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막 7:14-23

◎ 본문: 막 7:14-23
◎ 제목: 거룩의 여정

1. 본문 개요
    a. 막 7:14-16           무엇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가?
    b. 막 7:17-23           비유를 해석하여 제자들에게 설명하시는 예수님

2. 관찰
    a. 14절: 무리에게 와서 다 듣고 깨달으라 권면하심.
    b. 15-16절: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비유로 말씀하심.
    c. 17절: 제자들이 비유에 대해 질문함.
    d. 18-19절: 밖에서 들어가는 것에 대해 해석해 주심.
    e. 20-23절: 안에서 나오는 것에 대해 해석해 주심.

3. 적용
    기독교는 ‘거룩함’을 추구하는 종교입니다. ‘거룩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카도쉬’라고 합니다. 원래 이 단어의 뜻은 ‘구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을 추구한다고 할 때에 자칫 세상을 ‘성과 속’, ‘정결과 부정’의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구별짓기와 배제’의 문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거룩’을 핑계 삼아 불완전해 보인다고 판단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지요.

    그 반대의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거룩’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끊임없는 배제와 차별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무엇도 ‘절대적인 기준’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른바 ‘관용’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각자 거룩의 기준이 다를 수 있음으로 다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고개를 듭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자칫 ‘혼합주의’로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거룩함’을 추구하는 종교인 기독교의 숙제는 다름 아닌 ‘배제가 아닌 포용’을 가능케 하는 ‘거룩’의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14-16절을 통해 ‘전통과 관련하여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바로 직전인 7:5-13절에서 예수님은 이미 ‘전통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폐해 버리는 종교지도자들의 종교적 외식’을 신랄하게 꼬집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마음이 굳어 있었기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으로 넘어오면서 갑작스럽게 청중이 ‘무리’로 바뀝니다. 그리고 무리들을 부르시고는 비유을 하나 드십니다.

    비유의 요지는 이것입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거죠. 이는 ‘전통’과 관련된 논쟁과 연결된 비유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의 관점에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은 부정합니다. 손 씻지 않은 ‘부정함’이 음식에 부정을 전가하고,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이 또한 부정하게 된다는 논리가 바로 이 ‘손 씻는 전통’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전통’이 오랜 세월을 거쳐 ‘의식화’되고 그 행위 자체가 ‘신성시’ 되어 버렸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신성화 된 음식법과 관련된 전통은 결국 사람을 분리시켜 버립니다. 물론 전통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종교적인 이유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계명의 핵심’을 저버리게 된다면, ‘구별 짓는 배제’로 인해 자신을 부정케 하고 공동체도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부정한 음식에 대한 율법 해석’을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제기한 초점은 ‘부정한 손을 통해 부정해진 음식이 사람의 내면을 더럽힌다.’고 생각한 ‘전통’을 부정하시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은 ‘씻지 않은 손’으로 집어진 음식, 즉 ‘밖에서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완성자 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정하다고 여겨지던 자들을 예수님께서 낫게 하심으로 ‘부정이 예수님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은 부정한 손으로 먹었든 씻고 먹었던 우리가 입으로 먹는 음식들로 인해 우리의 정결과 부정이 결정되진 않습니다.

    ‘전통’은 먹는 문제가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지만 음식은 입을 통해 배로 들어가는 것이지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음식이 마음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심에 따라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거룩’에 대한 바른 정의입니다. 이제 ‘겉으로 드러난 그 무엇’이 누군가의 거룩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더욱 철저히 ‘마음의 문제’가 거룩을 결정짓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할 수 있음을 경고하십니다. 렘 17:9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하기에 외적인 것을 판단 기준이라고 보는 그 ‘바리새인의 전통’은 오히려 율법을 왜곡하는 것이고, 문제는 ‘마음 속의 더러운 것‘이라고 비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다 부패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더불어 강조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비유로 말씀해 주셨지만, 제자들은 그 비유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18-23절을 통해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게 하는 것’이라는 비유에 대해 풀어서 설명을 해 주십니다.

    음식은 마음과 무관합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의 문화는 음식이 사람의 마음에 정서적 감동과 수치를 줄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는 그런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음식이 사람의 본질과 존재에 부정과 정결을 결정하는 변수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직 ‘부정과 정결’을 결정하는 변수는 ‘마음’입니다. 19절을 보시면 ‘마음’을 음식물이 들어가는 공간인 ‘배’와 대조하고 있습니다. ‘배’는 ‘외적 공간’이고, ‘마음’은 ‘내적 공간’입니다. 배에는 음식물이 들어간다면 ‘마음’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마음속에 있으면서 사람을 더럽히고 밖으로 나오는 그것은 다름 아닌 ‘악’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정’은 곧 ‘사람의 악한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율법의 완성으로 이제 ‘거룩’은 ‘부정한 것을 만지거나 먹거나 하는 것’으로 규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패하고 오염된 부정한 것들로 가득한 마음’에서 비롯된 ‘악한 생각’으로 인해 ‘거룩’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21-22절에 그 ‘악한 생각’을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 등이라고 나열합니다. 하나같이 우리 눈에 곧바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고, 심지어 종교적으로 보인다면 거룩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마치 칼날이 되어서 누군가를 ‘정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으로 나누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정말 ‘거룩한 사람’으로 비춰진다는 거죠. 하지만 결코 그것으로 사람이 ‘거룩하다’고 평가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도리어 자신의 내면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분이지 수많은 악한 생각으로 가득한 자신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드러내고 회개함으로 ‘성속의 구분’이 아닌 ‘거룩함으로 속됨을 품을 수 있는 ’거룩‘을 사모하는 사람으로 저와 여러분이 온전하게 서기를 우리 주님께서는 기대하십니다.

    이 새벽에 ‘거룩과 속됨’의 세계를 구분하고, 자신의 집단에 속한 사람이나 종교의 세계 외에는 모두 ‘외부인 또는 외부세계’로서 ‘부정하다’고 말하는 ‘이분법적 종교 생활’에 내가 속한 사람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독교는 분명 거룩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결코 ‘거룩’한 자가 될 수 없고, 끊임없이 내 안에 있는 ‘악한 생각’을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소멸하는 불’로 살라 주셔서 ‘거룩한 마음’이 된다는 사실을 겸손히 하나님 앞에 인정하는 것이 먼저 우리가 ‘거룩한 사람’으로 설 수 있는 방법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거룩한 사람으로 세워질 때에 아무리 죄 많은 이 세상도 그 ‘거룩의 힘’으로 품어서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세워나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각 개인이, 우리 전대중앙교회가 그렇게 거룩의 여정을 걸어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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