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신 29:14-29

◎본문: 신 29:14-29

◎개요

14-21절 언약 말씀 준수와 경고

22-29절 언약 말씀 불순종의 결과

◎본문연구

오늘 본문은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4절부터 21절까지는 언약 말씀 준수와 경고에 관한 말씀이고, 29절까지는 언약 말씀 불순종의 결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율법 선포 이후에 언약으로서 율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며 경고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 선포된 율법은 시대라는 한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15절 말씀에서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를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후손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반복하여 언약 파기를 경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약을 파기하며 마음속으로 평안을 말합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그러한 태도를 경멸할 것이며, 그들을 뽑아 다른 나라에 던지실 것을 말씀하시죠.

14절은 언약과 맹세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언약은 앞서 반복해서 나오는 언약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죠. 그리고 맹세로 번역된 단어는 뒤에서는 저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언약에 기록된 재앙의 내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래서 14절은 언약과 재앙을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15절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라는 표현으로 규정되며, 15절에 덧붙여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를 추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는 누구를 가리키느냐?

그전에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는 우선 모압 땅에서 모세의 선포를 듣고 있는 세대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호렙 세대와 구별된 자들로서 4절 말씀과 같이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통해 여호와를 새롭게 믿는 세대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선포를 듣는 세대입니다. 이와 달리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는 현 세대를 너머 미래 세대로 확장합니다. 추가로 미래의 독자는 이스라엘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22절 말씀은 타국인이 이스라엘을 찾아와 멸망한 이스라엘에 대해 질문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후대에는 혈통의 개념을 초월하여 이스라엘에 속한 자가 확장되므로, 우리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 이사야서 56장 3절에 말씀하고 있는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로써 신명기 29장에서 모세는 시대와 인종을 초월한 토라를 선언합니다. 성경의 언약은 특정 민족 또는 집단에 국한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죠. 16절에서 17절 말씀은 과거를 회상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살았던 것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여러 나라를 통과한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죠. 16절 말씀은 이스라엘이 인지하고 있는 두 가지에 대해 언급합니다. 히브리 성서는 2인칭 주어를 추가로 언급함으로써 너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후손이 인지하는 것은 첫째는 애굽에서 살았던 사건입니다. 물론 본문에 나오는 우리라는 단어는 모압 땅에 존재하는 자들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조상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둘째는 우리가 여러 나라를 통과한 사건입니다. 두 사건은 출애굽과 광야 여정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여기에는 너희가 통과한을 의미하는 문구가 추가되었습니다. 즉, 본문은 우리가 통과한 나라와 너희가 통과한 나라가 중복되고 있습니다. 이로써 본문은 과거 세대와 현제 새대의 경험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죠. 이스라엘은 여러 나라를 통과하며 그들이 섬기는 여러 우상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바알브올 사건을 연상시키게 하는 것이겠죠. 그들이 섬기던 가증한 것으로 규정하는데, 이 표현은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른다는 비판에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본문에서 우상에 대한 경멸의 표현이 관찰됩니다. 왜냐하면 우상이라는 히브리어는 길룰이라는 단어이고, 이와 비슷한 히브리어는 갈랄이라고 해서 똥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18절 말씀에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그 마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하며 라고 하는 이 문장은,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기는 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여기에서 섬기다라는 단어는 종이라는 단어와 어근이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인도하셨는데, 우상을 숭배, 섬기는 것은 다시 종으로 돌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죠.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면서 스스로에게 안도감을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19절에 스스로에게 복을 빈다고 말씀하죠. 여기에서 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자기 위로가 신명기 28장과 연결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모든 것들은 멸망할지라도, 자신에게는 평안, 샬롬이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축복은 취하고 재앙은 거부합니다. 자신들에게는 어떠한 재앙도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곧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기도 합니다. 이에 모세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언약의 재앙대로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20절에서 선언하고 있는 것이죠. 재앙의 내용과 원인을 알기 위해 이스라엘은 율법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를 통해 전해진 율법을 가르치고 교육할 책임이 후대 책임자에게 주어진 것이죠.

22절 이하의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재앙이 닥친 이후를 보여줍니다. 22절에 너희의 자손과 멀리서 오는 객 그리고 재앙과 질병이 임한 이스라엘 땅에 대한 묘사가 그러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특히 여기에서 객이라는 단어는 타국인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신명기에서 자주 나오는 객과 나그네라는 단어와 다른 단어입니다. 23절은 황폐화된 이스라엘을 유황과 소금으로 묘사합니다. 이 땅은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고 결실함도 없을 것입니다. 유황이라는 단어는 모세오경에서 단 2회만 사용되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유황과 불이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렸다고 하는 말씀에서 사용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본문에서 유황과 불을 언급하고 있죠. 이런 묘사는 이스라엘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유황과 소금이 되었다는 묘사는 그곳이 더 이상 사람이 거주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알게 하는 것이죠. 게다가 고대에는 정복자들이 종종 정복지에 소금을 뿌려 불모지로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은 두 가지로 서술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언약을 버렸다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신들을 섬겼다입니다. 25절 말씀에 그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이라고 언약을 수식하고 있습니다. 즉,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언약은 일차적으로 언약법전을 가리키는 것이고, 덧붙여 모세가 모압 땅에서 선포한 신명기가 언약법전의 확장이라는 것 또한 생각해야 하는 것이죠. 무엇보다 신명기 29장은 언약의 말씀을 반복하여 언급하며, 25절 말씀을 같은 장 신명기 29장 1절 말씀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1절에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이라고 말씀하고 있죠. 즉, 모세는 지금 모압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될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즉 이 말씀을 읽는 독자들, 현 세대와 미래 세대 모두에게 언약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죠. 이 언약의 말씀이 무엇이며, 왜 언약의 말씀을 지켜야 하며, 불순종했을 때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인지 언약에 대해서 계속해서 강조하며 순종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토라를 행함이 바로 언약 순종임을 강조하는 것이죠.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얻습니다. 하지만 참 믿음이라면 행함이 따라온다는 것이죠. 부족하고 연약하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행함이 따라오는 믿음이 참 믿음인 것이죠. 그래서 야고보서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행함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강조하면서 믿음을 증명해보라는 우리에게 도전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죠. 우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주님께 믿음을 보이는, 증명하는 증인들의 삶이 저와 여러분들이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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