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막 9:2-13

◎본문: 막 9:2-13

◎개요

2-8절 산 위에서 변형되신 예수님

9-13절 산 아래서 예수님의 경고와 제자들의 질문

◎말씀연구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2절부터 8절까지는 산 위에서 변형되신 예수님에 관한 말씀이고, 9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은 산 아래서 예수님의 경고와 제자들의 질문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엿새 후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대동하고 높은 산으로 오르십니다. 그들 앞에서 예수님은 변형되십니다. 예수님의 옷에 대한 추가 설명이 이어지는데, 마가는 예수님이 천상의 존재로 변화되심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앞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실 약속에 이어 등장하기 때문에, 장차 변화될 자신의 모습을 잠시나마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본 것은 예수님의 변형만이 아닙니다.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님 곁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와 모세는 율법과 선지자의 상징적인 인물이며, 종말론적 영원성을 간직한 신비한 인물들입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모세는 무덤이 어딘지 모르며,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으로 하늘에 올라가서 죽음을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엘리야와 모세가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했다고 누가복음 9장에 기록합니다. 환상적인 모습에 압도되어 베드로가 나섭니다. 우선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죠. 베드로는 그곳에 자신들이 주와 더불어 모세와 엘리야를 위한 초막 셋을 짓게 해달라 요청합니다. 이 시간을 자신들만의 특권으로 간직하고 싶은 베드로의 즉흥적 상상력이 이끈 행동인 것이죠. 매우 어울리지 않는 요청입니다. 마가는 그 이유가 될 만한 정보를 곧바로 제공해줍니다. 눈앞에 펼쳐진 신비스런 일로 세 제자들이 커다란 두려움에 압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셈이죠. 너무 두려운 나머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바로 그때 구름이 그들을 뒤덮습니다. 구약에서 구름은 신적 현현의 영광과 신비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이 장면은 마치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하나님이 모세와 대화하는 장면과 유사하게 보이죠.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제자들은 이 천상의 목소리의 주인공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은 마가복음 1장 11절 말씀인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 말씀, 즉 초반에 소개된 예수님의 정체성입니다. 바로 앞 이야기,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서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에 이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이어지면서 초대교회 핵심 기독론적 칭호가 선명하게 공개되고 있는 것이죠.

제자들이 해야할 일은 초막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모세, 엘리야, 예수님, 이 세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율법과 선지자 시대는 옛 시대이고 예수님은 새 시대입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이시죠. 제자들은 새 시대 새 질서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이죠. 앞의 8장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가르치실 때, 베드로가 막아서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서라고 혼이 났던 것처럼, 베드로의 행동은 또다시 무효화됩니다.

그리고 천상의 소리가 멈추자 제자들이 주위를 둘러봅니다. 모든 신비의 광경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둘러싸였던 모세는 시내산 아래에 내려와서까지 한동안 그 얼굴에서 광채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신비로운 장면이 구름 속 음성과 함께 걷히자 평범한 상황으로 전환되는 듯 묘사한 것으로 보아 모세와 달리 예수님은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산 아래서 예수님의 경고와 제자들의 질문들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과 세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옵니다. 다시 도중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산 위의 신비스런 경험을 자신이 죽고 부활할 때까지 절대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엄히 경계하십니다.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두 번째 죽음과 부활 예고입니다. 앞서 8장 30절 이하, 첫 번째 수난 예고에서 경계하셨던 것과 연결해, 예수님은 또다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부활 때까지 침묵하도록 제자들을 경계하십니다. 세 제자들이 예수님의 경계를 비밀처럼 마음에 깊이 새겨둡니다. 하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여전히 알지 못해 서로 고심합니다. 10절 중반에 서로 문의하되라고 말씀하죠. 제자들의 무지와 당혹감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것이죠. 신비로운 현상을 생생히 목격했으니 그 사건 자체를 침묵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벌써 두 번째로 들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 이것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죠.

분명 예수님이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인했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죽을 수 있느냐는 것이 제자들의 딜레마였을 것입니다. 죽음과 부활은 경험하기까지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기 때문이죠. 산 위의 신비는 죽음과 부활의 빛으로 재조명 되어야 그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까지 침묵과 비밀로 덮어두어야 하는 것이죠.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율법교사들이 가르쳐왔던 메시아의 도래와 관련한 질문입니다. 메시아가 오기 전 반드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하는데, 그 엘리야가 이미 온 것이냐는 물음이었습니다.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이라는 기대는 말라기 4장 5절, 6절 말씀을 반영한 것이죠. 제자들은 아직 엘리야가 오지 않았는데 메시아가 도래한 사실에 의문을 갖고 있었던 것이죠. 일단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 내용에 긍정하십니다. 엘리야가 반드시 메시아보다 앞서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돌려주신 질문은 성경이 인자의 고난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에 대한 제자들의 관심을 인자와 그 운명으로 돌리십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이미 왔다는 놀라운 선언을 던지시죠. 예수님이 지목하신 엘리야는 두말할 필요 없이 세례요한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말씀하고 있죠.

마태복음 17: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엘리야의 이스라엘 회복과 메시아의 완성이라는 틀을 가진 제자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은 회복은커녕 무기력하게 고난받고 죽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바로 그 엘리야인데 사람들이 그를 함부로 대우해 죽였다고 말씀하시죠. 예수님의 가르침의 초점은 세례 요한이 아닌 인자의 운명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기대처럼 엘리야와 메시아가 오지 않고, 그 사역도 그들의 기대와 전혀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먼저 온 엘리야가 그런 대우를 받고 죽듯이, 그 다음 오는 인자 역시 그렇게 고난받고 멸시당할 것이라는 거죠. 이것은 산 위에서 나타난 신비만큼이나 놀라운 산 아래에서의 신비, 곧 메시아 비밀인 것이죠. 물론 제자들이 지금 이 대목에서 그것을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은혜의 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과 예수님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보고 답을 알 수 있는 시대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 예수님의 시대, 바로 새 시대를 열어주셨습니다. 이 새 시대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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