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강도사 / 시 104:19-35

◎본문: 시 104:19-35

◎개요

19-23절 해와 달의 절기와 세상의 질서

24-26절 땅과 바다에 거주하는 짐승들

27-30절 창조자에게 의존하는 모든 생명체

31-35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본문연구

오늘 본문 말씀은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9절에서 23절까지의 말씀은 해와 달의 절기와 세상의 질서에 대한 말씀이고, 24절부터 26절까지의 말씀은 땅과 바다에 거주하는 짐승들, 그리고 27절부터 30절까지의 말씀은 창조자에게 의존하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말씀, 마지막 31절부터 35절까지의 말씀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씀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시편 104편은 우주론적 측면에서 다른 고대 문헌과 유사성이 있긴 하지만,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와 연결되는 우주론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시가 창조 이야기처럼 정연한 구성을 갖추지 않고 좀더 자유롭긴 하지만, 인류와 짐승들의 관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구성적인 측면에서 이 시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 바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라는 자기 권면의 반복이 이 시의 틀을 형성하고 있죠. 그리고 시 후반부의 핵심은 인류 홀로 이 세계를 독점하지 않는다는 것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즉 인류는 가축과 들짐승과 함께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공유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해와 달을 만드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모든 생명체가 낮과 밤을 구별하여 살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밤낮, 그리고 계절의 변화는 수고할 때와 쉬어야 할 때를 알려줍니다. 하나님께 양식을 구하던 모든 생물은 해가 지면 물러가서 쉬지만, 그 쉼이 결코 불안하지 않는 것이죠. 일할 때가 있고 일을 멈추고 쉼을 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시간의 리듬 속에서 우리는 일하고 또 일의 성취를 누리며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죠.

지구와 해와 달의 운동은 하나님이 수립하신 우주 질서의 핵심입니다. 천체는 날들과 게절에 따라 생명의 주기를 제어합니다. 태양과 달은 생명체를 위한 시계이자 달력으로서 하나님의 계획과 방식대로 움직입니다. 하나님은 달은 계절들을, 해가 낮과 밤의 변화를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시인은 19절에서 여호와가 달의 운동으로 계절을 만들고, 태양은 자기의 들어감을 안다고 노래합니다. 해가 오고 가는 운동을 반복하듯, 시인은 해와 달에게 인격성을 부여하고, 그들 배후의 주인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죠. 또 흑암을 밤이 되게 하시고, 어두운 밤 숲의 짐승이 기어 나온다고 말씀합니다. 즉 밤은 숲의 짐승들이 활동하는 시간이라는 뜻이죠. 어두운 밤 젊은 사자들이 먹이를 위해 활동하고, 그들의 먹이를 하나님께 구합니다. 해가 떠오르면 사자들은 물러가고 자기들 동굴 속에 눕습니다. 즉 인간이 잠든 어두운 밤, 숲은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온갖 생물들로 활기차죠.

강한 사자들의 으르렁거림도 하나님으로부터 먹잇감을 얻기 위함이니 하나님 없이 어떤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시인은 숲의 생명체들이 활동하는 것을 묘사하며 하나님의 하신 일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죠. 인류는 숲의 짐승들과 반대죠. 인류는 해가 뜨면 일하러 가고 해가 지면 쉽니다. 밤과 낮의 질서 안에서 사람과 들짐승이 활동하는 시간의 경계가 정해졌고,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시간을 나눠 갖는다고 볼 수 있죠. 숲의 동물을 위한 밤과 사람을 위한 낮의 경계는 서로의 안전과 평화 유지를 위한 질서인 것이죠. 밤은 인류의 쉼과 회복을 위한 선물입니다. 동시에 인간과 숲의 짐승 사이에 설정된 시간의 경계는 공존을 위한 장치입니다. 여기에서 시인은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하지 않고 모든 생명체의 조화로운 공존의 질서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죠.

24절부터 28절 말씀은 때를 따라 양식을 주시기에 세상의 온갖 생물이 주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이 나무의 잎사귀를 무성하게 하시고, 시절을 좇아 풍족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바다의 리워야단도 때를 따라 공급하시는 양식으로 만족하며, 하나님을 추구합니다. 사계절의 변화를 아름답게 하신 하나님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에도 필요한 양식으로 먹이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시간의 주관자이자 생명의 보호자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24절과 31절에서 하나님은 창조의 과정을 즐거워하셨고 그 결과에도 만족하셨습니다. 말씀의 지혜로 그 일을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성취와 인정을 좇아 아둔한 방식으로 일하면 피로와 권태가 덧쌓이기 마련입니다. 어떤 일이든 말씀의 지혜로 감당할 때 과정도 즐겁고, 결과에도 만족할 수 있는 것이죠.

30절부터 35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영, 숨을 불어넣어 사람을 만드시고, 자기 형상을 닮은 사람의 호흡을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깃든 사람이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은 깊은 한숨으로 한탄하십니다. 분노를 품으면 콧김이 거칠어지고, 좌절하면 숨이 무거워 가라앉습니다. 하나님이 영을 보내시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세계만물이 변화를 맞이합니다. 높은 곳은 평지가 되고 평지는 계곡이 됩니다. 시인은 그 위대하신 영, 숨을 자신에게 불어넣으신 하나님을 숨이 다하는 날까지 찬양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 것이죠. 찬양은 하나님이 주신 새 숨을 받아 새 삶을 사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럽고 두드러진 반응인 것입니다.

시인은 내가 평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는 시인이 여호와가 자기의 행하신 일로 즐거워하시기를 기원한 것처럼, 나의 관심이나 나의 기도가 여호와께 기쁨이 되기를 바라면서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죄인들이 땅에서 소멸하고, 다시는 악인들이 없기를 기원합니다. 갑자기 등장한 죄인들과 악인들의 소멸에 대한 주제가 시 전체 흐름에서 어색합니다. 이 시는 죄와 악으로 규정되는 우상숭배나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억압, 폭력, 착취 같은 문제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럼 점에서 시인은 창조물의 조화로운 공존을 폐기하는 행위를 죄와 악으로 간주한 셈인 것이죠. 모든 피조물의 조화가 깨지고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는 생태계 교란은 죽음을 피할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에게 자연 생태계를 멋대로 착취하지 말고 모든 피조물과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라는 권고입니다. 따라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이 말씀에 함축된 의미는 모든 생명체를 온전히 돌보시는 하나님과 그의 우주적 왕권을 높이는 시인의 고백이자 외침인 것이죠.

하나님은 창조하신 것을 통해 영원히 영광을 받으시며 즐거워하십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평생토록 하나님을 노래하며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죠. 그렇다고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나님의 영광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고 착각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언제나 충만하십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이죠.

소요리문답 1문에서 사람의 주된 목적,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이 이러합니다. 사람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도 하나님을 계속해서 영원토록 즐거워할 것입니다.

오늘 시편 말씀의 시인과 같이 언제나 여호와를 송축하고 즐거워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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