 20절까지는 왕의 의무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하신 왕은 하나님이시죠.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은 하나님이시죠. 이스라엘의 왕은 이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죠.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여야 합니다. 그리고 왕은 형제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세워야 합니다. 이방인은 안된다는 뜻이죠. 왕은 백성들을 형제로 여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왕은 역할일 뿐 우월한 신분이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을 간직한 자여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이신데,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왕을 세우려고 했습니까? 본문 14절에서 말씀하죠.

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즉,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고 살 때에, 주위에 있는, 가나안 족속들과 히위, 여부스 족속, 이런 족속들을 보니, 다들 왕이 있습니다. 그래서 단지 그들이 왕이 있는 것이 좋아보이고, 부러워 보여서 우리도 왕을 세우자 이렇게 되어버리는 거죠. 하나님이 왕이신데,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이고,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섬겨야 돼. 이게 아니라, 오히려 우상을 섬기고 사람인 왕을 세워서 다스리도록 하는 그 모습이 부러웠던 겁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아주 서운한 일이죠.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탈출시켜주고, 광야에서 먹여주고 살려주고 가나안 땅이라는 땅도 주고,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셨는데, 하나님 말고 눈에 보이는 그런 인간 왕, 딱 보아도 왕 같고, 지켜줄 것 같고, 잘 다스릴 것 같은 그런 왕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죠. 성경은 이것을 안목의 정욕이라고 말씀합니다. 또,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죠.

우리가 잘 알면서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이러한 것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하나님을 인정할 때, 우리 삶의 모든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릴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잘 알 듯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누구입니까? 사울이죠. 사울은 아주 외모가 뛰어났던 소년이었습니다. 사무엘상 9장 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삼상 9:2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키가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습니다. 그리고 준수한 자였다고 말씀합니다. 준수하다는 뜻은 우리나라 말로는 풍채나 외모가 빼어나다라는 뜻이지만, 히브리어로는 보기에 좋다, 선하게 생겼다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외모가 보기에 좋고, 뛰어나고, 키도 큰 사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 듯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은 왕으로서 실패하게 됩니다.

사울이 왕이 되고, 아말렉과 전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전쟁에서 승리하여 아말렉 왕 아각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시켰습니다. 그런데 아말렉의 양과 소도 진멸시켰어야 하는데, 살려서 끌고 온 것입니다. 그래놓고 사울 왕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하는 말이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끌고 왔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상 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결국 사울 왕은 왕으로서 실패한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왕이 되었죠. 사람이기에 완전한 왕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모두 다 실패하고 만 인생이 되었습니다. 사울 왕의 실패는 사실 왕을 세워달라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눈에 보이는 사람으로서의 왕을 세워 달라고 했기 때문이죠. 이 세상의 왕들은 결국 사람입니다. 가장 높으시고, 완전하신 왕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죠.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속자로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분을 행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이시죠. 우리로 하여금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시고 우리를 다스리시고, 보호하시고, 사탄 마귀 원수들로부터 막아 이기게 하시죠.

이사야 33:22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

왕은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합니다. 지키고, 또한 원수들에게 이겨야 하죠.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으로서, 왕의 직분을 지금도 다 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서 어떻게 대하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서 어디까지 내어주고 계신지요?

혹시 예수님에게도 접근하지 말라고 하는 나만의 공간은 없으신지요. 예수님께서 나의 왕으로서 나의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내어주시는지, 아니면 이 부분은 내 것이니 Don’t Touch! 손대지 마세요 라고 말하고 있는건 아닌지요.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분의 명령대로, 그분에게 귀를 기울이고 어떻게 하면 될지, 무엇을 원하시든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래 전 목사님들이 자주 써먹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대통령을 만났을 때, 대통령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야 하죠. 그러면 그 대통령보다 훨씬 높으신 예수님께 이렇게 푸대접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매일의 삶에 익숙해져, 예수님을 푸대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 만왕의 왕이신 그분을 모시고 있기에, 매일 가장 좋은 것으로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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