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막 1:12-20

◎ 본문: 막 1:12-20
◎ 제목: 하나님 나라와 영적 전쟁

1. 본문 개요
    a. 막 1:12-15           마귀의 시험과 갈릴리 사역
    b. 막 1:16-20           제자를 부르시는 예수님

2. 관찰
    a. 12-13절:   광야에서 40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받으심
    b. 14-15절:   갈릴리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심
    c. 16-17절:   갈릴리 어부들을 향해 나를 따라오라고 명령하심
    d. 18-20절: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름

3. 적용
    하나님 나라는 구체적으로 영토가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대신 그분의 통치와 그 통치를 받는 영역을 ‘하나님 나라’라고 일컫습니다. 사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에 1장부터 시작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나남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로서 세상을 아름답게 채워 놓으시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곳에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그들을 창조하신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창세기 3장에 ‘인류의 타락’으로부터 ‘하나님 나라’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타락’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는 ‘왕 되신 하나님에 대한 백성의 반역’입니다.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거짓의 아비 사탄’이 세상에 깃발을 꼽고 마치 세상을 자신의 것 인냥 도둑질하는 모양새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즉, 반역의 통치의 영역이 창 3장으로부터 싹트게 되어 온 세상을 덮었고,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와 반역의 통치가 공존하고 충돌하는 장이 되어버린 겁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영적 전쟁의 틈바구니’라고 지칭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가운데 오셔서 감당하신 사역은 결국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의 회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죄인을 구원하심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에 들어가도록 하십니다. 사탄 아래에 굴욕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것도 모른채 죄를 먹고 마시는 삶을 살았던 인간으로 하여금 ‘공의와 사랑이 충만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얻게 하시고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핵심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요단 강에서 세례 받으신 후의 상황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내용이 매우 짧고 압축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로마 황제의 박해로 인해 배교의 길로 빠르게 달려가는 신자들에게 ‘복음의 핵심’을 빠르게 전달하여 그들의 믿음을 잃지 않고 신앙을 지키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세례 사건 뒤에 바로 ‘예수님의 공생애’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가야 합니다. 그런 간박함 속에서도 마가는 ‘예수님께서 시험당한 부분’을 길지는 않지만 반드시 언급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에 12-13절, 단 두 절로 기록하고 있지만 마가는 예수님께서 먼저 ‘시험 당하셨음’을 분명히 집고 넘어갑니다. 하나님과 성령의 인증을 받은 메시아 예수님의 첫 행보가 다름 아닌 ‘광야에서 사탄과 치르는 영적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의도입니다. 왜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광야로 인도함 받아 사탄에게 시험 받으셔야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필요한 이유를 말하기 위함입니다.

    이 세상은 죄로 인하여 오염되었고, 사탄의 세력이 자신들이 이미 뻗어 놓은 세력을 더 키우려면 키우지 결코 호락호락 내어놓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첫 걸음이자 구원 과정의 시작에서 가장 먼저 마귀와 대면하십니다. 12절에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신 기간을 ‘40일’이라고 말합니다. 40이라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완전수’입니다. 즉, 예수님이 받으신 사탄과 치르는 영적 전쟁은 완전하고도 치열한 싸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은 단순히 ‘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어둠의 통치와의 치열한 싸움을 전제로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치열한 싸움으로 저와 여러분을 어둠의 자리에서 빛의 하나님 나라로 건져 내셨습니다. 그렇게 저와 여러분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 치열한 영적 전쟁의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우리는 참으로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할 줄로 믿습니다.

    14절에 예수님은 그렇게 시험 받으신 후에 갈릴리로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15절에 그 선포의 내용은 다름 아닌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16-20절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40일 동안 시험 받으신 후에 이어지는 내용이 ‘하나님 나라의 임재 선포와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이었다는 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 회복을 위한 영적 전쟁이 예수님 이후에도 지속된다는 의미입니다.

    영적 전쟁은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 받으심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천국 복음을 만방에 선포 하셨고, 그 일에 동역할 제자들을 삼으신 겁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통해 그 싸움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도, 지금 우리의 시대에도, 주의 재림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는 모든 신자들이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결코 일희일비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일관성 있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나라 백성으로 부르신 예수의 제자들인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기대하시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미’ 이루어졌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 싸움이 있음을 깨닫고 그 싸움의 자리를 끊임없이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선포와 제자를 부른 일의 공통점은 ‘바른 응답’을 요청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선포할 때에 그 복음을 들은 자들은 회개하고 자신의 삶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모든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따라야 했습니다. 이 일에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죄와 어둠의 영역과 단절하는 회개와 주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응답만이 ‘참 구원’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의 입장에서 ‘구원을 경험하는 첫 단추’이자, 이후 영적 전쟁을 바르고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발판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결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성도와 교회의 역사가 다름 아닌 죄와 어둠의 세상과의 충돌이었으며, 지금 이 시대의 교회의 역사가 그러하며, 앞으로의 교회의 역사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를 사는 신자의 숙명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결코 구원의 과정에 있어서 ‘긍정의 요소’에만 집중할 일이 아닙니다. 구원 받아 복 받고 누리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이 새벽에 진리에 대한 바른 응답과 삶을 통해 어둠의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치열함을 드러내는 ‘신자의 삶’을 살겠다고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내가 버려야 할 그물과 배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내려놓아야 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제자’로서의 충성된 삶이 가능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르게 응답하고, 계속 응답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때에 우리는 영적 전쟁의 승리자가 되고, 참 제자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의 주변을 하나님 나라의 영역으로, 빛과 소망의 자리로 만들어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참 예수의 제자로 견고하게 세워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