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신 22:1-12
◎개요
1-4절 이웃을 대하는 태도
5-12절 기타 규정
◎본문연구
오늘 본문 말씀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절부터 4절까지는 이웃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으며, 5절부터 12절까지는 기타 여러 규정에 관한 말씀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22장은 이웃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에 우리나라 번역과는 다르게 히브리어 번역은 로티르에로 시작을 하는데, 너는 쳐다보기만 해서는 안된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문장, 너는 쳐다보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1절과 4절 말씀의 어두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못 본 체하지 말고라고 번역된 문장 역시도 1절, 3절, 4절 이렇게 세 번이나 사용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본문은 못 본 체해서는 안되는 형제 윤리를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죠. 본문은 이스라엘이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못 본 체하는 행위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는 혈족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동족을 가리킵니다. 즉, 이스라엘 전체, 그 누구에게라도 못 본 체하지 말라는 것이죠.
이어서 1절 마지막은 잃은 가축을 반드시 네 형제에게 돌리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에 돌아가다, 회복하다는 의미를 지닌 슈브라는 동사가 2회 사용되어서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너와 네 형제가 나옵니다. 그리고 너는 길 잃은 가축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상황을 전제합니다. 대신 너와 형제의 관계가 어떠한지, 분쟁 가운데 있는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여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길 잃은 가축을 반드시 돌리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너와 형제의 관계가 어떠하든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가리지 말고 행동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본문은 미완료 동사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일회적 행동이 아니라, 잃은 것을 볼 때마다 행동하라는 의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2절에는 당장에 돌려줄 수 없는 상황에 가정합니다. 여기에 두 가지 상황에 나오는데, 하나는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든, 또 하나는, 네가 그를 알지 못하거든, 이렇게 두 가지 상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너가 할 것을 본문은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이어서 네 집으로 끌고 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려 주라고 말씀합니다. 모세는 형제의 가축을 본 자가 그것을 잘 길러야 함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서 네 집으로 라는 단어는 네 집 안으로 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가축처럼 돌보아야 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3절은 나귀뿐만 아니라, 의복 그리고 형제가 잃어버린 어떤 것이든 다 그리하라고 명령합니다. 대상을 소와 양, 나귀에서 의복으로, 그리고 잃어버린 모든 것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3절에 그리하고라는 단어가 세 차례나 나와서 길 잃은 것을 목격한 자가 반드시 도와주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4절은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목격한 자에게 못 본 체하지 말라고 명령하며, 이어서 반드시 일으키라고 명령합니다. 본문 1절부터 3절 말슴이 이웃에게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경우에 대해 말한다면, 4절은 현장에서 발생한 어려움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경우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신분이나 친분 정도를 언급하지 않으며, 출애굽기 23장 5절 말씀과 유사합니다. 특별히 본문 1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과 출애굽기 23장 4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을 비교해보면, 아주 비슷합니다. 그런데 본문 2절과 3절에 출애굽기 23장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모세는 본문 2절과 3절을 추가로 명령함으로써 형제의 가축을 돌려줄 수 없다면서 거부하는 상황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신명기에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출애굽기 22장에서는 주인의 것을 분실한 자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타인에게서 빌린 동물 또는 물건을 분실한 자는 곤경에 처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물건을 발견한 자는 그것을 찾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 신명기에서는 출애굽기에 나오지 않는 못 본 체하지 말고 라는 문장을 세 차례나 언급함으로서, 형제의 어려움을 대하는 이스라엘의 태도를 가르치고 있죠. 이것은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금지하는 신명기의 명령과 같습니다. 신명기는 형제 윤리 실천을 강조하며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결국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가장 중요하고 큰 두 가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본문 5절부터 12절까지는 다양한 규정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절에서 의복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그릇, 물건 등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의복으로만 번역하는 것은 본문의 의미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시도가 됩니다. 왜냐하면 의복이라는 단어는 장신구나 무기 등으로 이해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즉, 여성이 남성의 의복을 입는 것과 남성이 여성의 의복을 입는 것을 금지한다는 말씀은 이러한 행위들을 하나님께서는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에 가증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남성과 여성이 서로 혼합되는 것을 금지하고 계신다는 것이죠.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추측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이방인의 우상 숭배적 관습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비너스라고 다들 아실 겁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아프로디테의 영어식 이름이 비너스이죠. 여성 속옷 브랜드 이름이기도 하죠. 이 비너스를 숭배할 때, 여자가 갑옷을 입고 남자는 여성의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비너스 숭배에서도 보여주듯이, 이전에 우상숭배 역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국에는 외모가 이런 혼합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마음에서 이미 혼합되었음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겁니다. 특히나 현대 시대는 이러한 것에 대해서 아주 예민하고 민감한 사회적 대두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흔히 말해, 퀴어 축제, 트랜스젠더, 성소수자들, 전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문제들이죠.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로마서 1장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로마서 1: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즉, 성경에서는 그러면 안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순리가 아니라 역리, 거꾸로 한다는 거죠. 이어지는 로마서 말씀에 이들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 일이 역리이며, 하나님께서 사형에 해당한다고 정하셨음도 안다고 말씀하죠. 그런데 알면서도 자신들만 이렇게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 동료들에게 옳다 옳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고 로마서는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니다 아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언제든 사랑으로 감싸주고 교회에서는 받아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웃 사랑의 길이죠. 사랑에는 마음이 최우선이죠.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입니다. 하지만 사랑에는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사랑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들 사랑해보셔서 아시죠. 뭐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고, 못 해줘서 아쉽고, 많이 해줘도 늘 부족한 것 같은, 그래서 마음 한켠에서는 늘 아쉽고 안타깝고 아리는 마음이 있으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 또 우리의 이웃들을 돌아보고 사랑해주고, 기도해주는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질 때까지 이웃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