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신 27:1-26
◎개요
1-10절 율법을 기록하라
11-26절 저주 십계명
◎본문연구
오늘 본문 말씀은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절부터 10절까지는 율법을 기록하라는 말씀이고, 11절부터 26절까지는 저주에 대한 계명을 말씀합니다.
모세가 율법 선포를 마치고 율법 준수를 명령합니다. 명령하는 주체는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입니다. 모세는 토라를 기록하여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과 모든 장로에게 주고 토라 교육을 명령합니다.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너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가면, 몇 가지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중 하나는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고,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해야 합니다. 즉, 모세는 율법 기록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 차지와 율법 순종의 연결은 신명기 5장부터 11장의 말씀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내용입니다. 다만 본문 27장의 시점은 요단을 건넌 후라는 점에서 가나안 땅을 차지한 이후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죠.
4절 말씀은 토라 기록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돌에 석회를 발라야 합니다. 석회를 바르라는 명령은 흰 석회가 새겨질 검은 글씨와 대조되어 부각되게 하거나 또는 글씨를 쓸 수 있는 깨끗한 표면을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5절은 추가로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합니다. 출애굽기에서는 토단을 만들라고 명령했고, 만약 돌로 쌓는다면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고 명령하죠. 이것은 각진 네모난 돌을 가리킵니다. 이와 유사하게 신명기는 돌단을 만들라고 명령합니다. 이스라엘은 쇠 연장을 사용하여 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6절은 다듬지 않은 돌을 언급하는데, 생긴 그대로의 자연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장 먼저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명령합니다. 이스라엘은 거기에서 하나님 앞에서 먹고 즐거워할 것입니다. 먹고 즐거워하는 행위는 여호와께 드릴 제사의 보편적인 특징이죠. 8절은 다시 한 번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하라고 명령하며 마무리합니다. 이 본문은 3절과 유사하므로 문학적 틀을 형성합니다. 여기에는 분명하고 정확하게 라는 표현을 첨가하여 율법을 기록할 때 흐트러짐이 없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 언약을 모압 땅에서 해석하고 가르쳤듯이 이스라엘은 모세가 전한 토라를 가나안 땅에서 해석하고 설명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모세는 토라 교육의 원형이 되는 것이죠. 이스라엘은 변화하는 상황에서 모세의 토라를 해석해야 하지만, 그것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토라의 정신을 유지해야 합니다.
1절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주어로 나왔다면, 9절에서는 모세와 레위 제사장들이 주어로 나옵니다. 이것은 본문이 신명기 31장 9절 말씀과 연결됨을 입증하는 것인데,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1:9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이 말씀은 모세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죠. 토라의 완성은 곧 모세의 죽음을 가리키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 이하에서 모세는 백성에게 요단을 건넌 후에 백성을 둘로 나누라고 명령합니다. 여섯 지파는 그리심 산 앞에 세우고, 여섯 지파는 에발 산 앞에 세우며 명령합니다. 두 산은 세겜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 위치한 지파들은 지리적으로도 나누어졌던 지파들입니다. 에발 산에 대한 언급은 본문 1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에서 언급을 하므로, 두 이야기는 동일한 장소를 배경으로 하며, 그런 이유로 신명기 27장은 세겜에서 진행될 언약 갱신을 명령하는 듯합니다.
1절에서는 이스라엘 장로, 9절에서는 레위 제사장들이 나왔는데, 14절에서는 레위 사람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레위 제사장과는 구별되는 집단입니다. 15절 이하에 또 다른 십계명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이러이러한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나온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처럼 저주 선포가 반복해서 나온다는 이유로 학자들은 저주 십계명 또는 저주 십이계명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다른 십계명과 비교할 때 저주 십계명은 거의 인지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십계명의 틀로 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명기 27장의 저주 십계명은 십계명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해줍니다.
첫 번째부터 보면, 16절 말씀이죠.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두 번째,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
세 번째,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
네 번째,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
다섯 번째,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
여섯 번째, 짐승과 교합하는 모든 자
일곱 번째, 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자
여덟 번째, 장모와 동침하는 자
아홉 번째, 그의 이웃을 암살하는 자
열 번째,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 이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이것이 저주 십이계명으로 불리는 이유는 두 계명이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저주 십계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웃에 대한 규정이 많이 나오며, 특별히 맹인이라는 장애인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맹인은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을 대표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장애인은 공동체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저주 십계명은 장애인을 이웃의 범주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십계명과 관련된 레위기 19장은 너는 귀 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축복보다 저주를 받을 상황을 먼저 선포하게 합니다. 왜입니까? 못 믿을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셨습니다.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주셨죠. 그렇다면 그 땅에서 자기 백성이 누릴 것이라고 약속하신 복도 얼마든지 주실 것입니다. 다만 이 백성은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다고 개관천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저주를 경고하신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고, 부모를 멸시하고, 근친상간을 범하며, 살인하고 등등 이들에게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경고하시는 것이죠. 하나님의 성품에 걸맞지 않게 사는 자들이고, 자신들이 받은 은혜를 망각한 자들이고, 가나안의 문화에 동화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받을 축복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따금씩 불일듯, 우리의 마음에 일어나는 죄성들을 보면, 얼마나 더럽고 추한 것들이 많습니까.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성경, 특별히 모세오경을 보면, 이미 말씀을 하셔서 다 기록해놓으신 것들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어 마땅하지만, 예수님으로 인하여 살려주신 그 은혜를 잊지 말고 하루하루 기억하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