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막 11:12-26

◎본문: 막 11:12-26

◎개요

12-14절 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

15-19절 성전을 깨끗케 하심

20-26절 마른 무화과나무 그리고 기도와 용서에 대한 가르침

◎본문연구

오늘 본문 말씀 12절부터 14절까지는 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이고, 15절부터 19절까지는 성전을 정화하신, 깨끗케 하신 사건, 그리고 20절부터 26절까지의 말씀은 마른 무화과나무 그리고 기도와 용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유월절인 금요일, 그 주간에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고, 그리고 성 밖 베다니라는 마을에 가셔서 거기서 유하십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셔서 성전을 깨끗하게 정화하시는 사건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날이 지금으로 치면 주일이고, 그리고 베다니에서 쉬시고 다음 날 아침, 월요일 아침에 예루살렘 성으로 다시 들어가셔서 성전을 정화하시는데, 들어가시기 전부터가 오늘 본문 말씀의 시작인 것입니다.

먼저 무화과나무 사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가 한번 설교를 한적이 있는데, 기억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다니라는 마을과 아주 가까이에 벳바게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 두 마을은 예루살렘 성 밖 감람산을 가로질러 올라가면 갈래 길이 나오고, 그 갈래 길이 바로 벳바게와 베다니라는 마을을 들어가는 길입니다. 마을의 이름, 벳바게라는 뜻은 처음에 나는 무화과 열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베다니라는 뜻은 좋은 무화과 열매라는 뜻입니다. 벳바게의 파게라는 단어는 무화과 열매의 첫 열매를 뜻합니다. 이 파게라는 열매는 상품성이 없고 맛도 벗는 그런 열매입니다. 그리고 베다니의 다니, 테에나라는 단어는 상품성이 있는 무화과 열매를 뜻하는데, 첫 열매인 파게가 열리고 이후에 열리는 상품성이 좋은 열매를 테에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파게라는 열매는 지나가는 행인들, 가난한 사람들, 과부들, 창녀들, 이런 사람들이 먹는 생명과도 같은 양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건기인 12월부터 4월까지는 특별하기 먹을거리가 없었습니다. 부자들이야 먹을 것이 창고에 가득하겠지만, 가난하고 불쌍하고, 가엾은 이들에게는 유일하게 먹을 거리로 삼는 것이 공짜로 얻게 되는 파게라는 무화과 첫 열매였던 것이죠. 무화과 나무의 주인들도 이 첫 열매는 팔지도 못하고, 또 상품성 있는 테에나라는 열매가 열리기 위해서는 이 첫 열매를 다 따주어야 했는데, 가난하고 불쌍하고 과부이고, 창녀이고, 행인들이 지나가면서 이 열매라도 먹으려도 따서 먹었기 때문에, 수고를 덜어서 좋고, 이들이 그 열매라도 먹어서 좋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베다니라는 마을에서 제자들과 나오신 예수님께서 한 무화과 나무에 잎이 무성한 것을 보셨고, 배가 고픈 차에 가셔서 열매를 찾으신 것입니다. 그 찾으신 열매가 가난하고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 과부들, 이들이 먹는 파게라는 첫 열매를 찾으신 것이죠. 그런데 없었던 것입니다.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마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은 외식하는 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파게라는 첫 열매가 없으면 다음 열매도 없듯이, 잎만 무성한, 하지만 열매가 없는 나무는 죽은 나무와 같은 것이죠.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는 동안 주로 사역하셨던 대상들, 가난한 사람들, 과부들, 창녀들이었습니다. 왜입니까?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는 동안 이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제사장들, 이들은 어떻습니까? 믿지 않았죠.

무엇을 뜻합니까?

첫 열매, 파게가 있어야 그 다음에 좋은 열매들, 테에나라는 열매들이 있듯이, 부활의 첫 열매는 예수님이 되셨고, 그것을 믿는 자들에게는 부활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의 부활도 믿지 않았던 유대인들은 마치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저주하신 것처럼, 그들의 모습이 믿음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중간에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사건이 등장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매매하는 자들과 사고 파는 자들을,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고 쫓아내십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결국 이 하나님의 성전은 몸 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고, 후에 성령 하나님을 보내신 후, 성령 하나님께서 계신, 임재하시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놀라운 사건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죠.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사도 바울이 이렇게 기록하죠.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또 고린도후서 6장 16절 중반절에서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가 깨끗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졌기 때문이고,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시기 때문에 성전이 되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 스스로 깨끗하게 하지도 못할뿐더러, 스스로는 성전도 될 수 없고, 설령 되었다고 하더라도 성전으로서는 더더욱 역할을 감당할 수 없죠.

오늘 본문 말씀은 샌드위치 기법이라고 해서, 중간에 고기가 있고, 고기 밑과 위에는 빵이 있는 이런 형식으로 사건을 기록하였습니다. 샌드위치는 중간에 있는 고기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기를 감싸고 있는 빵도 중요하죠. 하지만 핵심은 고기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오늘 본문에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이 샌드위치의 빵에 해당한다면,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은 샌드위치의 고기에 해당한다고 보시면 되겠죠.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되었고, 성령님의 계시기에 하나님의 성전이 된 우리에게는 무화과 사건을 통해서 깨닫게 해주신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우리에게도 부활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됨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활할 수 있음을 믿지 못했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처럼 믿음없는 자들이 아니라, 주님 주신 믿음을 붙잡고 끝까지 믿어 의심치 않고, 믿음이 흔들리려 할 때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어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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