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신 19:1-21

◎본문: 신 19:1-21

◎개요

1-13절 도피성

14절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

15-21절 재판의 증인

◎본문연구

오늘 본문 말씀은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절부터 13절까지는 도피성에 관한 말씀이고, 14절은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고 하는 명령이고, 15절부터 21절까지는 재판의 증인에 관한 말씀입니다.

1절에 나오는 표현들, 즉 땅을 주시므로 그리고 성읍과 가옥에 거주한다는 서술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고, 그것을 차지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도피성 제도는 가나안 입성 이후에 시행될 수 있는 것이죠.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세 성읍을 구별해야 합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곳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이름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20장 7절 말씀에서 알려주고 있죠.

여호수아 20:7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

그리고 본문 3절은 도피성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요단 서편을 세 구역으로 나눌 뿐 아니라 길을 닦아야 합니다. 이 단어는 길을 닦다는 의미뿐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두다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길을 닦는다는 의미는 도피성으로 들어갈 때 길을 평평하게 해서 도망하는 사람이 돌이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의미가 되겠죠. 왜냐하면 이러한 사고 때문에, 도피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보복하려는 사람에게 잡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를 두다라는 의미는 도피성이 한 곳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 됩니다. 도피성이 집중되지 않고 분산되어 있어야 도피하는 자가 가까운 곳으로 도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입니까? 도피성에 들어가는 자는 일단 모두 살인자입니다. 부지중에 실수로, 심지어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도구를 놓쳤을 뿐인데 사건이 일어나게 된 살인을 하게 된 사람들이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살인을 하게 된 모든 살인자가 도피성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은 거꾸로 말하면, 도피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본문 말씀은 모든 살인자에게 살해 의도성이 없었음을 가정하고 뒤이어 도피성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4절과 5절은 살인자가 도피성에서 지속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경우를 일부 언급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부지중에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살인의 의도성을 파악합니다. 부지중에 발생하는 살인은 일상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벌목하는 상황을 이야기하며, 나무를 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도끼날에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를 예로 들고 있죠. 이 경우에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비의도적 살인자는 도피성으로 피하여 자신의 생명을 보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6절에 이 사실은 피를 보복하는 자는 살인의 의도성에 상관없이 살인한 사람을 죽일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6절은 도피성 제도를 통해 비의도적 살인을 한 사람의 목숨을 보호하며, 다른 한편으로 피의 보복자의 정당해 보이는 무차별적 살인을 저지합니다. 그런 점에서 도피성은 생명 보호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죠. 8절 말씀부터는 새로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지경을 넓혀에서 넓히다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지경을 확장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8절 하반절에서는 그 땅을 네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절부터 7절에 나오는 땅을 여호와께서 약속한 땅을 완전히 차지하지 못한 것으로 암시하고 있는 것이죠. 만약 이스라엘의 영토가 넓어진다면, 이스라엘은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도피성을 추가로 지정해야 합니다.

11절은 도피성으로 피할 수 없는 경우를 말씀하고 있죠. 먼저는 이웃을 미워하여 라고 하여 살인동기를 언급하고 뒤이어 그를 기다리다가 라고 하는 살인 의도적 행위를 말씀합니다. 이것은 본래 함정을 파놓고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살해자의 치밀한 계획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죠. 도피성에서 이루어지는 재판은 그것을 밝혀내는 것이며, 만일 살인의 의도성이 드러나면 성읍 장로들은 고의로 살인한 자를 피의 보복자에게 넘겨주어 그를 처단하도록 합니다. 이 규정은 모든 살인자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8절부터 13절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고 반복하여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10절에서는 비의도적 살인자를 보호하기 위해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고 명령하시지만, 13절에서는 의도적 살인을 방치하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해 무죄한 피를 흘리는 행위를 금지하시죠. 바꾸어 말하면, 성서의 율법은 죄를 눈감는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 명확한 범죄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이유로 의도적 범죄자를 감싸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것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행위와 같으며, 의도적 범죄자를 보호하는 것은 그 범죄 행위에 동참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아무리 실수로 살인했더라도 살인은 살인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사면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리고 도피성에 피한 사람이 부지중에 죄를 범한 것이 맞는지 엄격하게 조사해서 은혜의 방편인 도피성이 오용되지 않게 막으시는 것이죠. 도피성은 부지중에 살인한 사람들에게는 은혜의 방편입니다. 죽어야 하는, 피의 보복자에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보복을 당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바로 도피성이기 때문에, 은혜의 방편이 되는 것이죠. 일단 도피성에 들어가면 대제사장이 죽기 전까지는 거기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야 하는 사실 자체가 처벌이라면 처벌입니다.

만약 도피성에서 나와서 활보하다가 보복자에게 발각되어 죽으면 그 책임을 물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복자가 무서워서라도 도피성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이죠. 다만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나올 수가 있습니다. 사면이 되는 것이죠. 대제사장이 죽은 후 고향으로 돌아온, 사면이 된 사람을 보복자가 죽이면 그 사람이 살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피의 보복이 아니라 살인이 되는 것이죠. 이렇듯 도피성은 죄를 너무 온정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다 감싸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너무 가혹하게 다루지도 않습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확실하게 드러나게 해줍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율법을 더 확장하셨죠.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을 예수님은 더 확장을 하셔서,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 바보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죽어 마땅하다는 것이죠. 아무도 행위나 무엇으로 자신이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주신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도 살인자와 같이 심판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도피할 수 있는 길, 살 수 있는 생명의 길을 주셨죠.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이미 도피성과 같은 예수님의 품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심판이 없고, 심판이 우리를 괴롭게 하거나 두렵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이 사실을 기억하시고 두려움없이, 주님 주신 믿음을 의지하고, 주님께 다 맡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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