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막 9:38-50

◎ 본문: 막 9:38-50
◎ 제목: 제자다운 제자

1. 본문 개요
    a. 막 9:38-41           반대하지 않는 자 = 우리를 위하는 자
    b. 막 9:42-50           실족에 대한 경계


2. 관찰
    a. 38절: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를 막아서는 제자 요한
    b. 39-40절: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c. 41절: 그리스도에 속한 자를 설명하시는 예수님
    d. 42절: 실족하게 하는 자에 대해 말씀하시는 예수님
    e. 43-48절: 지옥과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사람들의 각 상태
    f. 49-50절: 소금 비유

3. 적용
    하나님 나라와 세속 나라는 궁극적으로 ‘백성’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다릅니다. 세속 나라는 인간을 한 존재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부속품처럼 취급합니다. 그러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립니다. 조금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지만 ‘존재 가치’보다 ‘효용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가 바로 ‘세속 나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주님의 나라, 하나님 나라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나라는 가장 작은 자 하나라도 섬기는 나라입니다. 인간을 ‘존재 가치’로 여기고 작은 자라도 존중하고 세워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지향하는 가치’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를 따르는 제자라면 그 예수님이 지향하는 가치에 동의하고 그에 따라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러한 예수님이 지향하는 가치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세속의 가치를 지향하는 어리석음을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 38절에 ‘제자 요한’이 예수님께 마치 자랑을 하듯 떠벌립니다.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자가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는 우리를 따르지 않아서 못하게 했습니다. 저 잘했죠?’ 이러고 있는 겁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따르는 공동체를 ‘우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특별한 소속의 의미로 예수를 따르는 ‘제자 공동체’를 ‘우리’로 지칭합니다.

    이러한 요한의 발언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제자들이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울타리를 통해 제자들은 이른바 ‘예수의 나라’의 특권을 독차지 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자들의 태도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동의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요한의 발언에 대해 39절에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40절에는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까지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관심은 ‘소수의 제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의 나라에서 생명을 누리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소수가 독점하는 축복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는 축복을 예수님은 더 많은 이들이 누리기를 원한다는 말이지요. 주님께서는 작은 호의라도 보인자라면 예수의 나라에 동참하는 자이기 때문에, 소속과 사역이 달라도 상대방을 경쟁자가 아닌 동역자로 여기며 존중하고 협력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에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전대중앙교회’입니다. 가장 상회에 ‘총회’가 있고, 그 산하에 ‘노회’가 있으며, 노회 산하에는 ‘시찰회’가 있습니다. ‘시찰회’ 안에 각 교회는 ‘따로 또 같이’의 정신으로 묶여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노회 안에서도, 총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우리 교회는 ‘포곡읍 기독교 연합회’라는 이름으로 포곡읍 지역에 있는 지역교회들과도 연합하고 있습니다. 각 교회 구성을 보면 서로 교단도 다르고 규모도 다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예수의 나라’ 안에서 한 백성이고, 한 지체입니다. 어느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존재 가치’를 인정받아 마땅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 마음이 아니면 우리는 서로 연합할 수도, 함께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을 ‘개교회주의’라고 합니다. 엄연히 따지면 예수님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 교회’를 시작으로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다 ‘성령 안에 하나’입니다. 그것을 신학적 용어로 ‘공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개교회’라는 용어는 사실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늘 이러한 ‘넓은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고 다른 교회 식구들과 기꺼이 연합하고 포용하고 함께하면서 예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내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혹 좁은 마음은 없는지 살펴보고 동역자로 다른 교회 성도들도 존중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세상은 작은 자를 하찮게 여기며 투명인간 취급을 하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상처와 서러움으로 생의 의지가 꺾이곤 하지요. 하지만 주님은 만약 너희가 ‘예수의 제자’라면 결코 그런 오만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42절이 그 내용을 다룹니다. 만약 예수를 믿는 사람 중에 아주 작은 자라도 실족하게 한다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실족하게 한다는 것은 하찮게 여기거나 무시한다는 의미이겠지요. 연자멧돌은 예수님 당시에 나귀에 메어서 밀을 탈곡할 때 사용하던 무거운 돌을 말합니다. 만약 사람이 그 돌에 목이 매달려 바다에 빠진다면 죽을 수밖에 없겠지요. 완전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고대에 이런 방식으로 사형 집행을 행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배제와 차별, 악한 이기심으로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일은 다름 아닌 작은 자를 일으켜주는 자가 되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가 70년이 되어 갑니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교회이지요. 이와 같은 교회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이른바 ‘박힌 돌이 구르는 돌을 구박하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기존 성도님들이 우리만의 문화가 있다는 식으로 새롭게 교회에 등록하시는 분들을 배제하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실 어떤 기존 성도가 의도적으로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은연중에 각자마다 가지고 있는 ‘신앙의 색깔’을 포용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의도적으로 우리들의 신앙이 경직되지 않고 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 됨을 추구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자연스럽게 그것이 이루어지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요.

    이 일을 위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겸손과 섬김, 포용과 자기성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꼰대 같은 사람은 ‘나만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고 늘 스스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 성찰’을 해야 합니다. 나 스스로는 조금도 겸손할 수 없고, 섬길 수 없으며, 누군가를 포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늘 다짐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자기부인과 섬김의 삶이 얼마나 어려우면 예수님께서 과장법으로 ‘범죄 하는 발을 찍어버리고, 범죄 하는 눈을 빼버리라’고 까지 말씀하시겠습니까? 죄를 범하면 그 근원을 다 도려내겠다는 그런 각오로 늘 나의 행동과 마음의 상태를 하나님 앞에서 ‘겸손과 섬김의 제자의 모습’으로 가꾸어 갈 것을 요청하시는 겁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으니 나는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넘어지는 자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를 넘어지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새벽에 맛을 잃은 소금처럼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 음식을 맛깔나게 만드는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예수의 제자로 서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지체 됨’을 포기하고 ‘조직 논리’에 갇혀 버린다면 더 이상 ‘예수의 공동체’가 아닌 이익집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공동체로 우리 전대중앙교회가 바르게 서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온전히 이루어가는 믿음의 공동체로 저와 여러분이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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