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목사 / 신 23:1-18


◎ 본문: 신 23:1-18
◎ 제목: 정결함으로 정체성 지키기

1. 본문 개요
    a. 신 23:1-8           총회법
    b. 신 23:9-14           진영을 거룩하게 하라
    c. 신 23:15-18           기타 규정

2. 관찰
    a. 1-6절: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자
    b. 7-8절: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는 이방인
    c. 9-14절: 진영 안에서 거룩을 지키는 규정
    d. 15-16절: 주인에게서 도망한 종에 대한 처리 규정
    e. 17-18절: 신전 창기 금지

3. 적용
    오늘 함께 살펴보고 있는 신 23:1-18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의 정체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는 율법에 대한 내용입니다. 1-8절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과 들어갈 수 없는 자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9-14절은 전쟁의 상황을 두고 진영을 거룩하게 하는 것에 대한 지침이 나옵니다. 그리고 15-18절은 도망한 노예에 대한 처우와 우상 숭배와 관련된 ‘성전 창기’를 금함으로 거룩을 유지해야 해야 함에 대해 언급합니다.

    먼저 1-6절은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언급합니다. 먼저 ‘성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데, 이는 후손이 끊겨 어떤 지파와 가문의 족보에도 들어갈 수 없음으로 총회에 입회 자격이 박탈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사생자’도 총회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사생자’는 ‘종교적 혼혈아’를 일컫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2절에 사생자는 10대 뿐 아니라 영원히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는 이 규정의 절대성을 말합니다. 암몬과 모압의 경우도 절대로 총회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이유는 떡과 물로 광야 가운데에 이스라엘 백성을 영접하지 않았고,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언급합니다. 그런데 7-8절에서는 에돔과 애굽 사람에 대해서는 총회에 들어올 길을 열어둡니다. 8절에 그들의 삼 대 후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이기 때문에 ‘형제 나라’로서 그리하라고 말하며, 애굽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객으로 지냈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총회는 이스라엘 공동체 구성원의 중요한 모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총회는 ‘폐쇄적’인 측면도 있고, 한편으로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총회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규정하여서 ‘개방적인 성격’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고, 들어오지 못하는 기준에 대해 어떻게 보면 물음표를 그릴 수 있습니다. 사실 암몬과 모압도 혈통으로 따진다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자손이기 때문에 혈연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결코 들어오지 못하고, 에돔은 된다는 것이 그 기준을 볼 때에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합리’를 찾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할까요? 일차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총회’를 ‘거룩하게 구별하고 있음’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지금 신약 시대로 생각한다면, ‘교회 공동체’가 바로 여호와의 총회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공동체가 거룩할 것’을 주문하십니다. 성적으로 불능인 사람, 이방인의 영향을 받은 혼혈인, 그리고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오기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공동체의 거룩’을 훼손하는 일 또는 대상입니다. 하나님께선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가 늘 구별됨을 통해 언제나 거룩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이차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동체’는 ‘혈연 공동체’가 아니라 철저히 ‘언약공동체’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 거룩함은 무엇으로 판단한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언약에 헌신되어 있느냐’입니다. 왜 암몬과 모압은 안 되고 에돔은 된다고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를 위태롭게 했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율법은 함께 거주하는 타국인이라 해도 할례 받으면 언약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았습니다. 또한 훗날의 일이지만 ‘모압 여인’이었던 룻이 다윗의 계보에 들어가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결국 육적인 혈통이 아니라 ‘믿음의 혈통’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새벽에 우리 교회 공동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의 의지나 교회의 전통이 ‘전대중앙교회 공동체’를 지탱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총회’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바로 서고, 온전히 세워져야만 하나님의 공동체로 인정받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만이 교회를 거룩하고 건강하게 세우는 줄로 믿고 매 순간 하나님과의 새 언약 아래 열매 맺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9-14절은 전쟁 가운데에 ‘진영을 거룩하게 함’에 대해 말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스라엘 진영이 정결해야만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만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결코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약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와 목적을 ‘약하여서 스스로 되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나라가 강한 나라들 사이에서 안전할 수 있는 길은 군대를 많이 양성하고, 무기를 개발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직 ‘거룩과 정결함’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거하심으로 ‘하나님의 전쟁’이 될 때에 승리케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영적 전쟁’을 치르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성도가 세상 가운데에서 진정으로 승리의 삶을 사는 길은 오직 ‘거룩’을 사모함으로 자신을 정결케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한 거룩한 성도들이 모여 있는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쇠락하고 점점 초라해진다는 것은 ‘거룩의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교회가 ‘영광스러움’을 회복하려면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습니다. 거룩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사람의 관심에 지배받음이 아니라 세상과 선명한 차별성을 두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는 일 만이 승리를 얻게 합니다.

    17-18절에 이스라엘 안에 남창과 여자 창기를 허용하지 않고 그들이 번 돈을 받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남창, 여자 창기’는 생계를 위해 매춘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우상의 신전’에서 돈을 받고 성적인 결합을 위해 존재했던 신전 종사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헌금을 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 ‘우상 숭배’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은 가증한 것이라 못 박습니다. 그것으로는 결코 정결함을 유지할 수 없고, 정결치 못하다, 거룩하지 못하다는 것은 결국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상실됨을 말합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 결국 필요한 것은 ‘정결함’을 지키는 일입니다. 우리의 헌금 생활, 교회를 위한 헌신은 정결한 것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정적인 방법이 아닌 정직한 방법으로 부를 쌓고, 헌금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방식입니다. 나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교회에 헌금하거나 교회 봉사를 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자기 중심성’은 십자가 복음과 상극입니다.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거룩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또한 15-16절에 언급되는 ‘도주한 종’을 받아주는 것은 율법의 사랑의 정신이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공동체의 거룩을 지키는 일이 됨을 알려줍니다. 여기에서 도주한 종은 외국으로부터 도망 온 노예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이들을 다시 본 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면 외교적 마찰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의 인권’을 존중해 주라고 합니다. 돌려보내면 노예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뿐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거룩’은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정결함은 늘 ‘생명’이 흘러넘치게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 생기가 돌고, 생명력이 넘치려면 늘 ‘거룩과 정결함’을 유지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매 순간 거룩을 사모하고, 정결함으로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우리 모든 전대중앙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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