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신 33:1-17

◎본문: 신 33:1-17

◎개요

1-5절 모세의 축복 도입부

6-17절 모세의 축복

◎본문연구

오늘도 이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절부터 5절까지는 모세의 축복 도입부로 나눌 수 있고, 6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은 모세의 축복에 대한 내용입니다.

신명기 33장은 모세의 마지막 말입니다. 야곱, 모세를 비롯하여 성경의 많은 인물들은 임종 직전에 유언을 남겼습니다. 야곱의 유언이 지파 순서를 따라 서술했다면, 모세의 유언은 지파의 순서를 지키지는 않습니다. 먼저 르우벤이 나오고 이후에 유다가 기록되었고 시므온은 누락되었습니다 베냐민과 요셉은 레위에 이어서 나오고 있죠. 야곱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대해 유언하지만, 모세는 두 인물을 합하여 요셉을 말합니다.

신명기 33장은 모세의 축복이며 동시에 유언입니다. 도입부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경에서 이스라엘 지파를 개별적으로 언급하며 축복하는 인물은 모세와 야곱 뿐이라는 점에서 모세의 유언은 야곱의 유언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모세, 두 유언은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야곱의 유언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모두 언급되었고, 비교적 순서대로 배열되었습니다. 이와 달리 모세의 유언에는 야곱의 아들 가운데 시므온이 누락되어 열한 지파만 언급되었습니다. 신명기에서 시므온에 대한 언급은 에발산과 그리심 산에 대한 기록에서만 나옵니다.

신명기 27장 12절에 나오는데,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역사서에서 시므온이 사사기 1장 17절 이후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은 시므온이 누락된 모세의 유언과 연관이 있다는 거죠. 모세의 유언에서 두 번째 차이점은 이스라엘 지파가 순서대로 서술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6절에 가장 먼저 르우벤에 대한 서술이 나오고, 곧이어 7절에 유다가 기록되었으며, 베냐민은 네 번째로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3절에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신다고 묘사합니다. 이것은 2절 말씀에 나오는 일만 성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3절에 백성을 의미하는 단어가 복수형으로 사용되어서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모든 성도라고 말씀하는데, 이 용어는 2절에 언급된 일만 성도라는 단어와 일치합니다. 그래서 2절에 일만 성도, 즉, 거룩한 자들은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백성들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주의 발 아래에서 말씀을 받습니다.

5절은 여수룬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2장 15절에서도 여수룬을 언급했죠. 칠십인역은 32장 15절에서는 야곱으로 번역을 하지만, 본문 말씀에서는 여수룬을 사랑받는 자로 해석합니다. 그는 백성의 우두머리들 사이에서 왕이 되었습니다. 32장에서는 여수룬에 대해 비판적으로 묘사하지만, 33장에서는 새로운 기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6절 이하에서는 이스라엘 지파에 대한 개별적인 축복이 나오며, 장자인 르우벤이 가장 앞서 배열되었습니다. 르우벤에 대하여 죽지 아니하고 살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곤 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가두고 죽이려 했죠. 그리고 악한 짐승이 요셉을 잡아먹었다고 하자 이렇게 모의를 할 때에, 르우벤이 생명은 해치지 말자고 그들을 설득했었죠. 그러나 야곱은 르우벤을 부정적으로 언급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서 더럽혔기 때문이었죠. 즉, 르우벤이 아버지 야곱의 첩인 빌하와 동침한 사건 때문이었죠. 여기에 대한 징계가 바로 르우벤이 가지고 있던 장자의 명분이 요셉의 자손에게 돌아가서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게 되죠.

6절 말씀에서 중요한 언어유희를 확인할 수가 있는데, 그 사람 수가 적지 아니하기를 원한다라고 하는 문장에서 사람이라는 단어는 남자들을 뜻합니다. 이 남자들이라는 복수형의 단어는 죽음이라는 단어와 자음이 동일하죠. 그래서 여기에서 르우벤 지파 남자의 수가 상당히 감소했음을 언어유희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르우벤을 보면, 참 안타까울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습니까마는, 르우벤은 장자이면서, 장자의 명분을 얻지 못하게 되죠. 물론 자신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되었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울 수 밖에 없는데, 장자이었기 때문에 더 안타까운 거죠.

르우벤에 이어서 유다가 나오며, 시므온에 대해서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유다에 대한 언급에서 나오는 여호와가 듣다라는 문장은 시므온의 출생에 대한 언급과 유사합니다. 르우벤과 유다에 대해서는 각각 한 절씩 말씀하고 있는데, 레위에 대해서는 8절에서 11절까지 4구절이나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먼저 둠밈과 우림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보통은 우림과 둠밈의 순서로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거꾸로 나오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신탁을 묻는 우림과 둠밈은 제사장의 권한에 귀속되었는데, 본문에서는 레위 족속과 연결되었습니다. 게다가 모세는 그것을 책임지는 레위 지파를 경건한 자, 히브리어로 하시드라고 해서 지금의 성도라고 하죠. 레위 지파를 성도, 경건한 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본문 8절 하반절에서 9절 상반절은 레위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씀하는듯 보이지만, 이는 말씀

을 준행하고, 언약을 지키기 위함이었다고 언급함으로서 결국 긍정적인 흐름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죠. 레위인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로 9절에 말씀하는데, 그것은 결국 모세가 율법 선포를 마치고 율법 순종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레위 지파는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언약을 보호하는 자들로 나옵니다. 신명기가 기록하는 언약은 모세를 통해 선포된 율법과 긴밀하게 붙어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본문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교육할 책무가 레위 지파에게 주어졌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신명기는 레위 지파가 법도와 율법을 백성에게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레위 지파는 토라를 가르침으로서 이스라엘에 정의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제사장의 직무로 제의를 우선 생각하지만, 신명기는 레위인의 율법 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11절에 모세는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로써 레위 지파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자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책임지는 자들이 그 책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심판의 대상이 됨은 물론이고, 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이끌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죠. 그만큼 말씀 맡은 자의 책임은 무겁고 중한 것이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축복이자 유언이죠. 하나님은 여수룬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고 왕이 되십니다. 이것이 가장 큰 축복이겠죠. 그리고 모든 축복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장자였지만, 장자의 자리를 욕되게 하여 잃어버린 르우벤 지파, 마치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탕자처럼 살려고 발버둥쳤던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영적 장자가 된 유다 지파, 유다 지파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대적을 쳐서 승리하죠.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미 승리한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레위 지파, 하시드, 경건한 자, 바로 성도를 가리키죠. 성도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또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도와 율법이라고 해서 신명기 말씀만, 모세오경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경의 말씀을 배우고 행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죠.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 명령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성도된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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