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신 24:10-22

◎본문: 신 24:10-22

◎개요

10-16절 약자 보호(전당물, 품삯 규정)

17-22절 약자 보호(약자 보호 근거, 약자의 것)

◎본문연구

오늘 본문 말씀 전체 주제는 약자 보호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약자 보호에 관해서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0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은 전당물과 품삯 규정에 대해 말씀하며, 약자를 어떻게 보호하는지 알려주고 있고, 17절부터 22절까지는 약자 보호에 대한 근거와 약자의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부터 13절까지 말씀에는 전당물이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전당물은 채무 관계를 보여주며 본문은 채권자를 향한 규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에서 꾸어줄 때 라는 단어는 미완료형으로 꾸어줄 때마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즉,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해서 지켜야 함을 가리키는 것이죠. 본문은 전당물을 취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그의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번역되는데, 전당물을 취하는 행위를 금지하기 전에 채무자의 집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채권자에게는 전당물을 취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11절은 밖에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채무 관계로 인해 채무자가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제한하여 채무자의 권리를 보호합니다. 채무 관계로 얽혀 있어도 채무자의 집은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독립 공간입니다. 그의 집에 들어가지 말라는 명령은 채무자에게 최소한의 것을 보호할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채권자는 안에 들어갈 수 없으며, 채무자가 주는 것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채권자와 채무자는 일상에서 조우할 수 있는 사이였으므로, 채권자는 채무자의 경제적 상황을 결코 모르지 않겠죠.

12절 이하의 말씀은 채무자가 가난할 경우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가 옷을 전당물로 주었다면, 해 질 때에 반드시 돌려주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슈브라고 돌려주다라는 동사를 두 차례나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가 전당물로 외투를 넘겨주었다는 것은 해가 지고 이후에 추위를 막을 수 있는 것이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채권자가 전당물인 외투를 돌려주지 않으면, 채무자에게 생존의 위기가 닥치게 됩니다. 만약 채권자가 외투를 돌려준다면, 채무자는 덮고 잘 수 있으며 채권자를 위해 복을 빌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채권자의 행위를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공의로움은 의를 가리키는 단어죠. 모세는 전당물을 돌려주는 채권자의 사회적 행위를 여호와 앞에서 의로움이라는 종교적 평가와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에는 임금 체불 금지가 나옵니다. 품꾼을 학대하지 말라는 명령은 신약성경에서도 나옵니다. 야고보서 5장 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약 5:4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학대하다는 품꾼을 능동적으로 학대하는 고용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품꾼을 억압하겠습니까? 고용주가 품꾼의 품삯 지불을 보류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15절에 당일에라는 단어로 시작을 합니다. 이것은 주다라는 동사보다 앞에 배열되어서 고용주가 품꾼에게 품삯을 주어야 하는 시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용주는 품꾼이 일한 당일에 삯을 지불해야 합니다. 여기에 해가 지기 전에라는 시점이 다시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일몰 이후에 새로운 날이 시작되므로, 해가 진 후에 품삯을 지불하면 고용주는 품꾼의 삯을 미룬 것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당일에 라는 단어와 해가 지기 전에 라는 문장으로 구체적으로 사용하여 품삯을 지불해야 할 시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품삯은 한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습니다. 가장이 품삯을 벌어오지 못하면, 온 가족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품삯을 받지 못한 품꾼이 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께 호소하는 것이죠. 그렇게 된다면 고용주에게 죄가 될 것입니다. 본문 13절과 15절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문 13절에 가난한 자의 축복으로 여호와 앞에서 의로움이 되며, 15절에 품꾼의 호소로 여호와 앞에서 죄가 되는 경우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몇가지가 전제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는 가난한 자의 축복과 호소를 들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이죠. 그리고 두 번째는 채권자, 고용인의 행위는 자신의 의와 죄에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이어서 본문 16절은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며 개인 책임을 강조합니다. 본문에서 갑작스럽게 개인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앞서 언급된 채무 관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연대 책임은 보편화된 관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채무 관계는 자녀에게 이어지게 됩니다. 채무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 가족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채권자는 채무자의 아들을 데려다가 종으로 삼았다는 것이죠.

이를 염두에 두고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란 규정을 생각해야 합니다. 율법은 한 사람이 연대 책임으로 인해 종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7절부터는 먼저 재판에 대해 언급합니다. 송사로 번역된 미쉬파트라는 단어는 재판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권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17절에 객과 고아의 권리를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회 지도층에게 하는 명령입니다. 이들이 객과 고아와 과부를 억울하게 하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8절에 출애굽 사건과 연결시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셨듯이, 불쌍한 자를 억압한다면, 애굽을 심판하셨듯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이다라는 암묵적인 경고가 들어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불쌍한 자를 돌보는 일을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본래 여호와의 일이지만 이제 이스라엘의 일인 것이죠. 이스라엘이 종이었을 때 여호와께서 속량하셨듯이, 이스라엘은 자기 주변에 있는 불쌍한 자들이 종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돌보아야 합니다. 19절은 불쌍한 자를 돌보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밭에서 곡식을 벨 때 한 묶음을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 할지라도, 다시 가서 그것을 가져와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밭에 남겨진 곡식을 가져오지 않으면, 손해가 될 거라고 생각할 것인데, 여기에 본문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죠. 오히려 그 사람에게 더 큰 축복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약자에 대해서 보호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강자들의 의무인 것이죠. 우리가 강자일 수도 있고, 약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강자일 때가 있고, 약자일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나 어떤 상황이나 형편에서 강자일 때가 있고, 약자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약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그랬듯이, 우리 또한 죄의 종으로, 죄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적이 있었지 않습니까.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돌아보지 않고 약자들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괘씸하게 여기실 거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항상 기억하시고 말씀에 순종하여 약자들을 보호하는 그런 주님의 편에 서있는 강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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