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막 16:1-20


◎ 본문: 막 16:1-20
◎ 제목: 조용한 부활

1. 본문 개요
    a. 막 16:1-8           그는 살아나셨다
    b. 막 16:9-13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증인들의 증언
    c. 막 16:14-20           지상 명령과 승천

2. 본문 관찰
    a. 1-4절: 무덤을 찾은 여인들
    b. 5-6절: 무덤 속의 한 청년
    c. 7-8절: 몹시 놀란 여인들
    d. 9-11절: 막달라 마리아
    e. 12-13절: 두 제자
    f. 14-18절: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심과 지상 명령
    g. 19-20절: 승천과 제자들의 사역에 함께하심

3. 적용
    우리가 부활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있다면, 부활이 단지 ‘죽었던 몸이 살아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몸으로 변화해 살아나는 것입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 진리입니다. 하지만 이 부활이라는 ‘신학적 개념’이 기독교를 반대하는 주된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으로 치면 부활은 ‘물리적, 화학적 법칙’ 모두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부활에 대해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런 성경의 가르침에 가운데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2절에 안식 후 첫날에 향품을 챙긴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일찍 해 돋을 대에 무덤으로 온 사실을 언급합니다. 이 세 여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켰으며, 사실상 갈릴리에서부터 골고다까지 예수님의 행적 전체의 목격자이기도 합니다. 이 여인들이 항품을 챙겨서 안식 후 첫날 그것도 새벽에 무덤을 찾은 이유는 예수님께서 죽으신 상황이 매우 급박했기 때문에 시신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인들에게 3절을 보니 한 가지 염려가 있었는데, 자신들이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덤을 막은 돌을 굴려야 하는데, 그 일을 해 줄 사람이 있을까 하는 염려였습니다. 이틀 전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자신의 빈 새 무덤을 준비해서 예수님을 장사지낼 때에 돌로 봉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 문을 열어야만 자신들이 준비한 것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거죠.

    돌문은 기울어진 홈을 따라서 중력에 의해 굴려져서 닫히는 형식이었으며, 심지어 그 돌은 매우 컸습니다. 그럼에도 최대한 날이 밝기 전에 일을 마무리 하겠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무덤으로 새벽부터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돌문이 벌써 굴려져 열려 있었습니다. 당황한 여인들은 무덤 속으로 조심스레 들어갑니다. 무덤에는 흰 옷 입은 한 청년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것을 발견한 여인들은 놀라서 까무러칩니다. 여인들이 놀래자 이 청년은 ‘놀라지 말라’는 말로 먼저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리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은 구원의 길을 연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전무후무한 사건이지요. 그렇다면 그 일은 동네방네 소문을 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조용히 진행시키십니다. 그리고 소수에게 알리실 뿐입니다. 먼저 가장 연약해 보이는 세 여인에게 이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세상의 방법과 하나님은 다르게 일하시는 분임은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렇게 조용한 방법으로 당신의 부활을 알리시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을 얻으시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때에 보였던 행동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모두 도망가고, 멀찍이 쫓던 베드로마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자존감은 완전히 바닥을 쳤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부활의 소식을 동네방네 대대적으로 홍보가 되어서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이들의 귀에 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습니까? 그들은 결코 예수님을 다시 보지 않으려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청년이라 불리는 ‘천사’를 통해 먼저 여인들에게 나타나 예수의 부활을 알립니다. 그리고 이 여인들을 통해 제자들에게 이 소식이 전해지는 방식으로 하나님은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려는 계획을 세우신 겁니다. 이 방법으로만 제자들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기 전에 말씀하신대로 너희들 보다 먼저 갈릴리에 가 계실 것이라는 사실을 전달하도록 하신 겁니다.

    이처럼 부활은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사랑과 구원의 증표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부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힘을 과시하여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기 위함이 아닙니다. 부활이 참으로 우리를 살리고 구원케 하는 놀라운 은혜임을 깨닫게 하고 싶으셨던 겁니다. 그래서 소수의 사람, 그것도 여성들을 통해 이 일을 먼저 알리시는 겁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을 우리는 주님의 부활 사건을 통해 깨달아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여성에게는 ‘증인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여성들을 부활의 첫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돌아가셔서 장례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달려 온 것입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렇게 못합니다. 주님은 그런 여성들의 마음을 보시고 그들을 통해, 작은 자를 통해 진리를 전하기 원하셨습니다.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홍보하지 않습니다. 더 영향력이 있고, 더 파워가 있는 사람을 내세워서 과시 하듯 홍보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런 세상의 방식으로 주님의 부활을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성을 통해, 세 여인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제제들에게 알립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부활을 듣고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2절에 친히 제자들 중, 시골로 내려가는 두 사람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자신의 부활을 알리십니다. 그 두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알리니 그래도 역시 믿지 않았지요.

    예수님은 그래서 결국 11 제자가 음식 먹는 자리에 나타나셔서 그들의 믿음 없음과 완악함을 꾸짖으십니다. 자신의 살아남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않는 11 제자가 안타까우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끝끝내 찾아오시고, 만나주시고 그들을 안아 주시고 다시 제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일으키시고 독려해 주십니다. 그 하나님의 ‘부활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을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 역사 가운데 부활은 ‘십자가’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신앙’을 따라 우리가 살아갈 때에 우리는 세상 가운데에 참 소망을 우리 가운데 소유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우리는 너무나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 다시 재림 하시는 그 날에 세상 모든 이는 ‘부활’을 경험합니다. 주님 안에서 죽은 자나 밖에 서 죽은 자나 다 부활합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 죽은 자는 그 ‘부활체’와 더불어 천국에서 영원히 왕 노릇하지만, 악인의 부활은 부활한 몸을 가지고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 불못으로 심판받아 내려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 신앙’으로 성도가 무장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이것만이 험한 세상 가운데에서 소망으로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됩니다.

    요란한 홍보가 아니라 진실한 사람을 회복시켜 세우고, 약하지만 주의 뜻에 순종하는 자를 통해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사실을 ‘부활 사건’을 통해서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부활주일 새벽에 이 말씀에 비추어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삶을 돌아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참으로 그 ‘부활 신앙’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남께서 연약하고 부족한 나를 끝까지 끌어안으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것처럼, 내 주변의 이웃들에게 복음 전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도 부활의 기쁨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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