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막 8:1-10

◎ 본문: 막 8:1-10
◎ 제목: 복음의 풍성함을 드러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질문에 대해 마음속으로 한번 대답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육적인 필요’를 채우는 공동체입니까? 아니면 ‘영적인 필요’를 채우는 공동체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아마도 ‘영적이 필요를 채우는 공동체’라고 답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몇몇 분들은 ‘육적인 필요’를 채우는 공동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교회가 ‘이 두 가지를 다 만족시키는 공동체’라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바로 ‘복음의 총체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사역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가운데 육적인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나누지 않으셨습니다. 늘 주린 영혼과 함께 주린 배도 채워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을 위시한 종교지도자들은 결코 백성들의 필요를 보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병 고침의 역사와 많은 이들을 빵과 고기로 먹이시는 기적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이 침범 당할까 두려워서였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의 ‘그 무렵’은 앞선 7장 말미에 다나난 이방 지역인 데가볼리에서의 사역할 무렵을 말합니다.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었다.’는 표현은 앞선 ‘오병이어의 기적’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의가르침 때문에 불가피하게 시간이 늦어져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본문에서는 그런 배경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만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예수님을 따랐고 먹을 게 다 떨어졌다고만 언급을 합니다.

    3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들을 굶겨 집으로 돌려보내면 가는 길에 기진할 것을 염려하면서 그 중에는 아주 멀리에서 온 사람도 있음을 상기시키십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목자 없는 양처럼 버려진 이들을 향한 끊임없는 연민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복음’을 전파하시면서도 늘 사람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으셨음을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은 언제나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바로 ‘목자의 심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복음은 단지 ‘영혼 구원’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그러하였듯 말이지요. 복음이 강력하게 전파되고,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이유는 예수님께서 단지 말 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연약한 자들을 돌아보셨습니다. 그 복음으로 새 생명 얻은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도 우리 주님께서는 그 마음을 나누어 가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주의 백성으로서 돌봄과 나눔을 통해 더욱 복음의 풍성함과 영광을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따라 복음 전파의 사역을 감당하려 하시지만, 그와 함께 먹고 자며 생활하는 제자들은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만약 마가복음이 시간 순서에 따라서 기록이 되었다면, 지금 제자들은 이미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4절에 다시 ‘이 광야에서 어떻게 어디에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소연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의 참된 풍성함’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예수를 믿고 분명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본 경험이 있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큰 생명을 얻고 의미 있는 삶을 하루하루 살고 있음이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도무지 내 힘과 능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인데 분명히 하나님이 얻게 하셔서 누리고 있다는 것이 있음을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하나님의 은혜에 무디어지게 되면 어느 샌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음의 풍성함’을 놓치고 맙니다. 그리고는 자꾸만 ‘자신의 약함과 작음’에 집중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데 어떻게 복음의 일꾼이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저 사람은 나보다 더 많이 배우고, 가진 것도 많은데 어떻게 제가 저런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까?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이렇게 우리의 삶이 자꾸만 쭈그러듭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복음’은 결코 우리를 뒤로 물러나게 하는 복음이 아니라 더욱 더 한 발짝 앞으로 내딛게 만드는 놀라운 능력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스스로 ‘나에게는 너무나 적은 것 밖에는 없습니다.’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신 일을 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5절에 제자들에게 물으시지요. ‘그래? 지금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많은 떡을 구할 수 없다는 말이지? 그러면 지금 너희가 가지고 있는 떡은 얼마나 있느냐?’ 제자들은 답합니다. ‘일곱 개가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사람들을 짝 지워 앉히시고 그 떡 일곱 개를 축사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7절을 보니 미처 깨닫지 못했던 ‘물고기 두 마리’도 찾아내어서 그것도 축사하여 나누어 주게 하십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모두 배불리 먹고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9절에 배불리 먹은 사람의 숫자가 ‘4천명’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보통 사람 숫자는 ‘장정 남자’만 개수합니다. 여자와 어린아이는 셈에 넣지 않지요. 그래서 약 4배 정도로 계산하면 됩니다. 총 만 육천 명 정도의 사람이 먹고도 남았다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리고 과연 복음에 대한 바른 반응은 무엇일까요? 내가 가진 작은 것을 결코 작다고 여기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복음을 더욱 풍성히 누리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돈이 없어서 못 섬긴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작은 재능이라도 주님께 드려지기만 하면 쓰임 받습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사용됩니다. 그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붙잡아야 할 ‘복음에 대한 바른 반응’ 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복음은 흥왕하고, 하나님은 취하실 영광을 다 취하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대중앙교회는 주님의 피값 주고 사신 교회임을 믿으십니까? 이 새벽에 결단합시다. 전대중앙교회가 비록 연약하고 작아 보이지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드릴 때에 우리 교회를 통해 칠병이어,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용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 전대중앙교회가 진정으로 복음의 풍성함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의 삶을 통해 크신 하나님의 일과 능력이 드러나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 작은 것 주님께 드릴 때에 이 세상 가운데 크고 위대하게 사용하실 것을 믿고 복음의 자부심으로 가득찬 우리 모두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님께 이 새벽에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감으로 그 모든 기도의 응답을 얻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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