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신 31:30-32:14

◎본문: 신 31:30-32:14

◎개요

31:30-32:6절 모세의 노래

32:7-14절 이스라엘을 돌보신 하나님

◎본문연구

오늘 본문 말씀은 두 단락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먼저 31장 30절부터 32장 6절까지의 말씀은 모세의 노래에 관한 말씀이고, 나머지 7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은 이스라엘을 돌보신 하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모세오경에서 모세의 노래는 출애굽기 15장에서 먼저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신명기 32장에서 다시 나오죠. 먼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의 대해 선언하고 동시에 이스라엘의 악함을 고발합니다. 두 번째로 이스라엘을 돌보신 하나님을 노래하죠. 모세는 과거 역사를 상기시키며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합니다.

본문 31장 30절은 모세가 이스라엘 총회에 노래를 들려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32장의 도입부로 간주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30절 말씀에서 번역되지 않았지만, 귀라는 단어가 나오고, 덧붙여 이스라엘 총회의 모든 사람이 언급됩니다. 본문은 모든 이스라엘 총회가 귀를 기울여 듣게 됨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죠. 32장 1절 말씀에서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기에 나오는 귀를 기울이다는 앞서 31장 30절에서 나오는 귀라는 단어와 동일한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땅은 들을지어다 여기에서 목적어는 내 말입니다. 부언하면, 본문은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땅이여 들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과 땅을 소환하여 증인으로 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어렵지 않게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에서 이사야는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면서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고발하기도 합니다. 본문 1절에서는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향해 선포하는 것이죠. 내 교훈과 내 말은 2절에서 각각 비와 이슬에 비유됩니다. 이것은 모세를 통해 주어진 가르침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2절에 교훈과 말은 앞서 사용된 토라와 구별되는 표현입니다. 지혜문학에서 교훈과 말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죠. 3절에서 여호와의 이름과 하나님의 위엄은 연결되어 나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여호와의 영광과 여호와의 이름을 연결시켰습니다. 여호와는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직접 선을 행하기도 하시는데, 이것은 대부분 구원 사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4절 말씀은 여호와의 성품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석과 완전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구원을 표현하며, 동시에 신명기 31장 이후에 기록된 율법 언약의 불변성을 서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32장에서 반석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에서 저자는 반석이신 여호와를 배반하는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뒤이어 정의와 진실이라는 명사가 나오고, 공의로운, 바른 이라는 형용사가 나옵니다. 여호와는 공의로운 분이므로, 여호와를 따르는 이스라엘은 공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의로운 자를 죽이면, 그것은 자신의 의로움을 여호와 앞에서 죽이는 행위와 같은 것이죠. 그리고 여호와는 그러한 행위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5절부터 6절까지의 말씀에는 반석, 완전, 정의, 진실, 공의, 바름으로 묘사되는 여호와의 성품과 상반되는 이스라엘의 특성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향해 악을 행하며 여호와를 대적합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 6장에서 부패하다라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된 단어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라고 묘사할 뿐만 아니라, 완전한 여호와와 달리, 흠이 있다, 결함이 있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이스라엘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언약 파기와 포로 사건을 암시하는 신명기 31장 후반부와 맥을 같이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은 어리석고 지혜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신명기 저자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이스라엘에게 여호와는 네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에 대해 너를 지으시고,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여기에서 지으시고, 만드시고 라는 표현은 창조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 행위의 결과물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은혜를 받았음에도 악행으로 여호와께 보답한 어리석고 지혜없는 무지한 백성이라고 고발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7절 이하는 과거에 대해 기억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연대라는 단어는 대를 이어서 지나온 세월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네 아버지는 단순히 아버지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네 조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죠. 즉, 7절에서 아버지에게 물으라, 어른들에게 물으라, 이러한 표현은 모두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 후대에 전승되어야 함을 가리키는 표현이죠. 8절은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시는 시점, 인종을 나누는 시점은 인간의 경험 영역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본문은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온 민족들의 하나님임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만 기업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뿐 아니라, 이 노래는 모든 사람의 후손을 나누신 하나님을 묘사하며,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자기 백성이라고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분깃이고 그의 기업입니다. 10절부터 14절 말씀은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여호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장소는 황무지와 광야입니다. 여기에서 광야라고 번역된 단어는 창세기 1장 2절에서는 혼돈이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즉, 황무지와 광야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지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찾아오셨고, 호위하고, 보호하며 지키셨다라는 것이죠.

여기에 사용된 동사는 단순히 보호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호와와 이스라엘이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며 알아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환언하면, 광야는 이스라엘에게 외적으로 고난의 장소이지만, 내적으로는 여호와를 알아가는, 그의 보호하심을 경험하고 누린 장소였다는 것이죠. 광야의 과정을 통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1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이 문장은 과거형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되는 문장입니다. 여기에는 첫째로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다라고 나옵니다. 인도하다라는 동사는 쉬다라는 동사와 아주 유사한 자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로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는 중의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와 함께를 이스라엘로 볼 경우 이것은 광야에서 이스라엘과 함께한 다른 신이 없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를 여호와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 경우는 여호와와 함께 견줄 수 있는 다른 신은 없다를 의미하는 것이죠.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에도 우리와 지켜주셨고 보호해주셨고, 현재에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우리로 서게 하시고,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 하실 분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과거를 돌아보아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현재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미래에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주셨고, 지금도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며, 그와 같은 분, 신은 없음을 감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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