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막 4:1-12

◎본문: 막 4:1-12

◎개요

1-9절 네 밭에 뿌려진 씨의 비유

10-12절 하나님 나라의 비밀

◎본문연구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긴 가르침이 두 개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3장하고 다른 하나는 본문 말씀인 마가복음 4장입니다. 마가는 본문이 있는 마가복음 4장 1절부터 34절에서 씨를 은유로 하는 세 가지 비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비유는 모두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들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다시 바닷가에서 무리에게 비유를 가르쳐주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네 밭과 거기 떨어진 씨에 대한 비유이죠. 여기에는 밭의 성격과 씨의 운명에 초점이 있습니다. 길 가, 돌밭,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들은 각각 밭이 가진 방해하는 속성 때문에 죽거나 결실을 하지 못하죠.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들은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봅니다. 예수님의 곁에는 제자들과 무리들, 그리고 적대적인 종교지도자들이 있었는데, 비유 속 네 종류의 밭들이 그룹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비유를 통해 전하려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사람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죠.

본문 3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들으라로 시작을 합니다. 들으라는 강렬한 명령으로 무리의 관심을 단박에 끌어 모으신 것이죠. 관심 집중에 매우 효과적일 뿐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는 익숙한 구약 시대 쉐마 선언을 연상케 하는 것이죠. 그런데 들으라에 이어서 개역개정에는 번역을 하고 있지 않지만, 보라 라고 하는 명령어가 등장을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무리로 하여금 비유를 듣고 또한 볼 수 있게 주의를 집중시키고 있다는 것이죠. 본문 마지막 12절 말씀은 이사야 6장 말씀을 인용하신 말씀인데, 이사야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사야 6: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으라와 보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시고, 본문 마지막 12절 말씀에서도 보는 것과 듣는 것을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시어 말씀하심으로 보는 것과 듣는 것을 동시에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들으라와 보라는 두 명령어를 강조하심은, 당시에 예수님 앞에 있는 무리의 관심을 한층 더 끌어당기시고 계신다는 것이죠.

비유는 씨 뿌리는 한 농부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갑니다. 농부의 손에서 떠난 씨들이 바람에 흩어지는데, 네 종류의 땅에 떨어집니다. 당연히 농부의 씨 뿌림은 좋은 땅에 씨가 떨어지기를 목적으로 합니다. 한 해의 소출을 가늠할 씨앗을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겨우내 잘 보관했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추수를 기대하며 밭을 정성스레 뒤집어 거름의 영양분과 산소를 주입하고, 뿌리내림에 방해되는 자갈들을 놓치지 않고 골라냈을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농부가 기대하며 마련한 밭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야기 초점을 농부의 관심보다는 밭과 씨의 운명에 초점을 둡니다. 농부의 씨 뿌리는 과정에서 씨가 안착하는 네 종류의 땅이 소개되고, 각 땅에 떨어진 씨의 운명이 자세히 묘사됩니다. 어떤 농부도 의도적으로 자신이 고른 땅이 아닌 곳에 씨를 뿌리지 않죠. 바람에 흩날려 극히 일부가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유는 떨어진 씨의 양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마치 네 밭에 골고루 떨어진 것처럼 묘사할 따름이죠. 가장 먼저 씨의 일부가 길가에 떨어집니다. 여기에서 길 가는 밭의 경계를 가르는 농로로, 농부와 행인들이 지나다니며 생긴 딱딱한 길입니다. 당연히 씨를 보호해 줄 흙이 부족한 곳입니다. 고스란히 굶주린 새들의 모이가 되고 말죠.

둘째,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집니다. 씨가 소멸하는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그려줍니다. 돌밭은 흙보다 자갈이 많습니다. 그나마 자갈 틈을 메우고 있는 한 줌 흙 위에 씨가 떨어집니다. 씨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기에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자갈들로 인해 뿌리가 더는 힘 있게 뻗지 못하죠. 흙 속의 영양분도 금세 바닥납니다. 강렬히 내리쬐는 태양열과 뜨겁게 달궈진 자갈들이 내뿜는 복사열에 새싹이 견디지 못하고 이내 말라 죽습니다.

다음으로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집니다. 거기는 흙이 충분합니다. 씨는 비교적 쉽게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웁니다. 자갈의 방해도 태양열의 위협도 없습니다. 그러나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엉겅퀴들이 주인 노릇하는 곳에서 씨는 성장의 기운을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처음 적은 영양분으로도 쑥쑥 자랄 때는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뻗어 올라가야 할 그때 땅 아래로는 엉겅퀴 뿌리들이 씨앗의 뿌리 넓힘을 허락하지 않죠. 땅 위로는 태양 빛을 받아 광합성을 해야 하는데, 이미 무성하게 자란 엉겅퀴 줄기와 이파리들이 한 줌의 빛도 나눠주지 않습니다. 틈새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겨우 살아 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세 밭에서 공통된 패턴이 발견됩니다. 씨가 뿌려지지 씨의 생명을 위협하는 방해 요소가 등장하고, 씨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해 죽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죠. 세 밭은 예레미야 4장 3절 말씀과도 비슷합니다. 거기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묵은 땅과 가시덤불에 파종하는 것을 금하십니다. 묵은 땅은 길가와 같이 딱딱하기 기경이 안되어 자갈이 뒤덮인 땅이겠죠. 씨 뿌리는 비유에서 이 세 밭은 이처럼 씨의 자람과 열매 맺음을 완벽히 차단하는 조건을 갖춘 밭들입니다. 씨가 문제가 아니라 밭이 문제인 것이죠. 그러나 마지막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집니다. 그 씨가 마주한 조건은 앞의 세 밭과 전혀 다르죠. 씨의 자람과 열매 맺음을 적극적으로 돕는 조건입니다.

그 결과 씨는 잘 자라 풍성한 결실을 맺습니다. 땅은 딱딱하지도 않고, 흙도 충분히 두터우며, 텃새 부리는 잡초도 없습니다. 씨들은 최상의 조건에서 자신들이 가진 생명력을 오롯이 발휘합니다. 이곳이 좋은 땅입니다. 거기서 씨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이룹니다. 이처럼 비유의 초점은 네 개의 밭과 씨의 운명에 있습니다. 비유를 마치자 예수님께서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시죠. 들을 귀는 그저 음성적 들음이 아니라 의미적 들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마치 씨가 들녘에 골고루 뿌려지듯 바닷가에 모인 모든 무리가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의 비유의 비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자는 없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해석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자들은 구별되겠죠. 제자들도 그러했구요. 천국의 비밀은 무리와 제자들의 마음 밭에 모두 뿌려지지만, 예수 안에 부름을 받은 제자들만이 그 비밀을 알아들을 수 있었죠.

듣고 보고 깨닫는 자만이 천국을 경험하고, 그 외에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되어 결국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이죠. 비유는 반드시 해석이 필요하고, 해석은 비유를 말하는 예수님만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홀로 계실 적에 사람들 일부가 열두 제자들과 함께 와서 들었던 비유에 관해 묻습니다. 비유의 표면적 의미는 어린 아이들도 알지만, 그 비유에 숨겨진 비밀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정치적 왕으로 혹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승리주의자나 내 개인의 사적인 유익을 위한 모델로만 바라보고 있었던 당시 무리들과 종교지도자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비유인 것이었습니다. 한 알이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죽지 않으면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최후의 승리를 믿으며 십자가를 지고 따를 때, 풍성한 결실이 기다리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음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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