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막 13:1-13

◎본문: 막 13:1-13

◎개요

1-2절 성전 붕괴 예언

3-13절 성전 붕괴 징조들

◎본문연구

오늘 본문 말씀은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절과 2절은 성전 붕괴를 예언하는 말씀이고, 3절부터 13절까지는 성전 붕괴에 대한 징조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날,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과의 한바탕 논쟁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유대교가 얼마나 부패하고 그 기능을 상실했는지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마태는 그런 부패한 성전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깊은 탄식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그 후 예수님 일행은 다시 성전 밖으로 빠져나옵니다. 바로 그때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에게 성전 건물의 어떠함을 묻습니다. 누가는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죠.

누가복음 21:5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님은 성전에서 나오실 때 그것을 보고 탄식하지만, 무리는 값비싼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성전의 위용에 감탄했던 것입니다. 이에 제자들도 덩달아 반응했고, 한 제자가 그저 감탄사처럼 예수님에게 어떠하냐고 물었던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 성전에는 더 이상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종교지도자들의 탐심을 채우는 강도의 소굴이었기 때문이죠. 가난한 과부의 마지막 끼니를 위한 두 렙돈까지 집어삼키며 일구어낸 부패한 유대교의 성공 신화를 상징했던 것이죠.

제자의 물음이 예수님의 충격적인 예언을 이끌어냅니다. 예수님은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라는 질문을 통해 성전 겉모습에 압도된 제자의 넋을 흔들어 깨우십니다. 그토록 아름답고 견고해 보이는 성전과 부속 건물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할 것인지 충격적인 예언을 말씀하시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전부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한 세대 후에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게 되죠. 주후 66년에 로마 장군 베스파시안이 유대인 봉기를 진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후 68년에 젊은 황제 네로가 갑자기 죽자 황실은 혼돈에 빠지게 되죠. 이후 1년 반만에 새로운 3명의 황제가 등극하고 암살을 당합니다. 이러한 혼돈을 수습하기 위해서 원로원은 장군 베스파시안을 예루살렘으로부터 소환해 황제로 옹립하게 되죠.

그는 아직 진압되지 않은 예루살렘을 아들인 티투스 장군에게 맡겨서 신속히 마무리 짓게 하였고, 주후 70년 4월부터 9월까지 예루살렘은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을 맞게 됩니다. 성전은 티투 장군에 의해 완전히 초토화되게 되죠.

무심코 던진 질문에 예수님의 충격적인 말씀을 들은 제자는 충격 속에 성전을 빠져나오며 동료 제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을 것입니다. 예수님 일행이 감람산에 이릅니다. 예수님은 또다시 성전을 마주보며 앉으십니다. 감람산과 예루살렘은 가운데 기드론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서 있었기에 예루살렘과 성전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을 대표하는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 네 명의 제자가 예수님에게 은밀하게 묻습니다.

때와 징조에 관해 묻습니다. 언제 그런 충격적인 일이 있겠으며, 그에 앞서 무슨 징조들이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성전이 붕괴된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 성전이 없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토록 화려한 석조 건물을 무너뜨리려면 엄청난 군사력이 필요할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것이죠. 혹시 이 모든 것이 비유가 아닐까 하는 복잡한 심정으로 예수님에게 때와 징조를 묻는 것이죠. 예수님은 먼저 다양한 징조들을 말씀하시는데, 나타날 징조들에 따른 주의와 적절한 행동을 명령하십니다. 가장 먼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왔다며 내가 그다 라는 말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에서 내가 그다라는 말은 구약에서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라고 해서 예수님의 자기를 나타내실 때, 자기 계시 칭호로 사용하셨던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계시하실 때 사용하셨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번역을 하고 있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셨던 자기 계시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드러내실 때, 똑같이 사용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7가지로 자신을 계시하시죠.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다. 이렇게 7가지로 자신을 밝히 드러내시면서 성자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이죠.

그런데 첫 번째 징조로 이러한 신적 권위를 가장하고 자신이 메시아라고 칭하는 거짓 선동가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들은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시일에 있을 것이기에 제자들에게 속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으로 난리에 대한 소문들입니다. 여기에서 난리는 곧바로 이어지는 전쟁이나 정치적 소용돌이와 자연재해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재앙을 의미합니다. 실제 예루살렘 멸망을 앞둔 로마와 유대의 정치적 상황은 난리와 난리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소문이 들려오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일들은 반드시 있어야 할 일들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 자체가 끝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끝을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해했을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주변 민족들 간의 다툼과 나라들 간의 전쟁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도처에 자연재해도 동반되면서 재난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이 직접적인 대상으로 묘사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제자들을 공회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매질하며 권력자들과 왕들 앞에 세울 것을 예언하십니다. 이것이 고난의 당사자인 제자들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멸망의 징조가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권력에게 고난을 당하고 그들 앞에 끌려가는 것은 제자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이죠. 여기에서 넘겨지고 매질 당하고 끌려가 왕 앞에 선다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운명을 따르는 자들이 될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이런 고통의 현실은 멸망의 징조가 다가 아니라 복음이 온 열방에 전파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죠. 제자들이 공개적 핍박을 당하는 등, 제자들의 이러한 현실은 예수 이름 때문에 그리고 예수와 복음을 위하여 겪는 숙명이자 영광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예수님 믿고 견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하죠.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