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막 1:1-11

◎본문: 막1:1-11

◎개요

1-8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9-11절 예수의 세례와 메시야 대관식

◎본문연구

마가는 예수님의 탄생기사를 생략하고 곧바로 공생애 대서사의 포문을 엽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이야기죠.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자인 세례요한의 등장은 숙명입니다. 요한의 광야 회개사역과 예수의 세례가 비교적 간략하게 소개되지만 그만큼 강렬한 복음의 출발을 알립니다. 예수님의 세례와 하늘 아버지의 응답이 마치 하늘과 땅을 잇는 대관식처럼 펼쳐지는 것이죠.

본문은 마가복음의 서론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사역을 준비합니다. 복음이라는 단어는 당시 로마 세계의 시대적 배경을 갖는 중요한 용어입니다. 로마 황제가 가져온 구원의 메시지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가져오신 메시지가 대조됩니다. 세례요한의 선포에는 다른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심판은 등장하지 않고 구원이 강조됩니다. 그는 구원의 새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광야의 소리인 것이죠. 이 기쁜 소식, 즉 복음은 황제의 도시가 아닌 광야로부터 들려오게 됩니다.

마가복음의 첫 단어는 헬라어로 아르케라는 단어로,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와 요한복음의 태초를 연상케 하지만, 마가는 자신이 들려줄 위대한 서사의 시작을 알릴 뿐입니다. 무엇의 시작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죠. 동사 없이 1절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것을 마가복음의 표제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복음이라는 새 장르가 마가에 의해 고안되었다고까지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가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며 복음이라는 초대교회의 보편적 신앙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첫 문장에서 마가의 관심은 문학 형식보다 신학과 신앙에 있었던 것이죠.

이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할 때,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이라는 문장의 구조를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목적격적 소유격,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 다른 하나는 주격적 소유격,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온, 선포한 복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을 다 고려한다면, 첫 문장에서 마가는 이제부터 예수에 대한 또는 예수가 선포한 복음의 서사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하나님의 아들은 마가복음 전체를 놓고 볼 때 상당히 중요한 신학적 주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가복음 1장 11절 말씀,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 말씀과 마가복음 15장 39절 말씀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이 말씀 구절에서 잘 보여주고 있죠.

1세기 당시 복음과 신의 아들은 로마 황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황제의 승전과 입성을 복음으로 선포했고, 그 황제는 신의 아들로 칭송받았습니다. 마가는 신의 아들은 황제가 곧 복음인 로마 세계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복음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마가가 복음의 시작을 알린 후, 첫 번째로 선보이는 내용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라고 언급했으나, 출애굽기 23장 20절과 말라기 3장 1절에도 포함하고 있는 말씀이죠. 특히 출애굽기 약속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말라기 3장 1절 말씀은 메시아의 도래를 알리는 상징적인 예언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죠.

말라기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이사야 40장 3절에서는 메시야에 앞서 반드시 등장해야 할 인물을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 정의합니다. 이사야 40장은 이사야서에서 이스라엘의 운명과 역사에 극적인 전환이 일어나는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이스라엘의 노역이 끝나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새 일을 시작하실 것이며, 모든 육체가 그 영광을 볼 것이라는 위대한 선언을 하는 장입니다. 그 징조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등장을 하죠. 덧붙여 이 소리는 아름다운 소식을 담고 있습니다. 그가 등장했다는 것은 메시야의 등장에 대한 확실한 예고인 것이죠. 선지자의 예언처럼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광야는 자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로하고 구원하기 위해 일하시는 장소이죠.

황량하지만 전혀 오염되지 않은 거룩한 하늘의 소리가 발화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선 결과 멸망을 당한 이스라엘의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선구자가 사역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죠. 방향성에 주목해서 볼 때,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에 살던 유대인들이 광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황제를 복음, 황제의 승전과 입성 그리고 신의 아들이라는 칭송을 로마시대의 복음이라고 할 때, 그들은 황제를 이 복음으로 좇아왔고 그가 만든 질서에 복종하며 살던 사람들입니다. 이제 거기서 돌이켜 광야로 나옵니다. 세상은 황제를 복음으로 좇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오염되지 않은 생명의 소리를 듣기 위해 광야로 돌이킨 것이죠. 그 옛날 출애굽처럼, 구원을 향한 새로운 출애굽을 연상케 하는 광야행인 것이죠. 광야로 돌이킨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기다리고 기대했다라는 뜻입니다. 메시야의 길이 그렇게 준비되죠.

오리라 한 그, 세례 요한은 사역뿐 아니라 외적인 모습에서도 엘리야를 닮았습니다. 낙타털 옷과 가죽 띠를 두른 세례 요한의 모습은 열왕기하 1장 8절의 엘리야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열왕기하 1: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의 내용은 세례 요한 자신이 아닌 오실 그에 관한 것입니다. 요한은 그를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라고 묘사합니다. 비교급 형태로 등장하지만, 자신과 그 뒤에 오실 그를 능력 차원에서 단순 비교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관심을 그분에게 주목하게 하는 어법인 것이죠.

세례 요한은 광야의 메아리지만 뒤에 오실 그는 실체입니다. 세례 요한은 뒤에 오실 이의 신발끈을 푸는 종이 되기도 감당할 수 없다며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오히려 뒤에 오실 이를 한없이 높이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가 와야 그 뒤에 메시야가 오신다는 차원에서 세례 요한의 역할은 다른 어떤 선지자와 비교 불가합니다.

이쯤에서 마가가 뚜렷하게 메시야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무엇보다 1절에서 명확하게 선언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례 요한 뒤에 오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종말론적 역할 면에서 분명히 구별되지만, 사역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며 백성의 마음을 준비시키지만, 메시야는 그 백성의 마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분이시죠.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는 말은 넓게는 오순절 성령세례를 포함한 교회 시대까지 확장할 수도 있지만, 세례요한의 기대에 입각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소위 성령세례를 이스라엘 역사에 전무했던 새 시대의 명확한 특징으로 이해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새 백성의 새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처럼 세례요한은 자신의 종말론적 위치와 소명을 명확하게 이해했던 것이죠.

우리는 지금 세례요한이 이해한 바대로,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새 백성의 새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죠. 이것이 가능한 것은 예수님 때문에 가능하며, 예수님께서 선포한 복음, 예수님에 대한 복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 기쁨의 구원의 소식, 복음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무엇보다 사랑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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