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막 6:30-44


◎ 본문: 막 6:30-44
◎ 제목: 예수의 나라

1. 본문 개요
    a. 막 6:30-44           오병이어의 기적

2. 본문 관찰
    a. 30-31절:   사역 복귀 후 한적한 곳으로 이동
    b. 32-34절:   큰 무리가 따름
    c. 35-38절:   이백 데나리온과 오병이어
    d. 39-44절:   다 배불리 먹고 남는 기적을 맛보다

3. 적용
    오늘 본문의 내용은 헤롯이 세례 요한을 처형한 사건으로 잠시 중단되었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막 6:13에서 잠시 내용이 끊어지고, 세례 요한의 처형으로 넘어 갔다가 오늘 본문 30절부터 다시 내용이 이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앞서 막 6:7~13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서 파송하셨습니다. 그렇게 파송 받았던 제자들이 오늘 본문 30절에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와 모이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감당했던 사역의 내용들을 낱낱이 고합니다.

    그 보고를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서 잠깐 쉴 것을 명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명령은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두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얻은 제자들의 피로를 풀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러한 예수님의 명령은 힘 빠지는 요구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제자들은 제자들은 더 뭔가를 하고 싶고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능으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낸 직후입니다. 귀신이 쫓겨나고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사기충천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명령은 그들의 분위기를 확 가라앉힐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런 제자들의 마음을 간파하셨기 때문에 ‘한적한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한적한 곳’은 예수님께서 사람들로부터 나와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곳으로 복음서에 종종 등장하는 장소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럴수록 더욱 한적한 곳을 찾아 하나님과의 교제에 집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공으로 인하여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그들의 성공이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기에 ‘한적한 곳’이 필요하다고 여기신 겁니다.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사역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께서 이 새벽에 말씀해 주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모든 사역들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 이 새벽, 한적한 곳에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의도나 생각대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의지와 뜻에 모든 것을 맞추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사역을 통해 철저히 하나님의 뜻과 의도만 드러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잠잠히 물러나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를 통해 채움 받고 더욱 성숙케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자는 말씀에 32절을 보니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기로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휴식을 위해 이동한 한적한 곳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달려와서 그들 보다 먼저 도착해서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제자들에게 휴식을 주고자하는 예수님의 의도가 좌절되었지요. 하지만 34절에 예수님은 그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책도 없이 예수님을 향하여 나아오는 사람들을 귀찮게 여기시지 않습니다. 그 분께 나아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긍휼’의 대상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이유 때문에 예수를 만났고,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된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런 목표와 방향도 없이 이리 저리 해매 던 인생을 만나 주시고 방향을 잡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그 마음을 저와 여러분도 나누어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이 시대도 예수님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절박함과 필요를 채워줄 목자가 없는 상황이 바로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현 주소입니다.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이 시대의 목자로 세우기 원하십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들의 곤경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갖추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위로부터 부어지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출 때에 우리 전대중앙교회는 시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목자의 예표’로서 오늘 말씀 가운데 기록된 ‘오병이어의 기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4개의 복음서에 다 나타납니다. 그런데 각 복음서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의미하는 바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닮은 목자로서의 제자가 감당하는 사역’이라는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35-36절에 날이 저물자 제자들은 예수님께 ‘사람들을 각 마을로 보내서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러자 37절에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지요. 그때 계산 빠른 제자들은 떡을 사려면 ‘이백 데나리온’은 족히 드는데 그런 돈이 어디에 있냐고 반문을 합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의 권능을 부여받은 자들입니다. 귀신도 쫓고 병도 고치는 능력을 예수님께 부여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6:8절에 ‘돈을 의지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명령도 들었던 제자들이라는 말이지요. 그럼에도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에게 부여된 능력을 의심하고 또 돈을 의지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이유를 오늘 말씀은 무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고발하고 있는 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쌍한 무리들을 보시고 즉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보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능력과 권능을 부여받은 제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에는 긍휼이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그 수많은 무리들을 귀찮고 스스로 감당할 수 없다 치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빠른 해결책을 찾기에 급급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현 주소는 어떠합니까? 우리들은 예수의 참 제자로서 주님이 주신 권능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따라 그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의 마음’이 없다면 우리가 아무리 돈 많고 실력과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세상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사역 원리’입니다.

    결국 수많은 무리들은 어떻게 됩니까? 남자만 오천 명 되는 자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떡과 물고기는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는 역사를 마주하게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찾고, 사람들을 나누어 앉히는 제자들의 철저한 순종과 수고를 통해 예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새벽에 예수의 긍휼과 눈물을 우리의 마음에 부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기 원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예수의 참 제자’로 세워질 줄로 믿습니다. 풍요의 시대에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 나라는 많은 돈과 막강한 권력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도리어 보잘것없지만, 우리가 가진 적은 소유로 광야를 푸른 초장으로 변화 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소유한다면 말이지요.

    그 마음을 배울 때에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재능과 비전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 전대중앙교회 공동체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손과 발을 사용하셔서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로 쓰임 받도록 능력과 힘을 주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마음을 배우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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