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막 12:28-34
◎ 제목: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1. 본문 개요
a. 막 12:38-31 서기관의 질문: 가장 큰 계명
b. 막 12:32-34 서기관의 긍정적 반응
2. 본문 관찰
a. 28절: 서기관의 질문
b. 29-31절: 예수님의 답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c. 32-33절: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제물을 드림보다 낫다는 서기관의 답변
d. 34절: 예수님의 긍정적 반응
3. 적용
오늘 본문을 보시면, 서기관 중 하나가 모든 계명 중에 가장 첫째 되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물론 이 본문에 등장하는 서기관이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할 때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서기관에 예수님께 드리고 있는 질문은 이 세상 모든 주의 뜻을 구하는 성도들의 기도와 그 내용이 동일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으로 부르신 자들과 그 공동체인 교회를 향해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고,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우선적으로 기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모든 질문은 다름 아닌 바로 여기에 앉아 있는 우리들를 향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서기관을 만나기 전에 앞서 ‘권위, 세금, 부활’이라는 주제로 공격을 받으셨습니다. 하나같이 예수님의 답변에 따라 예수님 스스로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치명적인 질문이었고, 논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는데 종교지도자들은 모두 실패하고 맙니다. 도리어 종교지도자들의 권위가 실추되는 수모를 겪습니다.
곧이어 한 서기관이 등장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펼친 논쟁의 목격자였습니다. 당연히 종교지도자들 내부에 속한 사람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예수를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펼치는 변론을 듣고 그 내용을 들으면서 남다른 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적대적인 태도로 예수님에게 일관했던 종교지도자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로 예수님에게 다가옵니다.
그는 변론하는 예수님에게 매력을 느꼈습니다. 율법교사인 자신이 보기에 그의 대답은 대단히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계명 중에 가장 첫째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앞선 10:17절에 한 부자가 던졌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과 같은 맥락의 질문입니다. 최고의 계명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계명이고, 그것을 지킴으로 영생을 확실하게 보장 받을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서기관의 질문에 대한 평가를 하시는 대신 곧바로 질문에 대해 답을 하십니다. 그 답변은 다름 아닌 ‘구약성경의 인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최고의 첫 계명은 신명기 6:4-5 말씀으로 ‘이스라엘아 들으라, 쉐마 이스라엘’로 시작하는 계명인데,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이스라엘이 누구인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주’이십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이 섬겨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을 ‘마음, 목숨, 뜻,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만큼 중요하고 우선하는 계명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최우선 명령은 당신만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앞서 등장했던 논쟁의 주제들을 통해서도 거듭 제시되었지만, 결국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됨의 본분을 다해 자신의 전 생애를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리고 그 형상에 새겨진 그 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 되심으로 그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을 매 순간 덧입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고 살아가며 사는 이스라엘의 참 모습이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어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첫째 계명을 말씀하시는 데서 그치지 않으시고 곧바로 둘째 계명을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레 19:18,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서기관의 ‘첫째 계명’에 대한 질문에 예수님의 대답이 마가복음에서 ‘첫째, 둘째’로 등장하지만, 사실 이것은 십계명의 두 돌 판을 각각 압축한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첫째와 둘째의 무게는 동등합니다. 무엇보다 앞서 부자가 영생을 위한 계명을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의 두 번째 돌판의 말씀을 하시고 그것을 곧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것으로 해석하셨습니다. 곧 영생을 위한 최고의 계명으로 이웃 사랑을 말씀하셨던 겁니다.
그러므로 서기관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이 제시한 최고의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의 질문에 대한 답을 마무리하시면서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사랑은 반드시 이웃 사랑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하나님 사랑은 거짓된 사랑이고 외식적인 사랑이 된다는 결론인 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서기관이 ‘율법 계명 중 으뜸가는 것’을 물었을 때 주저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 중요한 두 가지 가르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순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을 첫째 계명으로, 사람 사랑을 둘째 계명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지만 순서가 뒤바뀌게 되면 우상숭배로 전락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서 늘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해야 한다는 원리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양자택일’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둘 중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도 문제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피조물’ 인 사람이 당신과의 관계 안에서 사랑으로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에, 성도는 늘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사랑을 반드시 ‘사람에 대한 수평적 사랑’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새벽에 이 말씀의 거울 앞에 우리의 삶을 비추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의 이웃, 가깝게는 나의 부모, 자녀, 멀게는 직장과 학교의 동료, 이웃 사촌을 사랑하는 것을 먼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늘 나의 삶의 우선순위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가장 첫 자리에 놓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더불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반드시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드러나야 함을 묵상할 때에 나의 ‘사랑’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내 주변의 사람의 관계 속에 드러나고 있는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기본은 우리의 ‘말’입니다. 우리의 말은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말로 내 입술에 담겨서 전달되고 있습니까? 내 입술의 회개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추상적인 것’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의 사랑이 표현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마음을 표현하는 작은 선물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특정한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사랑이 또한 있습니다. 마음속에 담아 두면 아무도 그 사랑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마치 모르는 듯 새로운 것을 구하지 말고, 그 원리를 구체적 삶의 걸음에서 어떻게 표현할지를 고민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삶의 실제를 위해 지혜와 힘과 인내와 용기를 주께 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