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신 33:18-34:12

◎본문: 신 33:18-34:12

◎개요

18-29절 지파들에 대한 축복

34:1-12절 모세의 죽음

◎본문연구

오늘도 이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날마다 강건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두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18절부터 29절까지는 지파들에 대한 축복의 내용이고, 34장 1절부터 12절까지는 모세의 죽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33장 후반부는 야곱의 아들들, 즉 이스라엘 각 지파들에 대한 축복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스불론과 잇사갈, 갓과 단, 그리고 납달리아 아셀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축복이 끝나고, 종결구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마무리되고 있죠. 34장은 모세의 죽음에 대한 기록입니다. 모세의 죽음은 신명기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모세오경을 종결짓는 이야기이며, 더 나아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는 것과 연결되어 집니다. 그런 점에서 구약성경은 죽음과 시작을 맞닿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본문은 먼저 스불론과 잇사갈에 대한 축복이 이어집니다. 야곱은 스불론이 해변에 거주할 것이라 말하고, 스불론의 경계를 시돈, 즉 그들이 지중해 지역에 거주함을 유언하고 여기에 대해 창세기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불론과 달리 잇사갈은 장막이라는 표현과 함께 나오는데, 그들은 이스라엘 내륙지역에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19절 말씀은 바다의 풍부한 것 그리고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누리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순서에 따르면 잇사갈에 대한 서술 이후에 나오므로 잇사갈을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바다가 주는 풍요로움을 누리는 복은 해양 도시를 중심으로 무역을 하는 스불론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을 적절합니다. 이와 달리 잇사갈은 내륙의 상거래 무역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했을 것입니다.

갓에 대해서는 광대하게 될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이것은 갓 지파의 땅이 요단 동편에 위치한 것과 관련되었을 것입니다. 덧붙여 갓은 사자에 비유되는데, 창세기에서 야곱이 축복한 유다에 대한 비유와 비슷함을 볼 수 있죠. 본문에서 주목할 것은 갓과 백성의 수령, 우두머리가 와서 공의와 법도를 행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법도라는 단어는 정의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구약에 따르면 율법은 정의를 세우는 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갓은 이스라엘에 공의와 정의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은 사자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이 사자는 어린 사자라기보다는 젊은 사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단의 용맹함을 뜻하는 것이죠. 납달리에 대해서는 은혜가 풍성함 그리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함을 말씀합니다. 납달리가 차지한 영토는 갈릴리 서북쪽에 위치하여 비옥하며 농사에 적합한 땅이었습니다. 게다가 모세는 납달리가 서쪽과 남쪽을 차지한다고 말하는데, 여기에서 서쪽이라는 단어는 바다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납달리의 남부 지역이 갈릴리의 서편과 맞닿아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죠.

모세의 노래가 끝나고 본문은 다시 여수룬에 대해 말씀합니다. 신명기 32장 5절에서 처음 나오죠. 무엇보다 여수룬은 모세 노래의 시작 부분에서 그리고 모세의 노래가 마친 후에 다시 언급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26절은 여수룬을 돕기 위해 나타나는 여호와를 묘사합니다. 27절에 나오는 처소라는 단어는 은신처로 이해하는 것을 적절하죠. 여기에서 팔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34장은 모세에 관한 내러티브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몇몇 동사를 사용하며 모세의 행동을 묘사합니다. 이 동사는 1절에서 올라가와 보이시고, 그리고 5절에서 죽어라고 말하며 모세의 죽음을 언급합니다. 이 단어들은 신명기 32장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32장 49절과 5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여기에서 올라가다, 보다, 죽다 라는 단어가 여호와의 명령으로 나옵니다. 본문 34장에서는 내러티브를 서술함으로써, 여호와의 명령에 대한 순종과 이행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즉, 모세의 순종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마지막도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요단 서편을 볼 수 있었지만, 요단을 건너지는 못했습니다. 6절 이하의 말씀은 모세의 죽음에 대한 서술을 통해서 모세의 뛰어남을 암시해줍니다. 가장 먼저 모세는 벳브올 맞은 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습니다.

모세가 매장된 장소를 아는 자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에는 일반적인 두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하나는 모세의 매장지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함이고, 하나는 모세의 유골을 가졌다며 권위를 내세우려는 왜곡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모세의 정신을 따르는 것은 모세의 유골 또는 매장지를 소유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모세의 권위로 주어진 토라를 따름으로써 가능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두 가지 의견 모두 맞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6절 말씀은 모세가 죽은 장소를 모압 땅이라고 말씀합니다. 모세가 모압 땅에 묻혔다는 기록은 요셉의 이야기와 긴장감을 만들어 줍니다. 왜냐하면 요셉은 자신의 유골을 가나안 땅으로 가져가라고 유언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방 땅에 매장되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가나안 땅 입성과 토라 순종 가운데 무엇이 본질인지를 질문하고 있는 것이죠. 7절 말씀은 모세가 120세를 장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즉,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창세기 6장 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아무리 모세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규정한 한계, 즉 120세를 넘을 수는 없는 것이죠. 이렇게 모세가 죽고 30일을 모세의 죽음에 대해 애곡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30일간 애곡했다는 기록은 아론의 죽음에 대해서만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절부터 12절 말씀까지는 소위 모세 비문이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모세의 비문에 새겨졌을 법한 말씀의 문구라는 것이죠.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리고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였다. 이런 선언을 통해서 모세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는 뜻은 너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겠다는 선언인 것이죠.

그래서 모세 이후에 등장하는 예언자는 모세와 같은 자가 아니라, 모세의 정신을 잇는 자가 되는 것이죠. 모세 이후에 등장할 예언자는 모세의 권위로 주어진 토라를 재해석하여 선포한다는 점에서 모세의 권위 아래 있는 자들, 즉, 모세는 이후에 등장할 예언자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남기고 간 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살아있는 메시지입니다. 그의 말, 삶, 노래, 심지어 모세의 마지막 모습까지, 그렇게 모세는 그의 뒤를 따라 신앙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표준이 되는 삶을 살아냈습니다.

우리의 모습과 길은 어떠합니까? 우리 자녀들이 보기에, 혹은 이웃들이나, 가족들이 보기에 뒤를 따라가도 되겠다 싶은 그러한 모습이나 길을 가고 있으십니까? 아니면 그들에게 더 신앙의 성숙한 길을 보이거나, 그 길이 어디인지 가리키는 이정표의 역할은 하고 있으십니까? 우리의 말과 삶, 행동과 신앙의 길이 우리의 자녀들, 가족들, 이웃들에게 아름다운 본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주님과 늘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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