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눅 7:1-13

◎본문: 막 7:1-13

◎개요

1-4절 장로들의 전통과 그것을 어긴 제자들

5-13절 종교지도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가르침

◎본문연구

오늘 본문 말씀은 크게 두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은 장로들의 전통과 그것을 어긴 제자들에 관한 말씀이고, 5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은 종교지도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관한 내용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잠시 중단되었던 종교지도자들과의 갈등이 재개됩니다. 이제 더 큰 종교지도자 그룹이 파견되어서 예수님을 찾아오죠. 여기에서 마가는 논쟁의 주제인 부정과 정결에 초점을 맞추며 결국 예수님이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이방 땅으로 사역을 옮기는 계기가 되는 사건을 세팅합니다. 서사의 주제는 유대 장로들의 전통, 그 중에서도 부정과 정결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분명 접근 의도가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시선에 문제의 장면이 포착된 것이죠.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식사를 할 때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먹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청결 문제가 아니라 보다 더 심각하게 부정과 정결이라는 유대 신앙의 문제였습니다.

마가가 이방인 독자를 위해 부정한 손에 친절하게 곧 씻지 아니한 손이라는 설명을 덧붙여 주지만, 이는 물리적 오염 상태가 아니라 제의적 부정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어서 자연스럽게 5절로 흐름이 이어집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제자들의 부정을 장로들의 전통에 걸어 논란을 제기합니다. 이 대목에서 마가는 손 씻지 않은 부정과 장로들의 전통을 연결하는 추가 설명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것을 위해 3절과 4절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죠. 유대 전통에서 할례와 안식일에 더해 음식과 관련한 정결 규정은 제의적 정결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전수되어 왔습니다. 특히 음식 전통은 유대인이 스스로를 이방인과 구별하는 방식 중 하나였습니다.

마가는 당시 장로들의 전통과 그 전통이 어떻게 일상에 깊게 스며들어 있었는지 몇 가지 사례를 보충해 설명합니다.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전통을 엄격하게 지킨 것으로 묘사하는데, 모든 유대인들, 유대인 전체가 다 지켰다는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이 중심을 이루어서 엄격하게 지켰고, 유대인 전체를 보편화하여서 표현한 것입니다. 손을 씻는 전통은 점차 식기에까지 확대되어 씻음이 일종의 신앙적 제의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죠. 유대 구전 미쉬나 마지막 부분은 정결의식에 관해 열두 가지 주제를 다루는데, 그 중 여섯 번째가 손 씻는 규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에게 손 씻는 문제는 전통의 핵심 가치요 신앙이기에 대단히 민감한 문제였던 것이죠. 하나를 어기는 것은 장로들의 전통 전체를 허무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장로들의 전통이 예수님 시대에 얼마나 전수되어 지켜져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마가는 손 씻는 문제가 분명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문제였고, 이방 성도들에게 설명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질문에 두 가지 정죄가 서려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어겼다는 불법의 정죄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율법을 어긴 수준의 심각성이 반영된 정죄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단순한 도덕법적 따름이 아니라 삶 전반에 녹아 있는 신앙고백과 삶의 질서로 여기며 따랐습니다. 하지만 앞선 두 기적 사건에서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새 안식과 생명을 누리는 제자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에, 새로운 제자도에 헌신한 제자들에게는 분명한 신학적 정리가 필요할 것입니다.

두 번째 정죄는 장로들의 전통을 어긴 결과로 제자들이 부정하게 됐다는 선언입니다. 손을 씻지 않고 부정한 채로 음식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문제 지적이 얼마나 참신앙의 궤도에서 벗어난 것인지, 너희 외식하는 자라고 직설화법을 사용하시죠. 장로들의 전통에 매여 타인을 정죄하고 자신의 부정한 내면에 아랑곳하지 않는 유대교의 전반적인 신앙을 꼬집는 표현으로 외식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29장 13절 말씀을 인용해서 이사야가 그들을 두고 예언한 것처럼 고발하시죠. 그 내용이 본문 6절, 7절 말씀인데, 이렇게 말씀합니다.

6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종교지도자들이 전통의 권위에 잇대어 예수님의 제자들을 정죄했다면,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권위로 정죄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초점은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 공경에서 멀어지게 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구약에서 입술과 마음은 외식 신앙을 고발하는 은유법이죠. 예수님은 사람의 계명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계명과 대조를 만드십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는 부분은 출처가 사람인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출처가 하나님인 하나님의 계명을 도리어 버리는 헛된 신앙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전통을 강조하는 것은 외식이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부정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죠.

전통은 계명을 내용으로 담는 형식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기능에서 실패한 것이죠. 한 걸음 더 들어가 종교지도자들의 외식적인 신앙 행태를 직접적으로 다루십니다. 사람의 전통은 소중히 여기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쉽게 저버리는 신앙 관습을 뿌리째 흔드신 것이죠. 본문 9절은 종교지도자들이 던진 최초 질문에 대한 실질적인 답입니다.

9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얼마나 모순되고 왜곡된 신앙생활을 했는지 대표적 사례를 꺼내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 계명을 인용하시죠. 이 계명은 이웃 사랑의 첫 계명입니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배하는 것이죠. 그것을 어겼을 때는 자신의 생명을 지불해야 할 정도로 무거운 명령도 계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분명 여기에 순종해야 하는데, 그 일이 무거웠는지 점차 부모공경에 자녀의 책임과 부담을 덜어주는 그런 사람들의 전통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너희는 이르기를 이라고 대조적 문구를 말씀하십니다. 소위 코르반 전통이라고 하는데, 자식이 계명을 따라 부모에게 드려 유익하게 할 재물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라고 말만 하면 부모에게 드릴 의무에서 자유롭게 되는 전통입니다.

이것은 신앙을 빙자해 계명을 무효화 하는 악성 전통인 것이죠. 이것이 당시 유대 사회에 얼마나 만연했는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종교지도자들은 그것을 통해 유익을 누리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죠. 하나님께 드림이 곧 직간접적으로 성전 제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넓게 보자면, 장로들의 전통은 결국 부모 공경의 의무를 포기하게 해서 성전에 드림으로 하나님 공경의 명분을 챙길 수 있게 부추긴 셈이죠. 이것은 고작 하나의 사례일 뿐, 예수님은 그런 일들이 부지기수라며 심각성을 더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런 유대 전통이 어떻게 최초 주제인 부정과 연결되느냐? 종교지도자들은 씻지 않은 손을 내면의 부정의 원인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한 부정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태도, 곧 전통을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쉽게 버리는 외식이라고 지적하십니다. 내용은 없고 형식만 지키는 것이 외식이라는 것이죠.

우리에게도 이러한 모습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우리 자신을 항상 개혁해야 합니다.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용을 버려서 형식만 남고, 그 형식마저도 내용과는 완전히 달라져 버린 유대 장로들의 전통을 책망하시는 예수님을 본문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듣고, 결단하여서 행함이 있는 믿음, 살아있는 믿음으로 영광돌리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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